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부산네트워크가 22일 부산YWCA 회의실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기본소득네트워크는 지구>한국>부산 순으로 체계적이게 지역단위가 구성된다. 부산네트워크 관계자들은 앞으로 광역시 단위에 광주, 울산에만 네트워크가 발족되면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자리를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빛내주었다. 그는 속된 말로 요새 기본소득에 ‘꽂혀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네트워크 발족 축하 강연을 간추려 본지에 소개한다. <편집자 주>


#나의 이름은.


저는 반지배주의자입니다. 평화가 제 삶의 목표입니다. ‘세계평화’ 말입니다. 그래서 제 이름도 이를 줄여서 세화입니다. 
저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은행장입니다. 장발장은행을 꾸리고 있습니다. 28개월 동안 500여명을 감옥에 안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니까 벌금을 못 내면 감옥으로 가는 겁니다. 자유를 빼앗기는 값은 하루에 10만원입니다. 하루 자유를 빼앗기고 벌금 10만원을 값합니다. 이들은 거의 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벌금형이 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2015년에만 4만7855명이었습니다. 이는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들을 도우면서 ‘심사’라는 말에도 참 어폐가 있지만 주어진 예산에 맞추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면서 없는 사람은 왜 계속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추하게 된 것이 기본소득입니다.


#죽음의 숫자 1,5,13,37


여기 죽음의 숫자가 넷 있습니다. 1, 5, 13, 37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각각 하루에 타살, 산재, 교통사고, 자살 순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수입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현실정치는 구체적 민중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정치게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5도 줄이고 37도 줄여야죠. 이는 동시대인이 겪는 죽음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인간성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지금 민생 사회를 보듬는다고 말하지만 이와 동떨어진 자신의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기본소득을 공부해야겠기에 책을 몇 권 골라봤습니다. <기본소득의 쟁점과 대안사회>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등을 추천합니다. 아울러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이라는 책은 자유와 기본소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에 꽂히다


기본소득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보편성, 무조건성. 누구한테나, 조건을 묻지 않아요.


그리고 지속성. 생존과 서비스에 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제공합니다.


유럽 캐나다 핀란드 등에서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먼저 제기됐어요. 부의 편중 현상에다 그 속에서 굴종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그리고 지배담론에 스스로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이것이 민주주의의 왜곡으로 이어지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죠.


한국사회에서는 기본소득의 의의를 민주주의의 성숙에 필요한 긴요함에다 방점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민의 성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는 바뀌길 바라면서 자신은 바뀔 생각이 없는, 주체적인 인식의 결여를 고민해봅니다. 민주주의에서 민주의식입니다. 내가 사회구성원이라는 의식, 내가 바뀌는 만큼 세상이 바뀐다는 점.


시민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성의 결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일제강점기부터일 수 있는데, 이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혹시 우리는 무언가 남이 대신해주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진보정치나 노동진영에서도 그렇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인간을 불안케 하는 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처음 복지를 주창했고요.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하게 만드는 불안의 문제는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접근을 해보려 합니다. 열쇳말은 몸자리입니다. 몸자리, 몸자리의 궤적. 이것이 바로 각자의 삶이지요. 문자 그대로 몸이 놓이는 자리의 궤적인데요. 몸은 존엄하게 태어난 존재이죠. 그러니 놓인 자리에도 존엄성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그럴 때만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겠죠.


그럼 자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처지에 의해 놓이는(수동) 자리, 의지에 의해 놓는(자동) 자리가 있습니다. 몸자리가 그 사이의 유기적 결합이라고 한다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수동이 인간의 존엄성 밑으로 추락하게 하고 불안, 고통스럽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은 지금 본인의 의지로 이 자리에 왔습니까? 그렇듯 본인의 의지라면 존엄성이 추락하는 곳으로 자신을 내몰지 않겠죠. 그런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추락.


가령 조지 오웰은 자기 스스로 그 시대에 백인인데다가 종주국 영국 출신이지만 스스로를, 인간을 존엄성 밑으로 몰아넣었죠. 대단한 사람이라 봅니다. 하지만 처지에 의해 추락해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존엄성을 누릴 수 없는 자리에 가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불행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능성 때문에 대다수는 불안을 느낍니다. 이것이 학생들에게는 경쟁을,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일들을 요구합니다.


사실 이런 인간성, 관계성의 훼손을 사회 내부에 있어서는 잘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성의 위축과 왜곡 정도를 가늠할 순 없어도 인식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합니다.


#불안의 내용 다섯 가지


불안의 내용은 주로 주거, 건강, 교육/양육, 노후, 실업 등입니다. 이 때문에 복지국가에서는 불안 요인을 최대한 줄이는 공공주택, 의료보장성, 교육무상화, 기본적인 삶, 보험/일자리 보장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유럽마저도 이 복지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럽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요? 한국에서는 공공주택보다 부동산 정책이 우선이요, 건강보장성은 미국보다 나으나 유럽보다는 뒤쳐집니다. 물론 중학교까지는 무상(*울산에서는 무상급식이 정착되지 않아 이마저도 아닌 상황. -기자 주)이나 사교육비와 대학교 학비가 과다합니다. 또 워낙 가난한 노인층이 많고 여전히 사회안전망도 부족하고 대단히 열악하죠.


