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일 교수의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는 근대 유럽 주도의 그릇된 철학사를 바로잡아 새로운 세계철학사를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이다. 철학은 존재 일반(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논란이다. 그러나 학문의 분화와 더불어 철학에 속하던 여러 학문이 독립되어 나가고, 철학 또한 개별학문의 하나가 되었다. 철학이 “이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담당한다는 잘못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철학 탐구와 논란이 한국인의 장기이기 때문에 극복은 우리의 사명이 되었다.


시대에 따라 ‘원시철학-고대철학’-‘중세전기철학’-‘중세후기철학’-‘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철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중세전기’에 ‘이상적 일원론의 철학’이 나와 ‘현실’보다는 ‘이상의 조화’를 추구한다. ‘중세후기’에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원론 철학’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철학’이다. 그러나 ‘이(理)’를 중시하고 ‘기(氣)’를 천시한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현실적 일원론의 철학’이 나와 근대를 지향한다. 이것은 ‘기일원론(氣一元論) 철학’, 또는 ‘기철학(氣哲學)’이라고 한다. 초월적 ‘이(理)’를 인정하지 않고 ‘이(理)’는 ‘기(氣)’의 원리일 뿐이라고 한 서경덕의 주장이 체계화 된 것이다. 한국은 ‘중세후기’ 이후로 철학하는 능력을 발휘해 17~19세기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임성주, 홍대용, 박지원, 최한기가 나와 ‘기철학’을 완성하여 세계철학사를 혁신하였으나 시대적 한계 때문에 망각되었다.


부산 울산 경남은 불도가 센 곳이라고 한다. 큰 사찰이나 작은 암자의 신도들도 불심뿐만 아니라 불교 교리에도 밝은 것을 목격하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중세전기 이상적 일원론 철학’의 대표적 사상을 담고 있는 의상(義湘)의 <화엄이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칠언 30구 210자를 술술술 낭송하는데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신라시대 원효스님은 비참하게 살아가는 천민들을 찾아가서 노는 입에 염불하자며 ‘나무아미타불’을 가르쳤다고 한다. 오늘날 보통사람들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최고 수준의 ‘철학시’를 어렵다는 생각 없이 통달해 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장기이다. 철학하는 동력으로 세계사를 바꾸는 데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의상(義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앞 10구절 읊기


[1]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존재하는 모든 것의 특성은 원융하여 둘(2)이 아니라 하나(1)이다.
[2]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아 공(0)이기도 하다.
[3]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공이라서 이름도 붙일 수 없고 형상도 없이 모든 현상계와 끊어졌다.
[4]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이런 이치는 난해하여 지식으로 배워 알 수 없어, 스스로 깨달아야 알 수 있고 다른 경계는 없다.
[5] 眞性甚深極微妙(진성심심극미묘)
   참된 본성은 아주 깊고 지극히 미묘하니
[6]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
   나와 남을 분별하는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
[7]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
   하나 가운데 일체, 많음 가운데 하나요,
[8]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
   하나(왕)가 곧 일체(백성)이요, 많음(백성)이 곧 하나(왕)이다.
[9]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십방)
   작은 티끌 하나 가운데 시방세계가 포함되고,
[10]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
   일체의 티끌 가운데서도 또한 그렇다.

백태명 울산 학음모임 고전 성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