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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저지 투쟁 현수막 뒤로 뼈대만 드러낸 타이베이 돔구장. ⓒ이채훈 기자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서 대만은 고민 중


이 글은 대만을 처음 가본 사람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쓴 아주 빈약한 글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세상에 내보이는 뜻은 필자가 대만에서 본 수박이 한국수박과 너무나도 비슷해서다. 사실 입추만 돼도 육군 장병은 앞으로 숱하게 떨어질 낙엽을 미리 걱정한다. 화무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노파심에서 이 옹졸한 글을 내놓는다. <기자 주>


“이야... 뭐 타이베이는 무슨 도시 전체가 베벌리힐스니? 집이 뭐 이렇게 듬성듬성해.”


해 뜨고 보니 매우 짧은 생각이었다. 야경만 보고 내뱉은. 알고 보니 대만의 국제공항은 타이베이에 있지 않았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백리(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우리의 목적지 중화민국 수도 타이베이가 있었다. 이처럼 우리 일행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취득하지 않은 채 그저 상용한자를 더듬더듬 읽으며 우리는 그렇게 타이베이로 내던져졌다.


낯선 기후, 입에 안 맞는 음식, 말글이 모두 안 통하는 상황. 연중 여덟 달이 여름이라는 고양이도 지치게 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여행의 후반부는 각자 가고 싶은 곳을 가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일행이 대만에 도착한 날짜가 대만에서 반백년 만에 처음으로 쌍 태풍이 상륙한 바로 그날이었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강했다. 무모하게도 나는 여행지 밖으로 나가 진짜 대만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다. 그 또한 중국어를 할 줄 모르니 큰 한계가 있었지만 중정기념관을 벗어나자마자 주민들이 사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대만 판 ‘삶의 현장’을 찾아서


뜻밖에도 대만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은 첫 번째 공간은 대만 정부 부처 건물이 밀집한 곳에서였다. 중정기념관과 같이 ‘자유광장’에 조성된 대만의 국립극장을 벗어나 연못과 정자가 있는 공원 맞은편에 한국으로 치면 국방홍보원이라 할 수 있는 곳 청사를 지나니 도심지인데도 잡풀 무성한 블록이 많았다. 알고 보니 이곳도 원래는 민가(주로 판잣집)였는데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공원으로 조성했다는 팻말이 드문드문 보였다.


꽤 오래전에 이 사업을 하다가 만 것 같다는 인상이 든 이유는 일단 팻말 자체가 1990년대 후반 느낌을 물씬 풍겼고 빛은 바랬으며 공원으로 재조성한 곳은 극소수였고 방치된 폐가나 주민들이 텃밭으로 가꾼 곳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도심지와 텃밭,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지만 타이베이 시정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일 수도 있다. 정부청사 옆 폐가를 목격하면서 대만 역시 마찬가지로 도시 슬럼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만에도 용산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대만의 외교통상부 건물 근처에 어울리지 않는(?) 판잣집이 예닐곱 채 있다.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잡풀이 무성하다. 옥상과 2층에는 빨간 깃발과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고 마을회관으로 보이는 곳 1층 현관에는 주민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적힌 대자보에 먹 활자가 선명하다. 불과 8년 전 용산4지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참고로 수많은 생명이 화마에 휩쓸려간 서울 용산 그 자리에는 우여곡절 끝에 효성에서 짓는 주상복합이 들어서는데 대만의 용산에는 또 무엇이 들어서려나.


“하아... 이건 또 뭔 말이고?”


내가 중국말을 못하고 읽을 줄 아는 한자가 몇 개 안된다는 걸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한탄했다. 판잣집 사는 꼬마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 그 어머니를 한 번 쳐다보며 무어라 물어보는데 꼬마 어머니도 모르겠다는 듯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한 번 쳐다본다. 내가 부동산 개발업자 아니면 그 용역으로 보였나. 머쓱한 나머지 마을회관 대자보를 종이가 뚫어져라 읽는 척했다. (그때 왜 통역 애플리케이션이라도 써야겠단 생각을 안 했을까.)


언제 또 대만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같은 장소로 왔을 때 이 꼬마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곤 장담할 수 없다. 이 자리에는 무언가 대형 오피스 건물이 새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지금 대만에서 이 같은 대형 개발 사업들이 잠시 멈춤인 이유는 대만 지자체 곳곳마다 대형 개발 사업 실패로 인한 ‘마천루의 저주’로 홍역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광풍이 부메랑으로...한국은?


