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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고 섬세한 감성이기에 동화책에 들어가는 따뜻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바야흐로 사진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제 소형 폰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진을 찍고 올리는 시대에 사진 작업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자기표현과 치유의 도구로, 혹은 동화 속 스토리텔링의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에게 음악 연주자 생활과 사진에 대한 열정은 같은 길을 가는 친구 같은 존재다. 


1.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언제부터인가?


중학교 때 같은 동네에 고등학생 친한 형이 있었는데 당시 사진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기 뷰파인더를 들여다봤는데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보였다. 셔터에 올려놓은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다. 감수성이 충만한 사춘기였기에 더 진하게 다가온 것 같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등학교 때는 아예 사진부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학예발표회 때 사진 전시도 하고 순전히 사진 때문에 고3 여름방학 때는 가출을 했다. 사진학과 입시 준비 중이던 친구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향했던 것이다. 한 달 반을 흑석동 고등학교 대선배 자취방에 기거하면서 무작정 눌러 앉아 버렸다. 당시 중앙대 사진과를 나와서 대학 동아리 ‘알림방’이라는 사진 서클을 운영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도 참 난감했으리라 본다. 여지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촌놈이 서울까지 와서는 단지 사진을 배우겠다고 저렇게 떼를 쓰고 눌러 앉았으니 말이다. 집에는 직접 전화하기 겁나서 선배에게 대신 해달라고 했다.


그 때부터 체계적인 사진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다. 배우겠다는 열정도 강했지만 선배의 교육 또한 매우 엄했고 강도가 높은 교육이었다. 이론부터 역사, 기술적인 테크닉까지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사진을 기초로 해서 매일 암실에서 필름 현상과 인화 작업을 했는데 대학생들이 쓰는 써클이다 보니 형들 누나들 속에서 같이 작업을 해야 했다. 선배들이 연습할 때는 자리를 비켜주고, 가고나면 그 자리를 차고 앉아 손에 익을 때까지 줄곧 암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고3 여름을 그렇게 보냈다.


같이 상경한 친구는 중앙대 사진과에 진학했고, 난 떨어졌지만 재수할 형편은 안 되어 대구에 있는 계명전문대 사진영상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열등의식이 강했던 사춘기 시절, 대학 진학하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타지에 올라와서 외로움도 컸지만 학과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것 복습 정도라서 식상했고 새로운 무언가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무렵 ‘마파람’이라는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 해 강변가요제 동상을 받게 되었다. 그 때부터 사진 쪽보다는 노래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군대 복무 시절 사진병으로 지원했던 기록 때문에 군대 방송실에 차출되어 사진과 영상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생활하게 되었다. 제대 후 복학을 가고는 사회 생활, 결혼,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꿈과 희망을 접어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십이 넘으니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자꾸 늘어만 갔다. 이 소통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폰에다가 사진을 담았고 페북 공간을 통해 사진 이야기를 담아 페친들과 소통해 나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다시 사진을 시작한 것은 4~5년 전이다. 재작년 겨울에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부산에서 단체전, 작년에는 동화책 작가로 유명하신 김인자 작가와 운명적 만남으로 최초로 사진과 동화가 결합된 책을 만들게 되었다.


2. 김인자 동화작가가 특별히 느낀 작가의 감성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차별성이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만의 색이 담긴 내용, 주제, 테마가 멋져 보였다. 사진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함인데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 책 제목이 <할배 할매 참 곱소>다. 페북에 김원자 선생님이 읽어주는 강독 내용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올리고 있다.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에게 내 사진과 결합한 동화를 읽어주고 있다. 동화책은 보통 그림하고 글이 주로 결합되는데, 사진하고 글이 결합한 동화책을 만들었다. 사진 하나에 맞는 이야기를 동화작가가 지어낸다.


손님이 나물 파는 할머니 좌판을 보고 “할머니 나물 조금만 주세요.”
좌판상 할머니 왈 “다 사.” / 손님이 “다 사다가 뭐하게요?”
“지져먹고 볶아 먹고... 삶아 먹고 / “두 식구라 그리 많이 필요 없어요.”
“그럼 안 팔아.” / “아니 조금만 파세요.” / “아니 안 팔아.”
이런 식의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많이 독특한 방식의 동화책이다.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다.


3. 사진을 찍는 주요 관심 대상은?


주제는 따로 잡지는 않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 ‘길’이라는 주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일상의 길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있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길, 내가 돌아가면서 느끼는 길,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길은 앞에 주어져 있지만 되돌아오는 길, 가서는 못 보고 옛날 모습은 아니지만 돌아와서 그렇구나 이렇구나 하는 생각. 울산을 떠나 안양에서 17년을 살았다. 도로도 모든 게 너무 변해 있더라. 하지만 원래 하고자 했던 내 마음, 그런 마음가짐은 남아 있더라. 작가의 길, 초심과 같은 것, 오래 산 타향을 떠나왔지만 붙잡고 싶은 것이 있더라. 긴 시간 동안 카메라도 없어지고 했는데 돌아오니 다시 카메라를 찾게 되더라. 사진을 찍을 때는 안양천을 2~3년간 돌아다니며 찍었다.


