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기행 <2> 문화소비와 ‘문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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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 추모전 매표소 앞에서 만난 꼬마. ⓒ이채훈 기자


미디어 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대만이 못 견디게 부러웠던 건 편의점과 서점이다.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 서점, 그리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서 절찬리에 판매하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 단행본들. 이건 상품들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를 떠나 대만의 미디어 수용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집 근처로 가서 이를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허영심일까. 모르긴 몰라도 풍성한 문화는 참으로 가져보고 싶은, 그 어떤 무엇이다. 그러나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기 쉽다고 해서 김구 선생 말씀처럼 오로지 가져보고 싶은 무언가인 ‘문화의 힘’을 이룩할 수 있을 지는 또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대만의 ‘삼산’을 찾아


또 다른 대만 문화탐방. 소위 타이베이의 핫한 곳에는 ‘산’이 많이 붙는다. 화산, 송산, 중산... 뫼 산(山) 자 붙은 지명에 젊은이들이 많이 몰린다. 중산은 대만의 가로수길이니, 화산은 대만의 쌈지길이니 하면서 한국 여행자들이 별명을 붙인 모양이다. 아시아의 수많은 청년들 사이에 한국 관광객 모습도 이따금 보인다. 소위 타이베이의 ‘삼산’ 중에서 도시재생 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화산과 송산이라 한다.


화산과 송산. 이 둘은 대만의 문화특구이자 손꼽히는 도시재생 사례지만 비슷한 듯 저마다 특징이 다르다. 정식 명칭은 ‘문화창의특구’라서 불과 얼마 전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계의 창조경제 사례를 떠올리게도 한다. 더군다나 그 과거도 이름도 비슷해 초심자들은 헛갈리기 쉬운데 송산(송산문창원구)은 옛 담배공장을 뜯어고쳤으며 화산(화산1914 창의문화원구)은 양조장을 뜯어고친 곳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아두자.


변신! ‘양조장과 담배공장’


특이하게도 송산특구는 우리로 치면 국가정보원 건물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경찰국 소속이기는 한데 영문 명칭에 CIA가 들어가는 걸 보니 영 엉뚱한 해석은 아닌 듯하다. 더군다나 그 옆에는 아직 뼈대 밖에 쌓아올리지 못했지만 타이베이 돔구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여러모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사업이겠단 느낌이 든다. (만약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국정원 개혁’ 드라이브에 발맞춰 내곡동에 이런 개발계획이 잡힌다면?)


여하튼 주변으로 민감한 정보가 몰리는 입지 조건상 특구 내 모든 시설은 오후 6시에 전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건 화산1914와 다른 점이다. 화산 내에는 대만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직영하는 독립영화 상영관이 있어 밤에도 여러 예술영화들을 틀어준다.


무튼 다녀와 보니 좋다. 아기자기하고 웅장하고 무려 고풍스럽다. 이걸 요새 빈티지라고 부르나. 쌈지길 같고 삼청동 같다.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췄다. 그러나 굳이 이것 때매 ‘우와! 대만은 참 대단하구나.’ 하고 놀랄 일은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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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송산특구에는 호텔이 하나 있는데 이 역시 성품서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채훈 기자


혹시 해당 지자체에서 이를 참고했는지 모르겠지만 충북 청주에서 연초장을 문화특구로 다시 세우려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립미술관 수장고를 유치했다지만 비엔날레 할 때만 빼면 이 연초장은 별 쓰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국내에 비슷한 경우가 더러 있다. 서부서울역으로 나와 숙대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을 찾을 수 있다. 이곳도 일제강점기 공장으로 쓰이던 곳을 개조했는지 화산1914와 비슷한 외양이다. 실험적인 작품이 종종 상연되는 것으로 안다. 위치는 좋지만 실질적 접근성이 떨어진다. 인천내항 초입에는 과거 대한통운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예술가들이 입주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천문화재단 사례도 있다. 이곳 겉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쓸모 잃은 땅에 황금의 손을


그래도 타이베이의 두 지역에 먼저 눈길이 가는 까닭은 무엇보다 입지가 좋아서다. 화산은 쉽게 말하면 서울과 용산 사이에 있다. 부산으로 치면 부산역과 부전역 사이에 양조장이 있었던 셈인데 어떤 개발자여도 이 쓸모를 잃은 황금의 땅에 마이더스의 손을 대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가깝거나 먼 미래에는 부산진구 전포동 옛 제일제당 부지나 부전역 일대 철도창, 아니면 부산진역 일대가 그와 비슷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북항재개발 사업은 규모나 지향점을 볼 때 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다. 수영 고려제강은 선대의 사업을 기념하고 싶었던 민간의 의지로 가능했던 일이라 보고.


게다가 송산은 무려 입지가 대만의 삼성동 격이다. 그마저도 돔구장 건설이 멈추면서 반쪽짜리 계획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타이베이 도시재생의 빛과 그림자를 훌륭한 보조교재로 삼아 국내 상황에 맞고 지역별 입지조건에 적합한 송곳 같은 도시재생 복안을 짜내봄이 어떠한가. 이제 우리도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말자.


동양과 서양, 문화의 패스트푸드 화


더불어 이런 문제도 떠오른다. 이토록 아시아에서 문화예술과 함께하는 도시재생이 돋보이고 있지만 그 사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에 따르는 이익은 과연 누가 가져가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장소만 제공할 뿐이고 ‘알곡’은 다른 누군가가 다 가져갈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필자가 대만을 다녀갔을 때 화산은 폴 스미스 특별전을, 송산은 가우디 특별전 등을 열었다. 장소는 기억 안 나지만 지난해 숨진 건축가 자하 하디드 추모전을 진행 중이었다. 셋 모두 거대하거나 세계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시아와는 살짝 거리가 있는 문화콘텐츠다. 그래서 개최 장소만 바뀔 뿐 다른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같은 문화의 패스트푸드화가 도시재생과 문화 창조의 끝은 아닐 테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역시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했다. 훌륭한 건축가지만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독재자가 은연중에 세 과시 목적으로 주도한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 프로젝트를 종종 맡았다는 점 때문에다.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평가 중에도 이따금 이런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끝으로 최근 눈여겨본 지자체 구호 중에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행복과 창조, 문득 흐뭇해지는 단어다. 이런 목표를 세운 도시가 비단 대구 뿐만은 아니리라. 허나 좋은 뜻에서 시작한 사업이 대부분 보여주기 식 대형 프로젝트, 그래서 주류문화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이들의 부와 영향력만 강화시켜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결과를 낳는다면 창조적 도시는커녕 시민들의 행복이라는 꿈도 이뤄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품어본다.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