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순천으로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한 청년활동가가 지역을 떠난 이유’라는 제목으로 순천광장신문에 실렸다는 김혜민 씨의 글이 실린 기사를 봤다. 글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나이와 신상을 따져 물어 위아래를 정하고 감수성 없이 던져지는 말과 행동에 대한 불편함, 비슷한 생각을 나눌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이 부분이 너무 와 닿았다. 이것은 꼭 순천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지역에서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힘들게 느끼는 부분이라고 본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던 중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울산에서 미디어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그러나 울산의 미디어 환경이란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울산의 대학에는 미디어 관련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방송, 연극영화 등의 전공 과가 없다. 그래서 학생시절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 버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다. 울산 내부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미디어에 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 전무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미디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관심도 없고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할 사람, 의논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 내가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마다 ‘너는 전공도 안 했잖아. 너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 많은 것 알지? 먹고 살 수 있겠어?’라는 걱정 3종 세트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이것은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를 걱정한다고 해주는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나에게는 결국은 너는 그것을 할 능력이 안 되니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와 함께 무시와 멸시가 깔려있는 부정적인 말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지적하고 걱정할 뿐 도와주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구경하고 방관할 뿐이다. 정작 도와주는 사람은 소수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런 걱정 3종 세트 속에서 내가 말하는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악착같이 해왔고 대부분은 증명해냈고 그 과정에서 걱정 3종 세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1. 너는 전공도 안 했잖아 : 전공을 안 했다고 못 한다면 지금 대학 때 전공한 일을 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한 10년 전부터 나온 통섭과 통합의 개념에 비춰 봤을 때도 전공융합은 시대적 과제고 필수다. 이런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전공을 안 한 것이 장점인 부분도 있다. 


2. 너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 많은 것 알지? :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많은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대단한 사람과 가장 많이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바로 관련 업계 사람인 나다. 이런 이유로 어떤 것을 시작하지 못하면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나보다 어머니가 더 잘 하신다. 그럼 나는 요리에 관심이 있어도 요리를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럼 그 누구도 어떤 일도 도전할 수 없다.


3. 먹고 살 수 있겠어? : 먹고 살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먹고 살 수도 없는데 계속하고 있겠는가? 생계가 안 되면 알아서 포기할 것이다. 생계가 걱정되면 이런 말보단 차라리 일을 달라. 아니면 일을 줄 곳과 연계를 시켜 달라.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의 이력을 보고 너무 주먹구구식 아마추어 이력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내 이력을 보면 서울이나 부산 등 미디어시장이 활성화된 곳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아마추어 이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반문한다. 그곳은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화려한 이력이 가능하지만 이곳은 울산이다. 울산은 제대로 된 시스템도 환경도 구축되어 있지 않다. 주먹구구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울산에서 이 정도 이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갖춰진 곳보다 훨씬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된다. 그렇게 노력했다 해도 만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절대적 비교를 하면 안 된다. 환경 자체가 다르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에서 사람을 모을 때 100명 중 100명을 모으는 것과 10만 명중에 1000명을 모을 때 무엇이 더 어려울까? 난 100명중 100명을 모으는 것이 몇 배로 더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 100명과 1000명이라는 결과적 숫자에만 주목하고 1000명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평가 방법인가 의문이다.


이런 무시와 멸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쳇바퀴가 돌 듯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계속되는 반복에 나는 너무나도 지쳐갔다. 나아가 이것을 나누고 고민하면서 함께 이겨낼 만한 또래 친구도 없었다. 그런 친구들은 진즉에 울산을 떠났고 이런 상황에서 굳이 지역에 사명감을 갖고 계속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도 계속해서 들었다.


얼마 전 울산에도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가 생기면서 황무지 같은 울산의 미디어 환경에 한 줄기 희망이 생겼고 나는 이곳에 강사로 활동하게 되면서 위에서 말했던 3종 세트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고 아마추어적 이력에 공신력 있는 직함을 갖출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본다. 만약 이번에 강사로 활동하지 못했다면 나도 순천을 떠난 김혜민 씨처럼 지금까지 울산에서 해왔던 일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이창수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