민간-공공 이중 임대시장
걷어차인 주거 이동 사다리
빈집 활용, 고시원 리모델링
사다리형 임대주택 늘려야


십여 년 전만 해도 신혼부부가 월세방에서 시작해 전셋집으로, 또 돈을 모아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게 가능했고 당연한 ‘코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예비부부와 청년들에게 이런 일은 실현될 수 없는 꿈에 가깝다. 월세에서 전세로, 또 자기 집으로 옮아가는 주거 사다리가 없어지면서 더 나은 집으로 옮기는 주거 이동성이 약화되고 현재 수준에 머무는 고착성이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주원 사회적기업 두꺼비하우징 대표는 지난 13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 칼럼에서 한국은 자가 소유, 민간임대, 공공임대 등 각 주택 점유 형태 간 장벽이 상당히 높은 이중 임대시장 구조를 갖고 있다며 사회주택 공급을 늘려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언제나 선(善)인가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얼마나 될까? 이주원 대표는 정부는 5년 공공임대, 10년 공공임대를 포함해 6%가 넘는다고 발표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공급량 대비 5.5%를 약간 넘는다고 밝혔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주장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이 대표는 19만호 건설에서 멈췄지만 노태우 정부의 영구 임대주택 25만호 공급 계획부터 본격화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한국의 주택 정책에서 중요한 영역이 됐다며 한국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언제나 선(善)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주장이 계속되는 건 한국의 주택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고 주거복지 수준이 아직 낮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아니다. 주택 임대시장을 둘러싼 구조가 문제다. 이주원 대표는 공공임대주택에 한 번 입주하면 자가 소유시장은 물론 민간 임대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한다며 공공임대주택이 순환 역할을 못 하고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임대주택의 이런 동맥경화증은 청년 등 새롭게 공공임대주택의 수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입주를 상당히 제약한다는 것.


이중 임대시장에서 단일 임대시장으로


임대주택 정책 전문 학자인 케메니는 주택 임대시장을 주택 점유 형태와 복지 체계, 임대시장의 특성 등에 따라 단일 임대시장과 이중 임대시장으로 나눴다. 케메니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 임대시장은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량이 적고 빈곤층의 사회안정망 차원에서 공급됐으며 민간 주택시장과 단절돼 있는 이중 임대시장이다. 이주원 대표는 이중 임대시장은 공공임대주택에 빈곤층들이 입주해 격리되거나 배제되고 자가소유, 민간임대, 공공임대 등 주택 점유 형태 간 장벽이 상당히 높다고 진단했다.


반면 단일 임대시장은 자가 소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사회주택처럼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이 통합된 시장을 뜻한다. 단일 임대시장을 갖고 있는 독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재고량 대비 약 5%로 서구 유럽 국가들에서 낮은 편이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 특히 주거약자들은 주거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의 재고량은 적지만 공공성이 강한 민간임대주택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임대료 통제 장치를 시스템화한 덕분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주거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는 단일 임대시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복지국가 시스템이 자리 잡도록 사회체제가 변해야 한다며 주거, 의료, 교육, 사회보장 같은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 확실하고 튼튼하게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성장 시대, 걷어차인 주거 사다리


문제는 공공임대주택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주거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주원 대표는 이중 임대시장을 가진 한국에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주거의 이동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아마 이중 임대시장의 구조가 더 고착화돼질 것이라고 했다. 민간 임대시장에서 공급되는 임대주택의 가격이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로서는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고 민간임대주택 중에서 부담할 수 있는 주택은 거주 환경이 열악해 더 안 좋은 주택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고성장 시대에는 교육 사다리와 소득증가 사다리가 튼튼해 한국인들의 계층이동 자체가 원활했지만 지금 저성장 시대에는 직업, 소득증가, 주거 등의 이동성이 약화되고 현재 수준에 멈추는 고착성이 강화되고 있다며 사다리가 걷어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성장 시대에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놓는 건 가능할까? 이주원 대표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환경은 같은 임대료의 민간임대주택에 비해 훨씬 좋다. 거주 기간도 안정적이고 임대료가 갑자기 오르는 일도 거의 없다. 이런 차이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비슷한 임대료의 민간임대주택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거주 기간이 끝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이 퇴거 요청을 받을 경우 저항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공공-민간임대주택 교집합, 사회주택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 사이에 더 좋은 주거로 이동이 활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주원 대표는 민간 주택시장과 공공 임대시장 사이에 교집합인 사회 주택시장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회주택은 지방정부나 비영리조직 같은 사회적 임대인이 소유하는 주택으로 시장가격 이하로 공급되고 가격보다는 필요에 따라 공급된다. 서울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조례에서는 사회주택을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사회적 경제 주체에 의해 공급되는 임대주택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공 임대시장과 민간 임대시장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회 주택시장은 비영리 법인이나 사회경제조직 같은 민간 임대인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장의 작동 원리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주거 이동 사다리 다시 놓으려면


주거 이동 사다리는 다시 놓을 수 있을까? 이주원 대표는 한국에서 주거 이동 사다리가 작동하는 단일 임대시장으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아직 복지국가 시스템이 튼튼하지 못하고 사회적 합의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주거 기둥만 튼튼하게 보강 공사를 할 수 없고 네 개의 기둥을 동시에 리모델링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이중 임대시장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장중심적 사고나 공공개입적 사고 중심에서 벗어나 문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금의 이중 임대시장 구조에서 주거 이동 사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다리형 이중 임대시장으로 주택시장의 개념이 확장돼야 한다고 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빈집 활용 공유주택, 고시원.모텔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들이 새로운 형태의 사다리형 임대주택이라 할 수 있다.


이주원 대표는 사다리형 이중 임대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공의 지원이 확충될 수 있는 정책 환경과 사회주택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투자 환경, 지원조직과 지원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주택 공급과 사회 주택시장 확대만이 아니라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법률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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