카메라를 쥐었기 때문에 돌아보게 되었는데, 자연이 질문을 던지더라. 전시회에 올린 사진이, 야밤 벤치에 ‘테이크아웃’ 잔에 빨대가 올려져 있는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이 나를 보고 “힘들어?” 하고 말하는 것 같더라. 또는 보도블록 사이 틈에 잡풀들이 자라는데 그 모습이 “나는 어땠을 것 같아?”, “네가 힘들다 힘들다 해도 나 만큼 힘들겠어?” 하는 것 같았다. 용기와 은혜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자연의 그 작은 부분이 나에게 교훈을 주고 있더라. 내가 사진을 하고 있는 것이 참 좋은 것이구나. 이 미물이 나에게 위안을 던져주고 있으니...


내 내면의 세계를 표현해 내는 것이 사진이더라. 내가 속에 든 것을 다 내놓고 던질 때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있더라. 사진에 손을 못 놓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저절로 주제가 그런 쪽이 되더라.


4. 개인 전시회 한 번 연 것으로 아는데 좀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대구에서 개인 전시회를 했는데 ‘바람결에 새겨진 눈물이 나리던 날에’다. 안양천을 걸어 다니며 찍은 감성적인 사진, 안양천 주변의 다양한 사물에 내 감성을 담아 표현한 전시회였다. 같은 제목으로 시화집을 냈다. 자연 속에서 주는 감성을 끌어내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5. 동화책 작업을 같이 한 김인자 선생님과 만난 인연을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인자 동화작가는 16권의 책을 내신 분이다. 선생님에게도 사진으로 동화책을 내는 것은 첫 시도다. 예전부터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내 페북 사진을 보고는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김인자 작가는 책 읽어주는 동화 작업을 쭉 해왔다. 주제가 할아버지, 할머니. 일상에서 겪어서 나오는 사진으로 너무 멋지게 찍지는 말라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이 묻어나오는 사진을 찍어 달라 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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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퇴근하는 그 시간대에 40~50분 그 시간에 2년간 찍어왔다. 평상처럼 모이는 장소이고 할머니들이 주로 대상이 되었지만 시장, 노상에 물건 파는 할머니, 남부, 중부시장을 돌아다녔다. 동동주 한 잔 하면서 나오는 분들, 할머니가 누어있는 사진, 동화책 이름처럼 ‘할배, 할매 참 곱소.’ 쓸쓸하고 우울한 모습이 아니라 밝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국한되지 않고 대가족 생활에서 느끼는 것을 핵가족 사회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김인자 작가가 대단한 분이다. 독거노인을 찾아가거나 동네 노인정을 찾아가서 동화책 읽기를 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무 좋아하고 반기신다. 독거노인 돌보다가 임종하는 모습을 보고 아파하기도 한다. 작가님의 감성이 맞는 것 같아 이 분이면 끌어내 주시겠다 해서 같이 하게 되었다. 멋 내지 말고 찍어달라고 주문하더라.


