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_사진2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건진 인생 샷. ⓒ책은담 

 

  우리 엄마는 명언 제조기다. 나들이를 마친 뒤, 거실에 들어서며 에어컨 앞에서 항상 하는 말. “밖을 나가는 이유는 집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야.” 박수 짝짝짝.

 

  지난 8일 독서 모임 <책은담> 가족들과 통영으로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선정 도서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였다. 우리는 7시에 출발해 10시에 통영에 도착했다. 보슬비가 내렸다. 평균 기온은 26도였다.

 

통영 충렬사

 

축축한 풀을 밟으며 ‘통영 충렬사’를 거닐었다. 건물들 문이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창문을 가만 살펴보니 침을 발라 구멍을 낸 흔적이 더러 보였다. 이들의 심정을 십시일반 이해하며 문 틈새로 내부를 살펴봤다. 내 담은 창호지를 뚫을 만큼 크지 않다. 웬걸, 충렬사의 서재와 동재 그 외 집무실 등을 살펴봤는데 안에 잡동사니들이 차 있었다. 쓰다 남은 책상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장판들. 아니, 대체 저게 왜 있담.

 

  축축한 바위 위에 앉아 충무공의 심정을 이해하려 했다. 집중이 안 돼서 ‘신에게는 아직 배 12척이 있습니다.’나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구절을 입으로 되뇌어 봤다. 그런데 발 앞에 개미가 초록색 작은 찌꺼기를 머리 위에 이고 다녔다. 나는 개미를 구경했다.  

 

동피랑 벽화마을

 

  개미가 땅을 파고 집으로 들어갈 때쯤, 동피랑 벽화마을로 이동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올해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 1위’로 꼽은 바 있다.

 

  아, 나의 실수. 해당 조사 기간과 응답 연령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들떠있었다. 해당 조사는 선선한 날씨인 4~5월에 시행됐으며 응답 연령대는 젊은 층으로 친구, 연인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우리 <책은담> 가족들은 7월에 갔으며, 연령대는 40~50대다. 20대는 나 혼자다. 여러 벽화를 보며 느낀 점 하나. ‘힛, 선선해지면 남자친구랑 와야지.’ 뒤에 붙는 말. ‘올해 말고 차후에 언젠가.

  

통영 중앙어시장, 회

 

  어느 누가 장마철에 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풍문을 퍼트렸나. 아마, 최초 발언자는 갈빗집 사장님일 테다. 희고 쫄깃한 회를 참기름 범벅된 쌈장 위에 찍는다. 깻잎을 뒷면으로 해서 쌈을 싼다. 어슷썰기로 잘린 오이고추와 마늘을 쌈에 넣는다. 캬.

 

  오전 일정이 빡빡했다면, 오후 일정은 회와 낮술을 기준으로 흐릿해졌다. 혹, 내 기행문을 읽고 통영 문학 기행을 계획한다면 횟집 예약부터 하길. 얼른.

 

  쉽게 말해, 회를 먹지 않았다면 내 입은 댓발 튀어 나왔을 거다. 8일 통영 문학 기행은 회로 시작해 회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중 일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낮술이 덜 깬 상태로 카페에 가서 <난중일기> 토의를 할 때, <책은담> 한 멤버가 한 말이다. 출판사 지식공작소의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이순신의 원균에 대한 분노가 어마어마하다. 

 

  “초여드레(무술) 맑음. …(중략)… 음흉한 원(균)이 편지를 보내어 조상하니 이것은 원수의 명령이었다. 이경신이 한산에서 와서 음흉한 원가의 말을 많이 하였는데, 원가가 데리고 온 서리를 곡식 사라는 구실로 육지로 보내 놓고, 그 처를 사통하려고 하니 그 계집이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악을 쓴 일이 있다고 한다. 원이 온갖 계략으로 나를 모함하려 덤비니 이 역시 운수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 길에 잇닿았으며, 그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심히 나를 헐뜯으니, 그저 때를 못 만난 것만 한탄할 따름이다.(난중일기, 정유년, 1579년 5월 8일)”

 

  원균은 이순신 파직 후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조선 중기 무신이다. 쉽게 말해 <난중일기>에 쓰인 원균의 수식어구는 ‘음흉한’, ‘흉측한’, ‘미친 듯’ 등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가 후대에 읽힐 것을 알고 원균의 욕을 날려 적었을까. 이를 종결짓는 한 멤버의 발언 “그러길래 원균도 일기를 썼어야지.” 맞는 말이다.

 

청마 문학관

 

  그날 달랑달랑하는 쪼리를 신고 갔다. 3년 전 기차여행 때, 쪼리를 신고가 그렇게 발을 고생시켜 놓고는. 정말 학습능력이 제로다. 아침의 김규란을 욕하면서 걷다가 눈에 밟히는 신발이 있었다. 아, <책은담> 멤버 한 명은 나지막한 힐을 신고 왔다. 나는 그나마 다행인가 싶으며, 시 <깃발>로 알려진 청마 유치환 문학관을 거닐었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유치환, 행복)”

 

  8일 문학 기행을 함께한 멤버 성비는 남 1, 여 4였다. 여성 멤버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어머,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게 행복하지, 안 그래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 후, 청일점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답변, “나는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행복하지.” 남녀의 시각 차이인 걸까. 보편적인 연애 지침 구절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야 하고, 여자는 사랑 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가 성립되는 대화였다.

 

문학 기행

 

  오랜만에 쉬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일적 강박관념 없이,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의식의 흐름대로 문학 기행 중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다.

 

  문학 기행이라 해서 <토지>의 박경리나 <꽃>의 김춘수처럼 감성이 충만할 필요는 없다. 나 또한 출발 연유도 지난 20일 독서 모임 <책은담> 멤버의 “규란이 자신에게 주는 휴가.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눈과 몸과 마음이 살찌는 여행 떠나자~”라는 카카오톡이었다.

 

  빙글빙글 돌아 21시에 울산에 도착하니 남자친구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 있었다. “오늘 재미있었어?”라는 말에 나는 “자기야, 내가 굴이 정력에 좋다기에 사오려 했는데, 제철이 아니래.”라며 빙글빙글 웃었다. 이어 “우리도 휴가 때 여행갈까?”라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 “방에서 에어컨 틀고 구글 지도로 세계 여행하자.” 아, 나 얘랑 결혼해야겠다.

김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