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요즘, 취업 준비를 한다고 이것저것 공부를 하고 있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고 좋은 음악이 나오는 술집이었다. 고등학교 추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테이블에 술병이 한 병, 두 병 늘어가면서 이야기가 깊어졌다. “졸업하면 뭐하고 살지?” 친구가 한숨처럼 뱉었다.


“뭐하고 살지?”가 “왜 살고 있지?” “앞으로는 뭘 위해서 살아야 하지?”로 이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낯간지러워서 못했을 것 같은 진지한 이야기, EBS나 철학책에나 나올 법한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노을이 질 무렵에 만나서 버스가 끊길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다. ‘택시를 탈까?’ 고민을 했다. 용돈도 아낄 겸 오늘은 걸어가기로 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걸으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토익은 무슨 소용이고 학점은 무슨 의미가 있나?’ ‘직장을 가지면 행복할까?’ ‘왜 죽지 않고 살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집까지 가면서 삶의 이유와 목적에 관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성안동에서 가장 심오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면 회의감도 사라지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이후로 한동안 책도 보고 다큐도 봤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질문의 답을 찾았다. 먼저, 물건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려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물어봐야 가장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이유와 목적을 알려면 ‘인간의 기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가 만들었는가?


200년 전 태어난 다윈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느 가설과 비교해 봐도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을 내놓았다. 바로 진화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할 때만 해도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2세기가 지난 지금은 수많은 증거가 발견됐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순수한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저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살아남은 생물이 자식을 낳고 태어난 생물이 또 자식을 낳는 과정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에게 절대적인 존재이유나 존재목적은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신이 정해준 소명도 없고 날 때부터 정해진 쓰임도 없다면 반대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인간은 40억년에 가까운 진화과정을 겪었다. 진화의 결과로 다른 생명체들이 갖지 못한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됐다. 이 지능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꿈꿀 수 있다. 그리고 이 지능을 바탕으로 꿈을 현실로 만들 수도 있다. 삶의 이유와 목적은 이 능력을 가지고 내가 정하면 되는 것이다.


내 나름의 답을 찾은 뒤에도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정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의미 없다고 느끼던 취업을 위한 공부도 계속 해야 할 거다. 실제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왠지 다음 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마음이, 전공책과 토익책이 든 빵빵한 가방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