6. 사진 작업을 하면서도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사진영창과에 입학해서 수업 과정이 시시하고, 너무 건방을 떠는 것 같아도, 너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음악은 나에게 위로가 많이 되어 주었다. 벤치에 통기타를 치며 나에게 위로가 많이 되더라. 사진 활동 빈도수가 점차 줄고 음악으로 흘러가더라. 음악 서클에 들어갔는데 학교 축제, 학교 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강변가요제 중창을 나가게 되었는데 동상을 받게 되더라. 음악을 좋아하니까 그 중창단에서 끼워주더라. 다섯 명의 중창단이었는데 ‘소낙비’ 이름으로 88강변가요제에 동상을 받았다. 그 당시 대상은 이상은 씨, 금상은 이상우 씨, 은상은 잘 모르겠고 장려는 박성신 씨가 받았다. 그 때부터 음악을 하다가 졸업하고 울산에 내려왔는데 그룹사운드를 만들었다. 상복도 있고 취미도 있고 하니, 사진에 있어 음악은 밀어주고 당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혼하고 사회 생활하면서 맥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안양천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개인전을 하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면서 안양 생활을 정리하고 울산에 내려오게 되었다. 일단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 사진을 하기 위해 내려오니 더 힘들다. 홈플러스 배송 업무 등을 하니까 사진 찍을 시간이 없더라. 먼저 갖다 주고, 고객이 주문을 했는데 11시~12시 쉬는 시간도 일정치 않고 사진을 못하겠더라. 지금은 폐기물 처리 일을 한다. 자동차 정비소에 들러서 폐기물과 재활용용품을 거둬 오는 일을 한다. 배송할 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더라.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일을 하다 보니 체형, 피부,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보통 일이 아니더라. 직업병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지금 색소폰을 다시 사서 배우려고 한다. 이걸로 3년 동안 매달릴 생각을 한다. 사진 작업 시간을 벌기 위해 직업을 바꾸려고 한다. 무거동에 실용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색소폰으로 새로운 일을 하려는 것이다. 그 학원은 일렉, 통기타, 드럼, 색소폰을 다 하는 곳인데 강사로 뿐만 아니라 직책도 부원장인 특수관계인이다. 거기서 많이 후원을 해주고 있다.
생계와 관계되기도 하고, 예술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줄어간다. 사진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고 마음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나 집이 그런대로 잘 사는데도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안 도와준다.’는 입장이다. 사진이나 책 등 예술 과정이 힘들지 않으면 이런 표현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운하면서도 누나 말이 맞더라. 예술을 하더라도 이런 사진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7. 오랫동안 사진 작업을 해왔는데 사진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진은 ‘마음의 도구’라 생각한다. 대내적으로는 나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표현하는,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전시했을 때, 100명이든 한 명이라도 공감대가 형성되면 사진이라고 본다. 가장 갈증을 느끼는 부분은 사진 전시회를 가보면, 내가 표현하려는 부분이 있는데, 좀 더 생동감 있는 사진, 기술력의 한계도 있지만 카메라 자체의 문제, 젊은 시절 막 살았을 때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후회가 있다. F값이 밝은 렌즈 카메라가 있는데, 이것이 밝기뿐만 아니라 색감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 남이 표현한 것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8. 제일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어떨 때인가?


전에 안양천을 걸어갈 때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 풀을 쓰다듬었을 때 자연과 소통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큰 행복감이 들었다. 자기 분석을 해본다면 어릴 때부터 자랄 때 보면 내 혼자 생활이 좋겠다 생각한다. 내 성격은 선과 악이 맞물려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었다. 날아가는 새를 새총으로 쏘아 날개에 맞췄는데 떨어져서 파닥거리는 새를 보니 갑자기 불쌍해 소독약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죽으니 털을 뽑아 구워 먹었다. 그 때 당시는 ‘내가 나쁜 놈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언제나 뭔가 강렬하게 소통하고 합일되고픈 욕망이 있는 듯하다. 생활 속에서도 이어지는데 음악과 사진과 같은 관계인 것 같다. 음악과 사진 어느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양면성이 강하다고나 할까?


예전에 이경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프로그램을 보다가 먼저 생각한 것이 있는데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버리고 싶더라. 그래서 내가 안경을 거꾸로 쓰고, 옷도 뒤집어 입고 속옷도 뒤집어 입고 다녔다. 아이를 업는 아줌마가 “학생.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었네요.” 하길래 나는 “이것이 정상인데요. 이 옷은 원래 이렇게 입는 겁니다.” 하며 내 방식을 고집한 적이 있다. 사진영상학과를 다닐 때 이야기다.


머리를 묶고 다니는 스타일의 특이점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편이다. 일터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약속이 있으면 먼저 나가면서 당당히 “저 먼저 갑니다.” 한다. 이런 격한 감정이 사진을 통해서는 절제되어 있다. 남들과 같아지는 것을 싫어한다. 사진에도 표현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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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작업을 위해, 꽁지머리 등 자신의 독특함을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간다.  >


9.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소박한 꿈이 있다고 하면 산중이던 자연 속에서 혼자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동경한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촌에 들어가면 아주 편하게 살 것 같다. 한 번씩 심심산방에 가면 아주 좋더라. 저런 생활이 내 스타일이다 싶더라. 작은집에 자급자족하는 생활. 거기 산에 먹을 것이 많더라. 쌀은 주변 지인에게 좀 얻어먹으면서 그 시간에 사진 작업 더 하고 텃밭을 가꾸면서 말이다.


10.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은?


울산에서 사진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 듯하지만, 사진 활동이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울산에도 사진의 저변 확대를 위해 ‘사진을 하고 있다’고 드러내놓고 활동하고 싶다.


사진을 내려놓지 못하기에 울산에서 적당한 일을 기획하고 있다. 울산에 맞는 사진 작업거리를 찾고 있는데 최근 하나 도둑질한 것은, 심심산방 근처 탑골샘을 갔다가 태화강의 원류, 생명, 태화강의 발원지에서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사진 작업하는 분이 있는가 싶다.


울산에 연어 살리기 위해 치어로 방류하는 행사 등 강과 관련한 행사가 많다고 보는데, 생명의 강과 관련하여 작업해보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고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