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신체를 지닌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며 나날이 살아가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사고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들 사이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저녁을 맞으며 이것이 진정 다행인 줄을 매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응급실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겁이 좀 많은 나는 사실 응급실에 첫 발을 들여 놓기를 무서워한다. 응급실에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고로 피범벅을 한 채로 실려 오기도 하고 도착 후 보면 이미 얼굴빛이 시퍼런 죽음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환자들은 스스로를 제어하질 못하고 언행이 무척 거칠다. 그들을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심각하고 때로 절망적인 얼굴들을 보는 것도 힘들다.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낼 때,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사고의 위험과 경고를 무심결에 놓치고 살아가기 쉽다. 아무 일 없이 그렇게 무사하게 보낼 수 있는 일상이 우리 인생의 평상시 모습일 듯하나 사실은 인생은 무섭도록 순간순간 위험의 경고를 꾸준하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인생의 어떤 경고를 무시하고 미루어 두었는지 매일 점검을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토록 불안하지 않으면서 그저 평온한 나날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대체로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리하게 자신 위주로 시간을 끌고 가지 않으며 언행이 거칠지 않으며 매사에 천천히 신중하게 임하는 사람일수록 오랜 세월 무난하게 큰 사고 없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위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괜찮다며 매일 술을 마시는 손님은 자신의 내일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녹내장과 백내장으로 안과에서 치료를 받는 손님이 간 기능은 끄떡없다며 날마다 술을 마시는 경우는 인생에 대해 겁이 없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도 겁도 없이 자신만만한 인생인 것일까?


대홍수와 태풍, 가뭄 등 인생은 연일 사고의 연속인 것을 오늘 이 하루의 자신의 시간만 고요하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예전에는 왜 시련이 오는 것인가라며 묻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정해진 답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다가오는 것인 것이다. 남은 것은 그 매듭을 어떻게 풀어서 이 미궁을 벗어날 것인가라는 것이다.


약물의 부작용을 보다가 인생에도 부작용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인생에도 부작용 설명서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느닷없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다 있다. 요즘 들리는 ‘안아키’라는 용어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약을 안 쓰고 우리 아이 키우기라는 뜻을 가진단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이해가 되지만 왠지 극단적인 종교 같은 느낌이 든다.


새삼 약물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원점에서 생각을 하게하고 약물이든 인생이든 양 극단에 치우치는 선택은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오래 전 읽다가 손에서 놓은 <중론(中論)>을 다시 읽으며 심란한 마음을 정리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