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교사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교육적 신념들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상적 학생 통제의 당위성을 내용으로 하는 이 교육관은 당시 대다수의 교사들이 동일하게 갖고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교사들의 과도한 훈육이 종종 학생의 기본권 침해(즉, 헌법적 가치 침해)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교사들은 이 교육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도 이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듯하다. 간혹 무차별 폭행에 가까운 체벌로 학생이 신체적 상해를 입었을 경우 학부모의 거센 항의가 있기도 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교사의 지나친 의욕을 좀 자제해 달라는 요청 정도로 끝나곤 했다.


당시에도 이런 폭력적 훈육 관행을 비판하는 교사들은 있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조차도 무시하는 거친 교육관이 아집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런 비판에 귀 기울일 만한데도 우리 사회는 교사들의 그런 거친(거의 폭력적인) 교육관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관대했다. 피해 학생 부모의 거센 항의로 학교가 뒤숭숭할 정도의 소란이 일어도 교장과 교감은 늘 “선생님들의 교육열을 조금만 자제해 주십시오.”라며, 오히려 그것을 교육열이 지나쳐 일어난 일로 치부하곤 했다. 토론이 없는 학교 사회는 폭력적 훈육에 비판을 제기하는 교사들을 오히려 백안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의식은 엄청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생 체벌에 대한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세졌고, 급기야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게 거세졌다. 게다가 사회의 분위기도 마냥 교사들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법률 잣대로까지 나아갈 경우 교사의 체벌은 근본적으로 용납되지 않게 되었다. 급기야 학교는 학생 지도의 매뉴얼을 다시 만들기도 하고, 벌점제를 도입하기도 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사들의 개탄과 한숨 소리가 부쩍 늘어나는 등 한동안 갈등과 혼란이 지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은 시대의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나보다. 이제 학교는 체벌 없이도 잘 돌아가는 모양새다. 체벌이 없는 학교는 결코 혼란을 면할 수 없으리라던 보수적 교사들의 비관적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는 이제 평온해 보인다. 다들 체벌 없는 학생 지도에 익숙해지는 모양새다. 지금 학교는 오히려 체벌로 다스려 오던 시대보다 훨씬 더 평온한 모습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체벌이 사라지면 야간자율학습 통제가 제일 어려울 걸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끊임없이 불평을 하면서도 그 부드러운 통제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학교는 이제 체벌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혼란 없이 잘 통제되어 가는 듯하다. 착시인진 몰라도 근년 들어 학교의 갈등 문제에 대한 언론의 기사도 좀 잠잠해진 듯하다.


그런데, 이 평온한 태평시대에 교사들의 의식은 건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제 몽둥이를 들지 않는 교사들은 개인의 기본권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해 온전히 수긍한 것일까? 아니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나 사회적 비난이 싫고 두려워 손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 사실 모든 가치 인식이 반드시 자발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사회적 관계나 관행이 개인의 의식을 일깨우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인권 존중의 풍토는 법의 지지를 받는 개개인의 강한 저항이 만들어낸 것일 지도 모른다. 다만 교사는 늦더라도 그 본질에 대한 확고한 이해는 있어야 할 것이다. 마냥 말썽이 성가시니 안 건드리겠다는 태도는 일반적 인간관계로서는 무난한 태도이나 교사로서는 교육적 역할의 포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물론 교육적 역할의 명분을 앞세워 학생의 기본권마저 억누르던 지난날의 관행을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의 생활에 대해서 말썽이 생길 소지가 있는 부분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자칫 교육적 역할의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권 가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학생들의 생활에 적극 개입하여 그들의 권리의식을 일깨워주는 한편, 구성원끼리의 갈등과 충돌을 조정할 기본 규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적극적 역할이 오히려 더욱 요청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