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작가세상


푹푹 찌는 삼복더위다. 온 세상은 마치 물에 흠뻑 젖은 개처럼 헐떡거린다. 태양과 바람의 이솝우화를 떠올리며, 아무래도 이솝은 여름이 없는 계절을 살지 않았나 의심하며, 바람의 소중함을 떠올린다. 그래서 여름의 본질은 어쩌면 강렬한 태양보다는 온 몸에 딱풀을 발라 놓은 것처럼 끈적거리는 눅눅함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래서 도서관 서가에서 <본질에 대하여>(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저, 문학테라피 간)라는 책을 발견한 건 필연을 가장한 우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뒷면에 적혀 있는 ‘삶과 사랑의 무게를 한껏 느껴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르몽드의 찬사야 출판기획자의 적절한 판매 전략이겠거니 싶었지만,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쟈닌 푸강프레즈라는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스칼렛 요한슨 같은 헐리웃 배우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은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시골마을을 우연히 지나던 그녀는 수수한 차림의 차량정비공 아르튀르 드레퓌스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고, 그와 짧은 6일간의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 책은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의 행적을 6일간 좇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단 한마디의 말로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는 우리가 결코 우리가 가진 무언가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타인의 부족한 한 조각인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알랭 버디우가 그의 책 <사랑예찬>에서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내 사랑의 주된 적, 내가 쓰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차이에 반대되는 동일성을 원하는 차이의 프리즘 속에서 걸러지고 구축된 세계에 반대하며 자신의 세계를 강요하려 하는 ‘자아’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본질, 결국 그 본질이라는 것도 자아의 인식이 개입하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형된다.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하지만 인간은 사람에게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그 안에서 다른 무엇을 발견하기를 원하고, 언제나 다름을 욕망한다. 그리고, 그 다름을 욕망하는 자아로 인해 사랑은 파멸로 치닫기 마련이다. 하지만 굳이 개인과 개인의 사랑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이런 모습을 흔히 목격한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모습을 흔하게 목격한다.


‘차이의 프리즘 속에서 걸러지고 구축된 세계에 반대하며 자신의 세계를 강요하려는 자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자아를 강요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일수록 거기에 소속된 다른 사람 모두가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사랑받으며, 내가 누군가의 부족한 한 조각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태양의 부족한 한 부분이 어쩌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본질을 깨닫고 관계가 깊어지기 전까진 통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인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