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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 삼거리에 있어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음악에 대한 식견도 높아 언제나 음악 감상실처럼 좋은 음악이 흐른다. 눈에 맞는 안경을 만들어 줘서 만족도를 높여 단골 고객을 만드는 김민호 님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는, 가게 앞에 내 놓은 싱그러운 화분들처럼 섬세하고 따스하다. 가게 앞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도 주인의 이웃이다. 

 

1. 안경점에 특이하게 화분들이 아주 많다. 이 화분들 다 직접 관리하는 것인가?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나름 안경점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전략적인 점도 없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식물을 아주 좋아한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하나 둘 늘다 보니 오시는 손님도 좋아하고 이런 식물을 키우는 사람도 관심 있고 특히 주부들 관심이 많더라. 식물 키우는 것을 겁내하는 사람도 조금만 성의를 가지면 금세 좋아하게 된다.


최근에 세어보니 화분이 130개 정도에 식물 종류는 100여종이 되더라. 다육식물도 많다. 뒷간 공간에는 나무에서 받은 씨앗을 심어 직접 발아시켰는데 일반 식물보다는 나무 종자가 시간이 더 걸리더라. 2~3년 동안도 꿈쩍 안 하다가 포기할 만하면 올라오더라. 주목, 소나무, 매실, 앵두, 복숭아, 로즈마리 등등을 번식시켜 봤다.


2. 탐스러운 화분을 바깥에 두면 사람 손 타지 않나?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바깥에 두면 예쁘다고 가지 꺾어 가는 분, 밤에 화분을 통째로 들고 가는 분, 초창기는 많이 가지고 갔지만 지금은 가져가지 않는다.


가슴 아픈 분실 사고는 파란 꽃이 피는 수련이 있었는데 일반 수련하고는 꽃도 많이 다르고 해서 10년을 아끼면서 키웠는데 저녁 시간에 들여다 놓지 않았는데 누가 가지고 갔더라. 속이 많이 상했는데 같은 수련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 수련을 구하지 못했다.


주변에 식물 좋아하는 분이 오면 많이 나눠주는 편이다. 가게에 붙어 지내는 입장에선 식물이 있는 것 하고 없는 것 하고는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달라진다. 퇴근 때는 바깥에 있는 작은 화분은 다 들이고 출근하면 화분부터 햇빛 받으라고 내놓는다.


3. 음악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음악 편력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음악은 내가 좋아해서 듣는다. 음악을 틀어서 식물도 잘 자라는지는 모르겠다.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부터다. 뒷집에 친한 친구가 살았는데 형이 별표 전축을 가지고 있었는데 카렌 카펜더 목소리에 홀딱 반해 팝송을 듣기 시작했다. 


그룹 카펜터즈의 리더인 카렌 카펜더 음반을 갖고 싶다 욕심이 들었는데 전축은 무리이고 언젠가 오디오는 장만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백판(복사판)을 사서 모았다.


용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 오가는 차비를 아껴 걸어 다니며 사 모았는데 한 달에 한두 장 사 모은 것이 100장이 넘게 모으는 걸 지켜본 형님이 전축을 사주었다. 그 때 나이가 열대여섯 살이다. 그 당시 오디오는 조립이었는데 리시버 형태의 전축을 가진 것이다. 스피커는 고물상에서 싸게 거저 주워온 것을 조합해서 처음 그 백판으로 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등이었다. 특별히 어느 음악에 취향이 있다는 정도는 아니고 그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흐름에 동승해서 들은 것이었다. 차츰 나이가 들어 귀가 트이면서 음악을 선별해서 듣는 것이 서서히 만들어졌다.


음반을 3500장에서 4000장까지 모았었는데, 울산 와서 생활하면서 LP판 관리가 안 되었다. 삼촌, 이모들이 들락거리면서 판들이 분실됐다. 부산에 내가 없는 틈에 판이 푹푹 줄어드는 것을 보며 포터를 가진 친구에게 부탁해 그 무거운 판들을 울산으로 끌고 오면서 오디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라디오와 음반을 가지고 오면서 오디오, 진공관을 알게 되었고 진공관 매력에 빠졌다. 트랜지스터, 오디오 진공관에 대한 향취를 잃지 않고 있다.


