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최전선 <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설마 지자체 촬영 로케이션 지원을 콘텐츠산업의 전부로 아는 걸까?’


다음은 어느 지자체의 수장이 향후 ‘콘텐츠산업 전국 지자체 중 3위’를 공언한 탓에 놀란 기자가 주말 간 서울에 직접 올라가 콘텐츠산업의 최전선 세 곳을 다녀와 보고 급하게 쓴 글이다. 필자 소감을 미리 듣자면, 납세자 입장에서 시장이 내뱉은 말이 부디 ‘공수표’가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예상만은 ‘글쎄올시다.’라고 한다. <편집자 주>


부산영화제 소식으로 영화계 안팎이 뒤숭숭한 가운데 2017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소식을 뒤늦게 전하게 됐다. 부천영화제는 부산, 전주와 함께 국내 영화제 3대장으로 꼽힌다. 쉽게 말해 이름대로 정말 실험적이고 ‘판타스틱’한 영화를 주로 튼다.


“어째 예전보다 상영관도 상영 횟수도 많이 준 거 같으여.”


지난달 14일 영화제 주 상영관인 부천시청에서 살짝 거리가 있는 역곡으로 이동하면서 부천 택시기사와 나눈 얘기다. 하긴 10년 전만 해도 공.사립을 막론하고 시내 모든 상영시설이 총동원돼 성대하게 영화제를 치렀는데 올해는 시청과 바로 앞 중앙공원(야외상영관) 일대만 들썩이는 느낌을 줬다. 그럼에도 늦은 시간 관객 편의를 위해 경찰이 차량통제에도 나서는 등 여전히 부천시의 지원은 출중하다.


이와 별개로 사실 부천영화제는 2000년대 초반에 내홍을 한 번 크게 겪었다. 영화제 집행위를 장악하려는 시의 입김 탓이었다고 한다. 결국 시의 인사권 전횡에 반대해 관 주도로 치러지는 영화제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따로 주관한 영화제(리얼피판)가 부천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축제의 양과 질을 해마다 키워나갈 때에 영화제의 존립을 해치는 독립성 문제로 큰 상처를 입은 것. 이를 회복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제의 독립성은 영화제의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부산영화제는 지금 꽤나 아프다. 최근 부산영화제 집행위 직원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불명예 퇴진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 등을 요구했다. 왜 쫓겨났는지 명명백백 밝혀졌으니 당연히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김동호 조직위원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올해 영화제 폐막식을 끝으로 동반 퇴진할 뜻을 밝혔다. 지난해가 바닥일 거라 믿었던 부산영화제는 국정농단과 <다이빙벨> 사태의 전말이 특검 수사와 블랙리스트 파문 등을 통해 드러나면서 올해 더욱 땅속으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지난봄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는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형국이다. 아예 조직위 공식 기자회견 때부터 검열 또는 표현의 자유 탄압에 대한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들며 전주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고 공언하면서 출발선을 끊었다. n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숨기고 전주시가 제작비 상당수를 지원한 <노무현입니다>는 다큐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전주영화제 자체는 최근 한 해외 매체로부터 세계의 매력적인 영화제 중 하나로 뽑혔다.


산악축제로 지향하는 바는 약간 다르지만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장식할 울주국제산악영화제 역시 세 영화제의 사례를 찬찬히 뜯어보며 비슷한 과오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응답하는 영화들


“전도연 어머닌데요. 저흰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필자가 지난달 14일 부천시청을 찾은 이유는 이곳에서 배우 전도연의 영화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부천시청 대강당에서는 <밀양> 개봉 10주년 기념을 겸해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씨의 대담이 진행됐다.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큰 이목을 끈 대목은 <밀양>의 하이라이트 장면에 숨겨진 비밀이었다. 주인공이 자택에서 자해를 시도하다 뛰쳐나오는 장면은 원작인 이청준 소설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영화 <밀양>이 수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때문에 <씨네21> 기자는 이창동 감독에게 원작과 다른 장면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갔다. 이 감독이 원래 원작에 나오는 저수지 신을 찍었으며 그 장면 이전의 영화 전개도 저수지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폭발시키기 위해 누적적으로 구성했다고 밝힌 것이다. 원작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된 저수지로 들어가 신과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묘사 돼 있다.


배우 전도연 씨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 당시에는 실제 이 장면을 찍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번에 촬영을 끝내기 위해 주인공에게 몰입해 미친 듯이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실제 촬영 당시에도 물속에서 숨이 멎을 뻔해 마지막에는 촬영감독이 전 씨를 들쳐 업고 저수지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은 결국 이 장면을 쓰지 않았다. 무려 보름 동안 영화 촬영은 중단됐으며 감독 역시 칩거에 들어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을 어떻게 새로 짤 것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왜? 그리고 이날 부천시청 대강당에서는 <밀양>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바뀌었어야 하는 이유가 영화 개봉 10년 만에야 처음 밝혀졌다.


“촬영을 한 번에 끝내야 했기 때문에 카메라 두 대로 동시에 촬영했는데 초당 프레임 수가 1프레임 차이나는 줄 모르고 찍었다. 도저히 쓸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화면이야 어떻게 편집하면 됐지만 음향이 문제였다.”(이창동 감독)


주인공 전도연 씨도 그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눈빛에 서린 당혹감이란.


체감 상 이날 대담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결과적으로’였다고 본다. 내(전도연)가 엄마였다면 주인공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을까. 내(이창동)가 주인공에게 저수지 신의 실수를 알려줬다면 영화 촬영이 온전히 끝날 수 있었을까. 또 감독이 배우에게 주인공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알려줬다면 과연 자연스러운 영화가 나왔을까.


이처럼 영화의 본질을 파고드는 많은 질문거리들이 오고갔지만 무엇보다 10년을 묵혀 밝혀진 진실 하나에 청중들은 그 ‘결과’라는 것에 대해, 또 결과가 있기까지의 숱한 과정들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을 거 같다.


다시 응답하라


왜 부천은 <접속>과 전도연을 호출했을까.


어찌 보면 영화제가 이들에게 ‘응답하라’는 조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국내 3대 영화제로 손꼽히는 것들도 딴에는 1990년대의 풍요로운 문화, 그 영화를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본다. 부산영화제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광복동에서 상영하던 때 영화를 보고나서 자갈치시장이나 포장마차 골목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던 때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추억 속에는 영화제 초창기가 참으로 찬란했던 과거일 터.


논란의 <밀양> 특별 대담을 뒤로한 채 심야상영 전까지 잠시 시간이 남은 필자는 오랜 지인을 만나러 역곡으로 갔다. 다음은 때늦은 교통정체 속에서 택시운전사와 나눈 얘기.


“아저씨, 여기 ‘까치울’이 설현이 나고 자란 데라면서요?”
“설현? 설현이가 누구야?”
“왜 가수인데 씨에프 많이 찍은 친구 있잖아요. 유명한데.”
“글세... 나는 잘 모르겠는데?”
“어? 왜 설현 경기예고(부천 소재) 나왔는데.”
“설현은 모르겠구. 부천에 연예인들은 많이 살았어.”
“아.. 네에. 중동에 신동엽도 살았다면서요?”
“그치. 신동엽도 살았었구 이소라도 살았었어.”
“아~ 정말요?”


기사님이 말한 이소라가 가수 이소라인지 모델 이소라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저마다 생각하는 찬란했던 순간, 중요하게 떠올리는 과거도 다를 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은 함께 지냈다고 해도 그렇다. 딴 건 모르겠고, 이날 나와 지인이 역곡에서 시킨 맥주는 ‘클라우드’였다.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