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자니까 내 젊은 시절의 사소한 것까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자 사물의 고귀함과 품위가 생존의 마지막에 달하기라도 한 듯 나를 다시금 높게, 멀리 이끌어 올린다.” 37살에 이탈리아로 비밀 여행을 떠난 괴테, <이탈리아 여행기>의 기록 중 하나다. 괴테가 온갖 미사어구까지 붙여가며 표현한 여행의 미학.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예술적 돌파구를 열었다고 한다.

 

  섬이라 하면, 에메랄드 색의 푸른 바다와 축 늘어져 있는 야자수 나무, 그리고 동글동글한 몽돌을 떠올리곤 한다. 여행에는 문외한인, 정확히는 여권조차 없는 나조차도 섬이란 그런 그림을 그려내기 마련이니까. 하와이, 괌, 사이판, 푸켓... 가보지는 못했지만, 소셜커머스에 패키지로 나와 있는 모습은 그랬다. 섬이란 먼 곳을 바라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눈에 끝없는 지평선을 선사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나는 여행을 못 갔을까. 돌이켜보면 싸구려 20만 원짜리 패키지라도 함께 가길 제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항상 붙는 변명. “그 주는 시험이 있어서.”, “그 주는 알바가 있어서.” 하물며 일정이 없는 날마저도, “나 영어 못해. 돈 아깝게 거길 왜 가.”라며 반문을 일삼았다.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비행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기였던 것이다.

 

  내게 여행이란 가진 자의 몫으로 정의된다. 20만원이 그들에겐 싼값의 범주에 들어가더라도, 내겐 비싼 값에 포함되는 개념이었다. 재재작년부터 기초생활 노인 수급자가 월 20만원을 받으며, 작년부터 가전제품을 교환하면 20만원을 지원해준다. 게다가 최저임금 기준으로는 꼬박 하루 하고도 한 나절을 더 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다. 이 장기적인 소유와 단발적인 즐거움을 교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정은 소유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소유한 가치가 같아야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학벌주의가 횡행했다면, 지금은 수저론이 들끓는다. 오늘 점심 겸 저녁은 스테인리스 수저로 3분 카레를 먹으며,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봤다. 이럴 때마다 드는 못된 생각이 하나 있다. 차라리 모두가 가난한 공산주의였으면 좋겠다고.

 

  괴테는 비밀 여행을 마친 뒤 그의 걸작 <파우스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탈리아 여행기>에서도 여행을 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청사진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5월이다. 어제 자 신문도, 오늘 자 신문도, 너나 할 것 없이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있다. 여행지를 추천해주기 전에 여행을 갈 여건이 되는지 물어보는 예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에서도 <파우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섬에 대한 잡지쯤은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