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미 라캉(Chim Lhakahavng 미친 성자의 사원)을 찾아가는 길은 차에서 내려 천천히 30여분 마을을 가로질러 걸어야 한다. 훌륭한 건물이 모두가 유명해지거나 사랑받는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건물을 구성하는 이야기가 존재할 때 건물은 비로소 생명을 얻고 사람들의 사랑을 얻는다. 지금껏 우리가 부탄에서 지나온 모든 건물들 또한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민들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치미 라캉 또한 부탄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명인 두룩파 쿤리 스님의 이야기가 있다. 티벳에서 탄트라 불교를 익힌 쿤리 스님이 도출라에서 악마가 나타나자 금강저(마하 링검: 남자의 성기)로 천둥번개를 내려서 물리쳤다고 한다. 이후 이 금강저를 보관하기 위해서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사원 안에는 악마들이 나오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스님의 금강저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 있다. 성기를 드러내고 다닌 탓에 미친 성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런 전설 탓인지 치미 라캉으로 가는 마을은 나무로 만든 금강저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그 가게들 외벽에는 음란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 옆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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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라캉 가는 길>


부탄에서는 외국인은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 탓인지 먼저 와 있던 관광객들은 사원 마당에서 법당 안의 모습을 구경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어느 사찰에서 온 순례객인 듯 가이드의 안내로 법당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스님의 세례를 받고 법당 한쪽에 앉아 명상을 했다. 법당 안에서는 어린 동자승들이 법문을 외우고 있었다. 모두가 법문 외우기에 열중하는 동안 고개를 숙이며 졸다가, 이국인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졸다가 하는 동자승도 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이 정겨움이 묻어난다.


사원 양쪽에는 아주 큰 마니차가 놓여있다. 우리와 함께 힘겹게 올라오던 할머니는 어느새 그곳에 자리를 잡고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린다. 반대편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이미 자리를 잡으셨다. 어이없게도 부탄에 와서 첫 깨달음은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도 사람은 늙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에서나 사람은 늙고, 그래서 노인도 있다. 다만 성자가 되지 못한 그들은 그저 그렇게 염주를 들고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리며 간절함을 신에게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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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차 돌리는 할머니>
 
이제 우리의 여행도 마지막을 향한다. 파로로 돌아가야 한다. 어제 구경했던 도출라 108개의 스투파 위쪽으로 올라가니 우람한 숲 속에 한 명씩 명상을 할 수 있는 토굴이 있다. 뒷면에 부처의 상이 조각되어 있고 한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멀리 히말라야산맥을 바라보며 명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저곳이라면 왠지 깨달음이 올 것 같은. 명상을 원하지 않던 사람들도 각자 하나씩 토굴을 잡고 명상 자세를 잡아본다. 이 시간을 위해서 우리가 그동안 부탄 이곳저곳을 다녔구나 생각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의 시간. 특별히 명상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험. 특별한 곳에서는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누군가는 한 시간의 명상을 끝내고 내려오면서 ‘100년 전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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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시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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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에서의 명상>
 
드디어 탁상 곰파(호랑이 둥지)로 가는 날. 부탄 관광지를 방문할 때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인물 셋, 부탄에 처음 불교를 전한 파드마 삼바바, 부탄을 통일한 나왕 남걀, 그리고 미친 성자 드룩파 쿤리. 물론 현대인으로는 왕족인 로dif 패밀리가 빠지지 않는다.


이곳 ‘호랑이의 둥지’는 8세기 파드마 삼바바가 티베트에서 호랑이를 타고 이곳에 와서 3년 3개월 3일 3시간 명상을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사원은 파드마 삼바바 대선사를 기리기 위해 1692년에 건립되었다. 해발 3120미터의 곳에 900미터에 이르는 암벽 위에 세워진 부탄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그 특별한 위치와 암벽의 일부 같은 특별한 건축 양식, 독특한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탁상 사원 위쪽으로도 까마득하게 사원들이 있다. 농담으로 저기까지 가보자 하면 가이드는 안 돼, 안 돼, 2박3일을 가야 해라고 했다. 저 까마득한 곳에 있는 사원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신을 향한 사랑, 신과 조금 더 가까워져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는 간절함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고, 머물 수 없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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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사원 가는 길>
 
탁상 사원까지는 왕복 6시간이다. 오르기가 힘든 사람들은 20달러를 지불하고 말을 타고 오르면 된다. “우리에게는 외화를 가져오는 등산객보다는 밭에서 일하는 농부가 더 소중하다”는 정책에 따라 부탄에서는 사람을 포터로 고용할 수 없다. 모든 짐들은 말들이 지게 한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가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길은 많이 미끄러웠고, 사람을 태운 말들은 여러 번 삐걱거렸다.


친절한 가이드는 천천히 오를 것이라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일행 모두가 무사히 다녀오는 것이 오늘의 유일한 목표라고 반복해 일행을 안심시켰다. 오르내리는 도중 중간에 말과 교차할 때는 안전을 위해서 사람은 안쪽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말이 미끄러지거나 놀라면 위험해진다. 출발한 지 30분 남짓 지나자 “매일이 환경의 날, Everyday is the Environment day”라는 문구가 나무에 걸려 있다. 그 문구에 눈을 맞추고 멈춰서면 저 멀리 푸른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 조금씩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물을 조금씩 마시면서, 조금 더 천천히.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까 멀리 탁상 곰파의 우아한 자태가 드러난다. 와아... 외마디 탄성. 그렇게 네 시간 걸려 도착한 호랑이 둥지.


