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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룬디마틴의 리더, 언플러그 대표 등 김민경님에 붙는 명칭은 다양하지만 뮤지션으로 불리고 싶다.>


울산 문화의거리에 젊은이들 창작음악이 라이브로 자유로이 공연되는 공간이 생겼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 공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궁금한 일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룬디마틴’의 리드싱어인 김민경 님을 만나러 지하공간 ‘플러그인’에 들렀다.   

  

1. 이 곳 플러그인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원래 매일 매일 공연을 하다가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줄자, 지금은 대관이나 기획공연, 연습실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을 하고 있다. 처음 이 공간을 열었을 때는 아는 사람 위주로 공간이 운영 되었으나 아는 사람이 매일 올 수도 없고 매일 공연을 한다는 것이 희소가치도 떨어지더라. 사업가가 아니고 뮤지션이다 보니 홍보와 마케팅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공간은 편하게 오픈되어있는 공간이다. 다만 그냥 술집이나 카페라는 명칭이 아니라 공연장이라는 이름을 쓰니 어렵게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술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영화 한 편을 봐도 만 원 정도는 들어가지만 공연비로 낸다고 하거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면 부담을 느끼는 측면이 있더라. 아직 이런 문화가 자연스레 공유되어 있지 않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플러그인은 아직은 아마추어라 공연을 선뜻 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오픈 스테이지가 되는 날도 있으며, 또 어떤 날은 기획공연으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공연하기도 한다. L.P판을 1만 장 보유하고 있을 만큼 음악감상실로서 역할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복합음악공간이지만 아직은 찾아오는 관객이 많지 않아서 힘든 상황이다. 제가 사업가가 아닌 뮤지션이고 음악만으로 밥벌이를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매니저를 고용하게 되었다.


외부음식이 반입 가능하고 매우 싼 가격으로 술도 마실 수 있는 등 사람들과의 문턱을 낮추려 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새롭게 단장할 플러그인을 기대해 줬으면 좋겠고 나아가 많이 찾아와 주시길 바란다.


2. 원래 원했던 목표로 잘 가고 있나?


‘플러그인’ 공간 이전에 무거동 ‘언플로그드 하우스’ 공간을 운영했었다. 그곳은 이 공간의 1/3 크기였는데 직접 공사를 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30~50명이 관객으로 찾아와 공연을 하는, 서울 등 타 지역에서도 인지되는 알찬 공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인과 관객들을 불러 공연을 하니 희소가치를 느끼고 오는 분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더 오기 쉽고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라 생각해서 또, 문화예술 업종에 지원도 해주는 이곳 문화의 거리에 큰 장점을 느껴 이곳으로 옮겼는데 공간의 규모도 크고, 마음가짐, 태도에 있어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고 본다. 그런 걸 고려하지 않은 나 자신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과 공동 운영을 하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마찰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플러그인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남편의 스튜디오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자의 공간에서 다시금 목표를 설정하고 새롭게 도약할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3. 몇 년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앞으로 운영계획은 어떻게 하려고 하나? 


지금 내 나이가 32살인데 20~30대에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심스럽고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가 끌고 가는데 겪은 경험으로 더 진중한 사람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익적인 마인드이고 문화기획도 하고 있다. 작년 재작년에는 클럽데이 공연기획도 하게 되더라. 공간을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번에 함께 일하게 된 실장님께 많은 부분을 일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문화예술기획자의 역할로서 더욱 다가가려 생각하고 있다.


영리적인 부분에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가며 소통할 수 있는 대중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있다. 외부음식이 반입이 가능하다거나, 낮 시간에 활동을 많이 하는 아기 엄마들과 중년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다거나, 저녁과 밤 시간대에 편하게 올 수 있도록 싼 가격에 술을 파는 비어마트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LP가 만 장 정도가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 음악감상실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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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무대 사진이 조금 썰렁하다고 하자 자연스레 포즈를 취해주었다. 리더싱어 자세.>


이 외에 비영리적인 활동으로는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대관과 신진 뮤지션을 발굴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음악 분야의 여러 스터디를 진행 중에 있다. 자신의 곡을 직접 만들어보는 싱어송라이터 및 보컬스터디가 그 예이다. 주변에 싱어송라이터들과 편한 모임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셨고, 깊이도 꽤 있는 분들도 있어서 아주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팀별로 곡을 써 보기도 하고 전공생이 알려주는 아주 기초적인 화성학도 공부하고 있다.