사실 음악을 듣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여긴다. 돈 많은 부르주아 음악 애호가거나 가난한 음악 애호가다. 난 경제적 상황에 맞춰 가성비 따져서 조금조금 오디오 쇼핑을 하는 부류다. 만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기를 바꾸는 매니아를 보면서 불공평하다기보다 참 배불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좋은 소리를 찾는 욕구는 있지만 참 안타까웠다.
지금 가지고 있는 오디오는 20년 된 조립한 진공관이고 스피커는 그 당시 조립형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자작 스피커다. 울산에 의외로 숨어 있는 고수들이 많다. 스피커, 오디오 자작하는 분들이 꽤 있다. 내가 찾아본 분 만해도 여러 분이다. 우연히 그런 사람을 알게 돼서 낮은 가격에 좋은 앰프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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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앰프가 ‘6L6오디오 싱글 앰프’라고 하는데 진공관 종류에 따라 앰프 이름이 특징지어 진다. 가게에 이 앰프로 음악을 자주 듣는데 바깥에서 지나는 손님이 소리 좋다고 들어와서 고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철에 가게를 열어놓고 퇴근 시간 전에 11시 방향까지 볼륨을 높여 놓고 음악을 틀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길거리를 지나가다 브라이언 아담스와 파코 데 루치아가 연주하는 기타 곡을 듣고 가게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 때 20여분 음악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참 뒤에 안경 맞추러 왔더라. 길 건너 아파트 친구 안경 맞추러 가는데 같이 따라 와서 가게 오디오 CD를 보더니 틀어 달라고 해서 틀어줬는데 음악 때문에 단골이 된 분도 있다.


4. 그동안 안경점을 해오면서 안경의 역사 트렌드(경향)는 어떤 변화를 겪었나? 


안경을 시작한지는 36년 되었다. 안경에 입문하게 된 것은 사촌형님 영향이다. 제대하고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비를 마련해 복학하려 했는데 사촌형님이 하던 가게에 발을 처음 내디뎠다. 그 당시에는 디자인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아 안경테 모델이 다양하지 않았고 조악한 편이었다. 모델이 몇 가지로 정해져 있었고 열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는 소비자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안경뿐만 아니라 모든 공산품이 소비자 원가 등 내막을 잘 모르니까 지금보다 많은 폭리를 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기 칠 정도는 아니었다. 집집마다 경영하는 사장 마인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르다 나쁘다 이야기 못 한다. 안경이 제품의 다양성을 확보한 것은 90년대 중반 들어서다. 김영삼 정권이세계화, 세계화하면서 우리 안경 시장이 외국에 열리면서 질 높은 제품이 다양하게 나왔다. 렌즈 종류도 다양화되었다. 본격적으로 디자인 소비자 만족이 충족된 것은 1990년대 말에 가능해졌다. 안경의 유행이라는 것이 10년 주기로 오는 것 같은데 안경도 알이 작은 것이 유행이다가 점점 커지다가 다시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소재나 디자인도 그렇고 그런 추세다.


상품들이 워낙 좋으니까 2~3년씩 부러뜨리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으면 아주 오랫동안 썼다.
학생, 젊은이들은 1년에 한두 개 예사지만, 어른들이 오래 쓴 구 모델, 서랍 속 제품들이 다시 유행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제품들이 너무 싸지면서 많이 나오는 방식보다는 탄탄하고 내구성 제품이 나오니 나중에 되돌려서 쓰는 시장이 형성되면 좋겠다.


5. 안경을 여러 개 두고서 바꿔 쓰는 것이 눈 건강에는 어떤가?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새 안경을 맞출 때 기존 안경은 스페어로 하나 두고 쓰는 게 적당한 것 같다. 여러 가지 안경을 맞추고 돌아가면서 몇 번을 쓰겠나. 새로 맞춘 안경이 익숙해지면 익숙하고 편한 것으로 가지, 안경 여러 개 그런 여유가 있다면 좋겠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성인은 보통 2~3년 정도 그 전에 쓰던 안경은 여분으로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6. 안경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은 어떤 것까지 나와 있나?


