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예까지 와버렸네. 지금 저는 수원에 있습니다. 울산 사람이 수원엔 왜 갔느냐구요? 일자리를 찾아 예까지 왔습니다. 아니 예까지 오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공간을 구획짓지 않고, 시간에 대한 생각을 버리니 일할 곳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와야 하는 이유를 하나둘 갖다 붙입니다. 어쨌든, 지금 저는 ‘중부지방국세청’에서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슬슬 손을 풀어야하는데... 시스템이 저를 받아들이는 덴 시간이 필요하네요^^ 하여 업무를 하지 못하고 사무실 이쪽저쪽을 기웃거립니다. 큰 사무 공간이 있고, 방송실, 탈세제보접수처, 정보공개접수처, 여성공무원고충상담접수처, 도서관, 기자실, 물품보관실 등등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택한 건 ‘도서관’. 도서관이라 이름 붙여놨지만 실제 열 평 남짓 되는 직원 복지를 위한 작은 공간입니다. 작은 도서관이지요. 국세청 도서관엔 무슨 자료가 있을까요? 업무파악을 위해 제일 먼저 뽑아든 건 <국세청 50년사>입니다. 국세청 역사가 50년이나 되었나봅니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는가 봅니다. 그 책이 어디서 났느냐, 역시 역사 전공자는 다르다, 어떻게 그 책을 보려했느냐 등등 동료들 반응들이 재미있네요. 년사는 만들 땐 정말 힘든데, 실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눈에 기관의 역사를 알기엔 참 좋죠. 그리고 역사를 아는 사람에겐 함부로 할 수 없는 묘한 힘이 생깁니다. 저는 오늘도 힘겨루기를 해 보렵니다^^


한두 장 읽다보니 학창시절 배운 단어들이 새록새록 하네요. ‘조세, 조용조, 과전법, 공납, 군역, 요역, 정남, 호적, 대동법, 영정법, 군포2필, 백골징포, 황구첨정, 방납’ 등등등 외울 것 투성이었던 국사책은 늘 세금과의 전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란 것이 생겨나면서 국가의 행정은 세금을 거두는 역사였고, 민의 역사는 세금에 대한 저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니 학창시절엔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대목이 탁 걸립니다. “징수원과 부과권을 분리시켰다”? 그땐 왜 그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못했을까요. 조선시대 수취제도의 문란을 공부하면서 지방관아들이 죽은 이에게도, 젖먹이 아기에게도 세금을 부과했다고 배웠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당연히 불법이었을 텐데 말이죠. 왜 불법적인 것이 그대로 자행되고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았었네요.


이 분리는 근대적 개혁으로 배운 갑오개혁에서 시작합니다. 1895년부터 각 지방에는 징수사무를 전담하는 관세사와 징수서가, 그리고 부과를 전담하는 부세소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의 탁지부가 이를 지휘하는 체계였던 거죠. 그러나 아쉽게도 징수 업무를 상근직이 아닌 일정기간 파견직 형태로, 그리고 부과 업무도 기존 지역향리들이 담당하면서 지방관은 지방관대로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혼란에 빠져 그에 반발하며 6개월 만에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한 체제 개편의 한계로 볼 수 있겠죠?


조세행정이 지방행정기관의 업무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은 1906년 일제에 의한 관세관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입니다. 이 무렵에 ‘세무서’라는 명칭도 처음 등장했다고 하네요. 1934년엔 일반소득세제가 시행되면서 보다 근대적인 전담기구가 마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일제강점기 때 시행된 대부분의 제도는 근대의 탈을 쓴 일본의 수탈을 위한 것이었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명칭을 쓰고 그때의 체제를 근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무관리규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금은 없어진 이 법명은 일본의 체제 그대로를 빌려 만든 공공기록물을 관리하는 기록물법의 전신입니다. 역사기록물을 관리하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가 근대적 사무관리규정이란 이름으로 작명되면서 역사기록물은 단순 행정문서로 둔갑하여 방치되고 폐지가 되는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곁에서 날 좀 봐달라고 외치는 기록들이 있다면, 오늘부터 손잡아 보시지 않을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