4. 공연예술인들에 대한 페이 문제가 생각보다 열악하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뮤지션에게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곳이 굉장히 많다. 음악은 우리의 생계인데도,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선 공연예술인들이 뭉쳐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뭉치지를 못한다. 부당한 대우가 있어도 개인적으로 수모를 당해도 그 내용이 공유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개별적으로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면 자꾸만 하향 경쟁 분위기로 말려 들어간다. 최근 한 축제에서도 어려운 여건인데도 안면이 있어 도와주러 갔는데 스텝이 지역 공연예술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았다. 우리도 초청돼서 가는 것인데 주차공간 배려 등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 축제에서 실제 공연이 시각적이든 호응도이든 최고의 역할을 하지만 10년째 동일한 페이를 받고 활동한다.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버스킹’ 문화를 일군다길래, 아는 재즈공간을 하시는 분과 순수한 마음으로 내 공간에 있는 악기를 빼서 참가했다. 버스킹하는데 참가자 차비 등 최소 경비로 5만 원 정도를 주는데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하더라. 우리 ‘룬디마틴’도 같이 했는데 그 이후 다른 행사에 지자체가 우리를 불렀는데 40~50만원 안되겠느냐 하더라. 보통 한 번 공연에 100만~150만 정도 받는다고 기획안 다 들어갔는데, 담당자가 5~10만원으로 버스킹도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런 것이 자발적인 버스킹 문화가 끼치는 역작용이다. 버스킹처럼 자기 노래를 자유롭게 한다면 그냥 무료로도 간다.


공무원 마인드가 기획하는 분들의 아이덴티티가 없는 그냥 찍어 내기식 공연을 한다. 기획을 했으면 그 취지에 어울리는 뮤지션을 초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지 못하면 행사 취지라는 것은 없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직접 공연공간을 만들려고 나선 이유기도 하다.


큰 행사에는 보통 사무국이 만들어진다. 공연기획사, 공연예술인, 언론사 이렇게 나눠서 준다.
작은 규모의 경우 음향, 이벤트 업체에서 다 맡아서 진행하다 보니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겠더라.


5. 울산문화재단이 생기고 난 다음 그 변화가 느껴지나?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이번에 ‘파견예술인사업’에 최종 합격하게 됐다. 병원, 카페 등등에 이런 예술적 가치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취지가 있는 기업과 연계해 예술인이 파견을 가는 프로그램이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용이하게 하는 사람, 촉진자, 기업가-예술가를 이어주는 역할)는 떨어졌다. 심사과정에서 떨어졌을 때 혹은 붙었을 때 명확한 선발 기준과 공정한 심사가 진행됨을 느꼈다. 심사과정 내용을 아주 꼼꼼하게 드러내 알려주더라. 각 분야별로 디테일하게 언급해 주었다.


울산은 문화재단이 생기고 몇 번의 사업에 지원했는데 심사에서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의 피드백이 좀 부족하다 생각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심사위원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인디음악, 재즈, 힙합, 스트릿 댄스 등의 예술 분야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길지 않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예술가로서 당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국악, 클래식 음악, 무용 분야에서처럼 공정한 심사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재단이 생긴 지 이제 100일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안다. 아직은 많은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화재단 이사장님께서 굉장히 공정하고, 건강하게 울산의 문화예술을 살려주실 분이라는 생각한다.


6. 직접 노래를 부른 본인 음반이 나왔나?


직장이 있으면서 음악을 하는 분들은 앨범을 만들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생계를 목적으로 가는 경우에는 음반 내기가 많이 힘들더라. 창작곡이 많은데 아직 음반을 못 만들고 있다. 최근 서울에 가서 기타 녹음을 하고 왔다. 많은 보컬들이 사랑하는 기타리스트 분께서 참여해주셨다. 활동을 많이 하시기 전부터 인연이 되어 몇 해째 운영하는 공간에서 공연을 기획했었다. 감히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라 처음에 승낙해 주셨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 오늘 드러머인 남편이 부산음악창작소에 드럼 녹음을 하러 간다. 건반을 담당하는 친구도 뉴질랜드 교포인 아주 실력 있는 연주자다. 베이시스트도 아주 멋지다. 다들 서울에서 활약하는 뮤지션인데 내 첫 앨범에 이렇게 참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조만간 앨범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뭉클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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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넓고 음향이 잘 받쳐주기도 하는 복합음악공간을 되길 꿈꾼다.>