원거리로 근거리도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원근거리 다 잘 보이는 그런 렌즈는 나와 있다. 누진렌즈 같은 경우에는 가격적인 면, 스펙이 넓다. 누진 특성이 렌즈 하나에 원거리 근거리 다 볼 수 있게끔 설계되면서 퓨리즘 왜곡현상이 큰 불편을 초래해서 가격대에서 얼마나 추스르느냐, 가까이 보는 모바일이나 신문, 중노년층이 근거리 작업을 얼마나 편리하게 할 수 있느냐. 야외활동이 많아지다 보니까 눈부심, 선그라스 기능 등 소비자 중첩 요구를 충족시키면 가격대가 확 올라간다. 


실내에서는 투명렌즈인데 바깥에 나가면 선그라스처럼 색이 변하는 감광렌즈도 있다. 레포츠 부문 특히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들 고글안경의 수요가 높은데, 시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수용 형태로 클립을 끼우는 형태도 있고 렌즈를 그대로 깎아 만들어 쓰는 방식도 있다. 문제는 렌즈 모양대로 깎아서 만든 고글안경은 가격이 만만치가 않고, 클립 형태를 선택하면 어지럽다는 자각증세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써 온 사람은 문제가 없는데 안경 교환 시 민감한 사람은 안경사 조언을 듣고 선택해야 하는 안경이다.


7. 라섹 등 시력 교정수술이 끼친 영향이 클 것 같은데 ?


라섹 수술 붐 이후 손님들 많이 빼앗겼다. 그런 수술이 보편화될수록 안경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 병원에서 고객들이 과하게 권유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시력에 크게 지장 받지 않는 사람, 수술을 안 해도 되는 사람까지도 수술 권유를 받아 수술 후 비용대비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 각막 수술 후 겪는 불편까지 감안해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 소비자, 의사에게 충분히 설명을 듣고 합리적으로 되는 것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겉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지 그런 불만 있는 분은 간간히 있다.


안경도 패션 쪽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합리적인 소비 형태로 가는 것 같다. 유행적인 측면을 좇다보면 과소비, 그 과소비가 자원 낭비 쓰레기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생각도 변해지더라. 테를 인터넷이나 거리에서 모양이 마음에 든다고 싸다고 사오는데 다 그렇지는 않지만 10에 7~8은 물건이 조악하다. 싼 것 같지만 물건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하고 곧 버리고 다른 것을 구입해야 하는 것을 반복한다. 안경테로서 기능이 좀 충실해야 하는데 길거리 패션을 강조한 것은 그런 경향이 있다. 싼 것 같아도 싼 것이 아니다.
안경과 렌즈를 따로 구입하면 D/C 없이 지급하니까 손님 득이 되는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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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아오면서 인생의 가장 험난한 시기라고 보는 때는?


1995년 IMF 때 백화점 상가 얻어 들어가려고 했을 때 고의 부도로 인해 건물주가 잠적하는 바람에 내 재산의 70%가 날아갔다.


그 후 시내 쪽에 17년을 근무하던 안경원을 인수받았는데 권리금을 꽤 많이 주고 얻었는데 건물주가 3년 계약이 끝나자 재계약 없이 나가달라고 해서 권리금을 날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아파트 집주인도 부도내는 바람에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는데 보증금의 1/10정도 밖에 받지 못할 상황이 터진 것이다. 그 당시 울산시가 광역시로 되면서 보증금 우선 보호금액 한계가 3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이하로 되어서 우리는 보호대상에 빠져 있었다.


주택은행이 1순위를 담보로 가져가서 남는 것이 없더라. 다행히 농협 대부계 친구가 경매를 우선순위로 받아라, 내가 대출해주겠다 해서 선금내고 대출 받아서 아파트를 떠 앉게 되었다. 7000만 원 아파트를 4500만 원에 받았다. 
그런 일을 겪은 후로는 돈이 아닌 내 가족 내 주변 어려운 사람에게 더 시선이 가더라. 나 같은 힘없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사회에 더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당도 가입하고 시민단체 활동도 하게 되었다.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연한 기회에 <녹색평론> 선집 1권을 보게 되면서 근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녹색평론>을 5년 정기구독하고 있다. 세상 일이 한 단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연결되어 흘러간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대되었다.
안경점을 하면서 오가는 사람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면서 살아가는 즐거움도 있다. 


인터뷰어 이동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