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반핵운동이 국제적인 환경단체들과 국내 환경단체의 전유물인 시절을 지나 각계의 시민운동진영에서 외치는 구호이자 바야흐로 대통령까지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선언한 단어이다.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핵발전소 영구 폐쇄 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앞에서 탈핵 시대을 선언하며 탈핵 로드맵을 수립할 것과 신규 핵발전소 계획 전면 백지화 및 핵발전소 설계수명 연장 금지와 노후 핵발전소인 월성 1호기의 조속한 폐쇄를 선언하였다.


이와 같은 선언의 배경에는 핵발전소의 도를 넘는 위험수위라는 조건이 있다. 국토면적당 핵발전소 설비용량은 물론이고 핵발전 단지별 밀집도는 물론이고 반경 30킬로미터 이내 인구수도 모두 세계 1위다. 특히 울산과 부산에 있는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안에는 부산 248만 명, 울산 103만 명, 경남 29만 명 등 총 38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월성 핵발전소도 130만 명으로 2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지극히 위험한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이었던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언 이후 후속 대책이 발 빠르게 준비되지 않고 공사는 계속되어갔다. 급기야는 사회적 합의의 전제는 공사 중단임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민주당 울산시당사에서의 24시간 밀착촉구행동과 시민여론에 의해 국무조정실에서 6월 27일 잠정적인 공사 중단을 결정하였고, 더불어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는 3개월 기간 동안의 공론화 과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은 대선 기간을 거치면서 투표라는 형식으로 이미 결정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힘 있게 실현하지 못한 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꼴이기도 하다. 결국은 정부의 의지가 문제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갓 출범한 신생 정부라는 현실적 한계와 탈핵이라는 역사상 미증유의 정책 실현이라는 역사적인 무게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결국은 시민이 결정하는 것이다. 한 번은 정치적 투표로 시민의 뜻을 보여줬다면, 또 한 번은 집단지성이란 사회적 힘으로 보여주며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기로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에너지, 특히 핵발전소에 관련해서는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소위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관련 학계와 산업계가 독점적인 카르텔을 형성하여 지난 40여 년 동안 일방적인 결정을 하는 구조였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지난해 6월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 과정이었다. 설계수명을 60년으로 하여 예정대로 건설될 경우 2082년이 되어서야 폐쇄가 가능하고, 기존 고리의 4기와 신고리의 4기를 합쳐 총 8기의 원자로에다가 2기가 더해져 총 10기의 원자로를 한 부지에 지음으로써 세계 최대의 핵 밀집단지가 되며, 30킬로미터 반경에 380만여 명이라는 세계 최대 핵 인근 인구밀집지역이 되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 승인 과정이 단 세 차례의 회의를 거치고 결정된 것이다.


반대쪽 의견을 가진 위원 두 명이 제기하는 각종 자료 요청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복사 금지, 현장에서만 열람 가능, 동반인 불허 등 철저한 보안 속에서 투명한 자료공개를 막기까지 하였다. 그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수령한 현장에서 단지 열람만 할 수 있다면 아이큐 200의 천재적인 머리로 사진 찍듯 암기하지 않는 이상 자료 활용의 의미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처럼 아직까지 핵 마피아로 통칭되는 핵 카르텔은 어떤 것도 전부 보여준 적이 없다. 공개하더라도 극히 일부분,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역사를 뒤집어 공개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하는 공론화를 거치는 사회적 합의를 한다는 것은 분명 진일보한 과정이다.


많은 국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하여 의견을 형성하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많은 시행이 이루어져왔다. 법정에서의 시민 배심원제도 이런 종류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완전한 공론 과정은 아니나 공식적인 위원회를 숙의적인 형태와 결합시킨 사례였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 직후 메르켈 총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독일 전 환경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화학기업 바스프 회장, 사회학자 율리히 벡 교수, 울리히 피셔 가톨릭 주교, EU 환경자문회의 의장 등 17명으로 구성하여, 4월 4일부터 5월 30일까지 8주간의 활동으로 결론을 내도록 했다. 일반 시민에게도 토론 과정을 개방, 11시간에 걸친 토론을 생방송으로 독일 전역에 중계하면서 ‘17인 윤리위원회’ 위원들과 핵공학자, 태양광 에너지 관련 교수 등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했다. 시청중인 시민들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결국 17인 윤리위원회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고, 이 결정을 연방의회에서 83%의 찬성으로 법으로 못 박았다. 이 위원회에 소위 핵공학자나 핵산업계 관련 인사는 배제됐다. 다만 패널로 참여, 정보를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이해관계로 편향된 결정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판단은 깊은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으로서, 다수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조사나 합의회의와는 약간 다르나 과거의 밀실, 일방적 결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앞으로 3개월 동안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핵 카르텔에 봉쇄되었던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공유일 것이다. 그것이 담보된다면 시민들의 공적인 이성은 충분히 집단적 지성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에너지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김형근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