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옥타비오 빠스


네가 호박빛 암말이면
           나는 핏줄기
네가 첫눈이면
           나는 첫새벽에 화롯불 붙이는 사람
네가 밤의 첨탑이면
           나는 네 이마에 박힌 불타는 못
네가 아침의 밀물이면
           나는 첫새의 격한 지저귐
네가 오렌지 바구니면
           나는 태양의 칼
네가 돌로 된 제단이면
           나는 불경스런 손
네가 가로누운 땅이면
           나는 푸른 갈대
네가 도약하는 바람이면
           나는 땅속에 묻힌 불무덤
네가 물살의 입이면
           나는 이끼의 입
네가 구름의 숲이면
           나는 구름을 쪼개는 도끼
네가 세속의 도시이면
           나는 성스러운 비
네가 노오란 산이면
           나는 이끼 묻은 붉은 팔뚝
네가 떠오르는 태양이면
           나는 핏줄기


‘나는 핏줄기’, 나라는 존재를 움직이는 생물이라 생각하면 슬픔이 차오른다. 한 목숨으로 태어나서 핏덩어리의 솟구치는 원초적 슬픔으로 시를 받아들이고 시를 이해해왔다. 슬픔은 때로는 숲이 되고 찬란한 태양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분노의 칼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도 있다. 잔잔한 강물로 올 때도 있고 격랑 치는 파도로 나를 덮쳐오기도 하며 슬픔은 켜켜이 퇴적되어 위대한 무늬로 물결칠 때도 있다. 가끔 숨어 있는 슬픔을 찾아내어 형상을 만들면 시가 되어 서 있었다. 덤덤하게 달관한 듯이 구름 타듯이 하다가도 이 슬픔이라는 동물은 스스로 성스러워지지 않으면 푹 젖어 파묻히게 될 우려가 있어 차라리 온몸으로 퍼붓는 비를 맞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현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