 비옷을 벗고, 가방도 벗고, 긴 옷을 걸치고, 그 과정에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절벽의 바위가 내준 자리만큼만 법당이 들어섰다. 그래서 좁다. 좁은 법당 하나를 지나면 한 칸을 더 위로 올라가 신이 허락했을 법한 만큼의 공간에 법당이 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작어지고 좁아지는 법당들. 그런 만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간은 배치되어 있다. 신에게 더 가까이, 더 간절하게. 이방인에게도 그 정성과 사랑이 전달될 정도로 빈틈없는 공간 배치. 신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 그렇게 몇 개의 법당을 지났을까. 가이드는 어느 가장 위쪽 한곳을 가리키며 이곳이 ‘호랑이 둥지’라고 했다. 그곳에서 절을 한 후 자리를 잡고 10분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절을 할 때, 비좁게 앉아 하는 짧은 명상, 그렇게도 안 되던 겸허함과 간절함이 저 아래쪽에서 올라옴을 느낀다. 그곳에서의 명상과 참배의 감동을 불교에 막 입문한 누군가는 ‘부처님 품 안에 폭 안기는 경험’이라고 감동의 순간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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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탁상 사원>
 
마치 치마 같은 부탄 남자들의 전통 의상인 ‘고’는 상황에 따라서 윗도리를 벗어 허리에 걸 칠 수도 있고, 앞 쪽은 필요하면 커다란 배낭 구실도 한다. 또한 평소에는 고 속에 술을 청할 수 있는 잔 하나와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칼 하나가 들어 있다고 한다.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전통적으로 부탄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식. 어쩌면 현재의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의 부탄 마을들, 사람들의 미소는 자연과 외부자들로부터 만들고 지켜온 것들인 지도 모른다. 그 고 속에 우리의 친절한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고객을 위해 생수와 과자 등 간식을 넣어 왔다. 휴게소에서 사원을 올려다보며 차와 점심 식사를 한다. 비할 데 없는 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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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사원을 바라보며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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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전통의상 ‘고’ 입은 남자>
 
하산 길 주차장 입구에서 현지인 가족을 만났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건넨다. 여전히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다. “부탄 아름답다”고 하자 “부탄은 아름답지 않다. 한국이 아름답다”며 한국 가수를 좋아하는 중학생 아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은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반복했다. 언제나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는 다르다. 문제는 그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이다. 우리는 숙소 옆 민가에서 온돌 목욕과 식사로 현지 가정 체험을 대신한다. 전통 온돌 목욕은 돌을 불에 데워 물을 데우는 방식이다. 나무로 된 욕조에 반신욕이 가능할 정도의 물을 붓고 부탄 쑥 잎을 따서 욕조에 띄워둔다.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건강 목욕법이다. 시간이 지나면 맞은편에서 돌을 하나 더 넣을 것인가, 물을 더 부울까 묻는다. 취향에 따라 온돌을 몇 개 넣어서 물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욕조에 앉아 있으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손님이 오면 환영의 뜻으로 온돌 목욕을 선물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25달러씩을 지불하고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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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데우는 장면>
 
우리가 방문한 집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부탄은 대체로 3, 4대가 함께 산다. 부탄의 가정에는 대체로 불단이 모셔져 있고, 스님이 찾아와 법문을 한다. 우리가 방문한 집은 조부모와 부부, 그리고 아이가 네 명이었다. 부탄은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니 시골이어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없다. 의료도 무료다. 소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자식 교육과 의료비 걱정이 없으니 저축을 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며 생활할 수 있다.


일행의 목욕 체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깜짝 공연을 했다. 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와서 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3인조 자매 그룹이 탄생했다. 아이들 공연이 이어질 동안 가정식 소주 ‘아라’가 제공되었다. 맛있다고 기념으로 사길 원했지만, 내일 방문할 손님을 대접할 양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의 상상에서는 언제나 넘치는 물자가 현실에서는 늘 딱 필요한 만큼만 준비되어 있다. 파로의 기념품점에서도, 술 도매점에서도 반복되는 풍경이다.


칠리와 닭고기, 감자, 양배추 등은 부탄의 주요 식재료다. 모든 레스토랑에서, 호텔에서 저 재료들이 사용된 변형된 반찬들이 제공된다. 가정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디.어. 몇 가지의 반찬을 이용하여 손으로 먹는 법을 배웠다. 손으로 밥을 꼭꼭 다져서 반찬 하나를 집어서 먹으면 된다. 안남미로 지은 밥은 찰기가 없어 손에 묻지 않는다.


짧은 여행의 끝이다. 일행들은 이유 없이 웃음이 많아졌다. 삐죽 삐져나오던 자기 안의 뾰족함들도 스스로 무디게 만들어 간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부탄의 풍경이, 사람들이 우리 안의 뽀족함을 무디게 만들었나 보다. 제법 세게 비가 내리는 중에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파로공항의 사진을 찍는다. 국제공항인데 사진 촬영 금지 따위 없다. 강대국들과의 경쟁에 휘말리지 않는 길을 선택해온 부탄의 힘일 것이다. 공항 저 너머로 파로종이 보인다. 파로종에는 공부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에는 싯다르타 왕자의 상이 모셔져 있다. 그렇다. 파로종은 신에게 가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긴 여행도 끝이다.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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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파로공항>


그리고 도착한 부산 공항 식당 누군가 말했다. “아, 한국의 맛, MSG의 맛.”
다시 인공의 세계로 왔다.


김연숙 울산미래공생연구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