이 같은 문제를 한국사회에서는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회운동적 측면에서 이를 각개격파하기에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회운동의 어려움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보다 사회운동적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에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등의 맥락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서민에게 잘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제 생각에는, ‘무상교육 좋은데 언제 되겠느냐?’는 생각에 의한 것이라고 봅니다. 또 의제 자체가 초등학생 부모는 무관심, 대학생 둔 부모도 무관심한 겁니다. 시차에 의한 관심 부족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요. 무상의료는 더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 있는 경우는 언제 되겠냐 싶고,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도 안 아플 것이라고 생각해 무관심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추동력, 추진력을 갖기 어려운 이유이죠.


그런 면에서 기본소득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부족한 면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으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거죠.


19세기는 노예해방의 시대, 20세기는 보통선거의 시대, 21세기는 기본소득의 시대라는 기치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운동의 역동성이라는 면에서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를 전면에 내세워야 합니다. 이는 좀처럼 쉽게 설득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설득 안 되는 한국사회


말인즉슨, 언어적 측면에서 ‘생각’이라는 명사와 ‘생각하다’라는 동사의 엄청난 비대칭성을 들여다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하다’는 회의하다, 의문을 품다, 이런 뜻이 있죠. 그러나 명사 ‘생각’의 성질은 고집입니다. 보십시오. 학교나 가정에서나 ‘생각하다’가 없습니다. 글쓰기 토론 없이 암기만 합니다. 사형 제도를 예로 들면 찬반 여부를 토론하지 않고 어느 나라가 사형제를 폐지했냐며 ‘사지선다’ 문제로 만들어버립니다.


한국의 사유화 과정에서 생각하다, 회의하다의 과정 없이 주입식 암기 교육 등으로 생각(고집)만 갖는, 생각(명사)의 본질은 고집이죠. 회의할 줄 모르는 고집을 갖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전부 고집불통이고 설득이 안 되죠.


여러분은 부부 사이에 생각이 다를 때 설득하십니까? 거의 불가능하죠? 한국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 심합니다. 왜냐면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해서 생각하게 되었는지조차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생각(고집)만 남아 있는 상태기 때문이죠.


이는 삶, 인간관계, 사회운동 모두에서 걸쳐 있는 문제입니다. 설득이 안 되기 때문에 실제로 설득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것이 드러나도 대부분은 덮고 갑니다.


(홍세화 씨가 청중들에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어느 팔이 턱을 괴고 있는지 그 팔은 어느 다리가 받치고 있는지 등 조각의 세부 모습을 물어본다.)


#생각하는 사람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이건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교의 문제입니다. 도무지 글쓰기와 토론을 해본 적이 없잖아요. 설득이 가능하지 않으니 사회운동이 안 됩니다.


흔히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안에도 조직, 학습(교육), 선전/홍보 조직은 꼭 있습니다. 아주 작은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설득이 안 되는데 선전홍보가 가능할까요. 부부 간에도 그러할진대... 그리고 설득을 포기한 것은 나 역시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선언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의식에 있어서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양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알량한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 진보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학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유론>을 보더라도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찰, 경청, 살펴봄, 생각의 수정/채움 등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요.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 생각부터 먼저 바뀌는 것조차도 힘듭니다. 


(*주어진 강연시간 40분이 다 되어 서둘러 마친다.)


오히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이 한국의 사회운동에 갖는 소구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사회에서 21세기가 기본소득의 시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문답과 보충> 기본소득은 인간성의 확장


기본소득부산네트워크 관계자가 보충설명을 한다.


“기본소득에는 개별성 보편성이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노동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집니다.”


이어서 간단한 문답이 이어졌다.


=기본소득에 대해 ‘놀고먹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먹지 않으면 일을 못 합니다. 요걸로 치고 나가야죠. 그리고 성서를 보더라도 ‘놀고먹는다’는 얘기가 맞는 맥락은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이 사는 게 얼마나 고생스럽습니까. 역으로 생존 자체가 생존의 필수적인 요구가 되고 있습니다. 복지서비스 자체가 유럽사회에서조차 완전고용 때나 가능한데 산업구조라든가 유럽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일자리가 주어질 수 없는,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상황이 오면 인간으로 존재의 권리를 요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가?’는 변화할 수 있는 겁니다. 기본소득은 인간성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인식을 가두고 있는 불안을 타파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요?


=미래에셋 분석에 의하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에 덧붙여 높은 세금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미래에셋 자료라고요? 설명이 의도적이네요. 높은 세금이 한국의 상황은 아닌 거 같아요. 예전부터 보수언론에서 ‘남들은 다 내리는데 우리만 올리나?’라고 지적하는데 국가별 국민조세부담률을 보면 꼭 맞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국이 설득 가능하지 않는 사회라고 한다면 설득이 가능한 인구가 많은 사회나 지역에서는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그곳 역시 쉽진 않으나 우린 더 어렵죠. 진보진영에 왜 그런 사람들 있죠. 거의 다 선배 잘못 만나서 고생합니다. 그리고 대단히 오만하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반만 깨어난 사람들이 고집은 또 셉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거의 다 독불장군들입니다. 대부분 근본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어요. 생태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엔엘(민족해방주의자) 등도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러다보니 화합도 안 되고 좀 의식이 깨어났다는 사람들마저도 그러니까요.


제가 너무 부정, 비판적일지는 몰라도 사회적 환경 변화에 의해 교육환경도 바뀔 거고 그래도 앞으로는 좀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끝>


정리=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