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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씨 심을 자리 만들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채소 섭취량이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쌀이 주식이고, 이파리 채소들을 활용하는 쌈 식습관, 다양한 나물과 장아찌를 즐기는 식습관에 비추어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주목받는 채식주의에 대해 일반인들이 보이는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에는 우리 음식문화가 이미 상당한 채식주의의 경향을 띄고 있다는 상식이 깔려 있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더 많은 채식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을 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입니다.


최근 개봉하였던 영화, <옥자>는 육식문화가 윤리적 문제를 넘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자체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육식이 조장되고, 강화되는 것이 자본의 이익을 높이는 반면, 동물의 탄생과 사육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간성이 훼손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영화에서 직접 촉구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건강이 아니라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고 이를 주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인 운동입니다.


채식주의는 과연 인간의 윤리적 식생활을 보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최선의 길일까요? 이 질문은 채식주의 찬반논쟁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채식주의는 육식문화가 전제 되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육식을 즐겨왔다는 사실이 육식문화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육식이 환경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농업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20~30%에 이르고, 이 중 80% 정도가 축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인류가 모두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단기간에 온실가스가 70% 감축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채식주의의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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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채소밭 일구기>


그리고 곡물 생산량의 많은 부분이 가축사료로 쓰이고 있는 점도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제가 조금 엉뚱한 통계로 이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대이고 쌀을 제외하면, 3.7%에 불과합니다. 옥수수, 콩, 밀 등 대부분의 곡물은 97%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낮은 것은 수입곡물의 60%를 가축사료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료용 콩과 옥수수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통계로 우리는 채식주의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동시에 가축사육으로 인한 이중의 왜곡된 곡물소비구조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채식주의의 윤리적 주장을 회피하면서 환경운동의 면모를 먼저 말해보았습니다. 육식을 즐기는 이들이 마치 흡연자들의 자발적인 건강해침의 경우처럼 환경파괴가 빤히 보이는데도 육식을 더 하겠느냐는 힐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육식은 인류의 오래된 음식문화일 뿐 아니라 생존과 건강의 최적화된 조건으로 체화해왔습니다. 더구나 흡연과는 달리 완전한 육식주의가 아니라면, 우리 몸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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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절정, 나리꽃>


그럼에도 제가 채식주의에 주목하고, 시사 받을 점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농업과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채식주의보다는 채식 그 자체의 위기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느냐 마느냐 같은 망상에 불과한 윤리적 관점보다는 인간의 건강한 생존을 담보하는 농작물과 그것을 먹는 채식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든 아니든 채식은 우리 식생활의 근간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의 농작물 생산은 그 형태에서 공장식 축산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연중 가동되는 비닐하우스에 농작물을 촘촘히 심어 물과 비료를 주어 기릅니다. 농약은 물론 필요하면 호르몬제를 사용하여 꽃가루 수정도 대신합니다. 강제로 씨를 없애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작물의 크기마저 표준화합니다. 더구나 육종과정에서 강제로 주입된 속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농작물은 주체할 수 없도록 크고, 많은 열매를 달기 때문에 지지대로 받쳐주고, 또 줄에 매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길러지는 농작물들은 애초에 가져할 본성이 무뎌져 기대하는 특성도 양분도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 생산 역시 공장식 축산과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체제의 소비 패턴에 의해 강제되는 측면이 큽니다. 일종의 불량 농산물과 축산물이 몇몇 기능성으로 포장된 채 시장에 진열되고 대량 소비되는 식재료들의 진실한 품질에 대해 우리는 따져보아야 합니다. 만일 제가 채식주의자라면, 제가 기른 것만 먹을 것입니다. 더 깨끗하고 안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영양소를 그나마 갖추고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물며 채식주의자들이라면, 도대체 안심하고 먹을 채소들이 있기나 할까라는 과장된 의문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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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가 익어갑니다>


저는 채식과 채식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자면, 선결과제가 소비자운동이라고 믿습니다. 소비자단체나 생협에 의탁하는 형태가 아닌 개인들의 결단을 바탕으로 하는 로컬 푸드 운동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로컬 푸드는 지역과 전국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든 하루면 배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사회만을 굳이 로컬이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의 농협 마트에 가서 농산물을 둘러보며 가끔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무나 시금치, 기타 작물들의 원산지가 다른 고장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필수 채소의 경우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생산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직원에게 물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말해준 것은 막연하게나마 편의성이었습니다. 어떤 편의성일까요? 아마도 유통의 편의성이겠습니다. 이는 해당 지역 농산물을 확보하는 데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피하자는 의도가 내재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농산물 유통이 이런 식입니다. 타 지역 농산물 반입이 모순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는 전국이 일일유통권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유통되어야 합니다. 다만, 지역 내 농산물의 우선적 수집과 유통이 주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선 신선함이 보장되고, 품질 면에서 소비자의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가능합니다. 가격 또한 적정성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만족도의 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특산물의 지위를 얻는 품목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단체든 이런 일을 해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농민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낍니다. 소비자 역시 답답합니다. 당장에는 소비자와 생산자 스스로 이를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SNS 등을 통해 직거래의 형태로 로컬 푸드 운동의 실질적 면모가 발휘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농민들이 이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생산방식에서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고, 마케팅에서도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농산물의 사실상 수익자인 소비자들의 더 큰 관심이 요청되는 부분입니다.   

   
이근우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