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자의 시대는 가고, 재해석의 시대가 온다.
미디어는 팩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팩트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미디어는 팩트를 자신만의 맥락에 집어넣어 의미를 생성해내는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세상의 해석자였다. 물론, 해석자는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미디어가 등장했고, 각 미디어가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분류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해석자들 간의 경쟁이었다. 보수지와 진보지, 조중동과 한경오라는 구분은 어디까지나 미디어 시장에서 존재하는 플레이어만을 뜻했다. 사람들은 어떤 플레이어를 선택하는지에 따라서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었’다. 지금부터 나는 새로운 플레이어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오늘 당신은 뉴스를 어디에서 보았는가? 혹시 당신도 지금 네이버나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가? 질문을 바꿔 보겠다. 네이버에서 보지 않았던 뉴스는 어디에서 알게 되는가? 아마도 그것은 단톡방, 페이스북 타임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이 뉴스를 직접 제작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뉴스를 당신에게 전달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특정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던가? 아니다. 언제나 뉴스전달자는 자신만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당연히, 그것을 하는 것은 기존 미디어만이 아니다. 나아가, 그들은 기존 미디어의 해석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미디어의 해석을 다시금 재해석한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더 이상 우리 편은 기존 미디어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인식이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등장했다. 다시 말해, 세상의 해석자들이 건네는 관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편은 누구인가? 다시 말해서, 신뢰할 수 있는 해석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SNS 였다. 단톡방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지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권위 있는 페친, 그리고 같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유저였다.


언젠가 교수님이 포탈 기사의 댓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뉴스가 미심쩍으면 곧바로 비판적인 댓글이 달리는 시대라고 했다. 그것을 비판적 미디어 읽기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용어를 다르게 바꿔보려고 한다. 집단적 언론 읽기라고 말이다. 이제 기사만큼 댓글을 보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종종 댓글에 따라 미디어가 전달하고자 했던 해석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러한 댓글은 특정 방향을 이루고 있다. 단톡방과 타임라인, 그리고 커뮤니티 게시판은 그런 방향이 더욱 뚜렷하다. 기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볼 수는 있어도,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재해석본에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 물론, 기존 미디어보다 훨씬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원래부터 우리는 방송이나 신문에 나온 뉴스에 대해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방식이 좀 더 직접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단 매스미디어의 뉴스를 접한 후에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미디어의 뉴스를 접하는 동시에 재해석자들의 관점이 들어간다. 아니, 처음부터 재해석자들의 의도에 따라 뉴스는 취사선택되어 당신에게 전달된다.


이로 인해 기존 미디어들은 지금까지 크게 겪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에 처하게 되었다. 해석자들의 권위와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해석마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에 한 번 업로드가 되면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사진처럼 말이다.


이때 미디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재해석자들의 해석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재해석자들의 이야기 자체를 오독으로 정의 내린 후 자신만의 판본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문제가 생긴다. 자신들의 올바른 해석이 무엇이건, 사람들을 떠도는 것은 오독으로 정의 내린 해석일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미디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다. 바로, 자신들 스스로가 재해석의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 해석자로서 누리던 많은 강점들이 사라지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그것만이 자신들의 해석을 다시금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박대헌 미디어 전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