울산은 뮤지션이 앨범을 만들기 굉장히 열악한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만간 울산에도 음악창작소가 생긴다고 한다. 다른 광역시에는 벌써 만들어 졌지만 우리는 이제 생긴다고 한다. 뮤지션들이 앨범을 만들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 믿고 있다. 부산음악창작소는 신청한 뮤지션들을 공정한 심사를 거쳐 음원 만드는 사업을 벌써 진행하고 있다. 경비는 국비와 시와 구청이 예산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 가까운 대구에서는 연극하는 사람이 소장을 맡아서 활성화가 힘들었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울산은 여러 모로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서울의 스튜디오와 부산음악창작소에 가서 녹음을 진행하지만 다음 앨범은 꼭 울산에서 작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7. 직접 문화의 거리 안에서 살아보니 이 곳 분위기는 어떤가?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음악공간, 미술갤러리 등등에서 소통하려는 노력이 다분히 보이고 있다. 하지만 워낙 많고 색다른 공간이 있다 보니 집결해 무언가를 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젊음의 거리의 유동인구가 문화의 거리까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고 한계라는 생각도 들어 시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리가 되길 예술가들이 뭉쳐 고민해야 한다.


문화의 거리에는 예술창작소도 생겼다. 전에 있던 공예관을 리모델링해서 공예,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지하 연습실에는 각종 악기와 앰프, 거울 벽면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어 댄스팀 혹은 밴드 연습도 가능하다. 1층에는 회의와 스터디를, 2~4층은 예술가들의 각자의 공간으로, 4층에는 작은 주방도 있더라. 공간이 없는 예술가라면 다 사용이 가능하다.


문화의 거리는 문화예술업종 지원사업으로 월 임대료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지속성이 있는 방식으로 예술가들이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건물주들이 월세를 많이 올렸다. 이 공간도 2년 계약하면서 들어 왔는데 2년 이후에는 올라갈 수도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기에 3년 지원이 끝나면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8. 최근 이 공간에서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 있나?


최근 이 공간을 이용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낮 시간대 애기 띠를 맨 애기 엄마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을 겸한 중년여성들이 올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려 하고 있고 운영은 어머님께서 도와주실 것 같다. 그리고 낮에도 볼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려고 한다. 술은 판매 안 하려고 했지만 비어(beer)마트 정도는 하면서 외부음식을 반입 가능한 방식으로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9. 싱어송라이터 혹은 뮤지션으로서 본인 창작활동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창작곡은 그 때 그 때 나의 감정을 잘 반영해 주는 것 같다. 창작곡의 수는 1절 분량으로 30~40곡이고 완성된 것, 불러지는 것은 15곡 정도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감성은 시시각각 다 다르다. 그 때 감성을 담아 녹음해서 바로 바로 기록물로 남겨놨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조니 미첼이다. 지금 70대인데 젊을 때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20~30대와 50~60대 편곡해서 부른 노래는 또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 지금부터라도 이후 평생 내 목소리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할 때와 넘칠 때, 지치고 힘들 때, 행복하고 기쁠 때마다 순간의 감정들을 노래로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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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L.P.판이 만 장이 넘는다. 주부들을 위한 음악감상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노래를 훨씬 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의 난 뮤지션이었을까? 예술가였을까? 조금 부족하고 더딘 길일지라도 끝까지 내 길을 가려한다.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치열하게 부딪치고 연습하고 창작곡도 만들고 싶다.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최근 건강 문제가 생겨 수술도 하고 병원에 두 달 정도 있었다. 쉼 없이 노래, 공연을 무리하게 많이 하다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뭐한 걸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들었다. 많은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조니 미첼을 떠올렸다. 그녀는 정말 큰 무대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통기타 한 대에 당당하게 노래했다. 사회에서 사람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삶을 녹여서 노랫말을 만들어낸다.


나는 남들이 좋아하는 곡, 쉽게 좋아하는 곡, 좋아요, 다 사랑해요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좀 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내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촛불 집회에도 매번 참석해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노래했다.


싱어송라이터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멜로디, 노래로 표현하는 사람, 그만의 고유의 색이 반짝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에도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싱어송라이터, 공연장의 대표, 룬디마틴의 리더, 이 모든 호칭은 나 김민경이다. 실패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천천히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간에도 많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