실제로 타이베이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신이에서는 타이베이 돔구장 공사가 뼈대만 쌓아올린 채로 무기한 멈춰있다. (다녀온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돔 뼈대를 쌓아 올려놓고 보니 국제경기 규격 미달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사업 시행 초기부터 ‘4대강’처럼 갖은 의혹을 받은 듯 오래된 투쟁의 흔적이 공사현장 둘레 곳곳에 남아있다. 사업 초기 주민들이 릴레이로 돔구장 건립 저지투쟁을 한 듯 다양한 인증 사진이 입간판처럼 걸려있고 시공 중에도 야당과 시민사회가 시정부에 돔구장 관련 일곱 가지 의혹에 대해 공개적으로 물음을 던졌는지 검은 천으로 된 대형 현수막이 이곳이 돔구장 부지임을 알리는 간판과 나란히 걸려있다.


비록 이번에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에서는 마천루를 지어놓고도 분양이 안 돼 시행업체는 물론이요 시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큰 몸살을 겪었다고 한다. 글쎄, 결국 규모 차이지 우리라고 다를 바 있나 싶은 생각이다.
그나마 대만이 이 정도에서 끈질기게 버티는 이유는 민영화 바람이 더디게 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타이베이에서는 철도역도 전철도 통신도 아직 공사 체제다. 통신공사의 지사 격 되는 사옥 전면에 걸린 삼성 갤럭시 광고는 약간의 어색함을 자아내지만 그래도 여기는 아직까지 통신을 공기업이 책임지고 있구나 생각하니 단통법이니 기본료니 하는 것들로 부담을 안고 있는 한국보단 낫겠다 싶다. 이것도 어쩌면 단견일지 모르겠지만.


목격한 바로는 대만은 현재 일부 사회기반시설 공사도 건설 공기업이 직접 진행하고 있다. 토건공화국인 한국에서 온 사람이 보기에 대만에 건설 공기업이 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대만의 이런 모습은 40년 독재의 흔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대외적인 어려움에도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중화민국은 외환위기 극복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크게 기여를 한 곳이기도 하다. 하긴 프랑스에서는 은행도 국유화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상반기에 은행이 낸 수익이 6조 원에 달하는 한국에서 무어라 할 말이 있겠는가.


이렇게 타이베이의 용산을 뒤로한 채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는데 빨간 깃발 아래서 만난 꼬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연거푸 귓전을 때리는데 그 꼬마아이가 슬슬 일 채비에 나서는 이웃집 택시 운전사를 부르는 건지 아니면 이방인인 나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놀이 감을 가지고 장난을 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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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소재 '파이브뮤직' 매장 전경. ⓒ이채훈 기자


서점과 레코드 가게, 공공의 영역


타이베이에는 유통 채널이 주로 백화점과 시장으로 나뉘는 듯했다. 대형 마트에는 까르푸가 있고 교외에서 코스트코를 목격할 수는 있었으나 그 수가 많지는 않은 듯했고 동네마다 있는 슈퍼마켓이 그 비중을 대신하는 듯했다. 동네 시장과 고급 백화점으로 나눠지는 소비 패턴 역시 극단적인 양극화를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까 의심한다. 동네 마트를 가보면 아시겠지만 한국 마트의 물가는 결코 싸지 않다. 한때 정점을 찍고 지금은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대형 마트의 몸집은 그만큼 한국의 중산층까지는 아니더라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서민층의 규모를 나타낸다고 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타이베이에는 지금 그 허리가 없다. 이 이야기는 일단 다음으로 미루겠다.


해질 무렵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시내 어귀 파이브뮤직이라는 곳에서 대만의 문화 열을 느껴본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대형 레코드 가게였다. 광화문 교보 아니면 서면 신나라 정도 가야 볼 수 있는 그 음반점. 분점이지만 규모도 작지 않은 편이다. 이곳에 케이팝 코너가 따로 있다. 아시아 제일이라는 대만 성품서점 음반 코너에서도 고소득층이 몰리는 곳에는 케이팝 코너가 아예 없거나 측면에 자그맣게 만든 것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고 백화점도 많으며 시내와도 인접한 이곳 부도심에서는 케이팝 코너가 전면을 차지한 것을 보니 케이팝의 타깃이 정확하게 대만의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여튼 한국 관광객 입장에서는 레코드 가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인데 그 가운데를 케이팝이 채우고 있으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요새는 트와이스가 제일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대만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성품서점이라는 문화공간의 존재였다. 본점은 방문하지 못 했지만 그곳 서점은 24시간 문을 열고 새벽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독서열이 대만을 지탱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럼에도 여전히 녹록치 않은 대만의 상황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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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만나는 한국 음반 발매 포스터.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