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곧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 긴 머리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풋풋한 새내기가 됐고, 눈 깜짝할 새 20대 중반에 접어들며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했던 얘기가 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잌이야. 누가 크리스마스 케잌을 26일 27일에 사 가겠니? 여자 나이는 25살로 끝이야.” 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크리스마스에도 현 남자친구가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사 갔지만. 20대 후반에게 머리끄덩이 잡혀 끌려가는 지금 케잌이 팔린다는 건 결혼을 뜻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아무도 사가지 않은 크리스마스 케잌이 됐다.


확실히 25살을 넘어서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야한 농담에 까르륵 웃어대던 철부지들은 어디로 간 건지 입만 열면 “남자친구랑 결혼할 거야?” “이 남자는 결혼상대로 좋은 것 같아.”라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킨다. 심지어 평생 남자에 관심도 없던 친구가 앞으로 남자를 만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유인즉 직장 동료가 결혼 날짜를 잡아 오자 문득 “내 나이가 몇인데 지금이라도 남자를 안 만나면 결혼도 못 하고 죽을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요새는 직장에서도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물음을 종종 듣고 있다. 어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티브이에서 본 ‘명절에 듣기 싫은 말 순위’에 항상 있던 “결혼은 언제 하냐?”를 내가 벌써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물음을 들을 때마다 “저는 결혼 안 할 거예요. 비혼주의자예요.”라고 말한다. 사실 난 완전 결혼찬양주의자지만.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결혼이 늦어져서 노처녀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었을 때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며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당당하게 다니겠다는 큰 그림의 일부다.


결혼에 대한 질문도 생각도 많아지면서 남자친구에게 하루에 한 번은 돌려서라도 나랑 살래, 말래를 물어보고 있다. 남자친구는 몇 년째 같은 질문에도 성실히 “결혼은 너랑!”이라고 대답해 주지만 정작 물어보는 난 결혼이 뭔지 몰랐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사람을 못 만나면 어떡하지? 늙어서도 내 짝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으로 막연하게 결혼을 하고 싶기도 했고, 같은 집에서 눈을 뜨고 같은 집으로 퇴근하고 데이트 후에도 각자 집이 아닌 우리집에 가는 방법은 결혼이니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 시절 결혼적령기라는 나이에 결혼한 엄마에게 결혼이 무언지에 대해 물었다. 엄마 왈 “힘든 거.” “그럼 결혼을 왜 했어?” “남들 다 하니깐.” “그럼 하나도 안 행복했어?” “좋았던 날도 있었지. 근데 기억 안 나. 너네 때문에 산거지.” “음... 그럼 나 결혼하지 말까?” “남자친구가 하자고 하면 해.” “힘들다며?” “니 남자친구가 듬직하잖아. 넌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 거 같아 해.” 엄마도 결혼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가끔은 좋기도, 가끔은 싫기도, 불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좋아하면 하라고, 좋을 때 하면 행복할 거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해주니 남자친구는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기본이 서야 재미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에게 난 팔리지 않은 크리스마스 케잌이라 불릴 수도 있지만 완벽하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내가 됐을 때 스스로 웨딩 케잌이라고 불리며 결혼하고 싶다.


유다영 연애 기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