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문수사아미타

<문수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문화재청>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문수산은 영축산이라 불렸으며, 이 산에 있었던 대표적인 절도 영축사였다. 그후 문수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부터는 문수사가 이 산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현재의 문수사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신라 원성왕 때의 고승 연회국사가 영취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 그 장소를 문수점이라고 한 기록이 있어 8세기 말에는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에 의해 세워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문수사에는 신라 당시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적이나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아 위의 두 가지 주장이 모두 확실치는 않다.


문수사는 오늘날 문수산을 대표하는 절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현재 문수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한 맞배지붕 형식의 극락전으로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다. 극락전 옆에는 조성연대가 명확하지 않은 석탑이 있는데 1층의 몸돌 길이가 2, 3층에 비해 많이 길어 안정감이 부족해 보인다. 지붕돌 모서리 끝에는 풍탁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그마한 탑이다.


미륵전으로 가는 왼쪽 절벽에는 돌부처가 있다. 그러나 훼손이 심해 그 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몸에 비해 귀가 큰 편이고 옷의 주름은 잘 보이는 편이다. 원래 이 불상은 청송사터에 있었던 것이라 한다. 문수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1982년 옛 대웅전 자리에 새로 세워졌다.


이 절에는 네 점의 중요한 문화재가 있었다. 첫 번째 문화재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1787년(정조 11)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의 재료는 ‘경주불석’이라고 알려진 흰색의 석재다. 불상은 높이 28.3㎝, 어깨너비 12.6㎝, 머리높이 10.5㎝, 무릎너비 15.3㎝의 작은 크기로 개금된 상태다.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 가운데 발원문을 통하여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유명한 화사(畵師)였던 지연(指演)스님이 세상을 떠난 부모와 스승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조성하였고, 1847년 송암대원(松巖大圓)과 석암승운(石庵勝云)이 다시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제작 연대가 명확하여, 조선후기 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울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문수사 탱화는 모두 3점으로, 석가모니후불탱, 지장탱, 칠성탱이 있다. 탱화(幀畵)는 사찰의 법당 등에 모셔놓고 예배를 하기 위해 그린 불교 회화의 한 형태이다. 석가모니 후불탱화는 1861년, 지장탱화는 1893년, 칠성탱화는 1855년에 각각 제작되었다. 이들 3점 모두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다.


김문술 전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