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변호사 “정치, 나보단 형이 더”
울산 현안, 광역시 승격처럼 쟁취해야


03송철호

송철호 변호사


“선거하면... 가족들에게 제일 미안하죠!”


유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당시 구속자 문제를 앞장서 해결한 인권변호사에서 산재모병원 추진 문제를 고민하는 시민운동가의 모습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송철호 변호사의 요즘 고민은 ‘재조울산’과 ‘태화강시대’라고 한다.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인터뷰 시작 전, 신성봉 중구의회 의원 제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냈다는 문자가 송 변호사에게 도착했다. “이 역시 신경 많이 썼는데... 다행입니다.”


송철호 변호사(이하 ‘송’)=1985년 2월에 부산에서 개업했죠. 사무실 개업 인사말이 평생의 변호사 인생을 관통하는 정신이 됐습니다. ‘눌린 자를 일으키고 굽은 것을 바로 펴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개업광고문을 냈죠. 그렇게 2년 동안 부산서 활동하면서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와 가까이 지냈죠. 노무현 변호사가 선배이긴 하지만 다들 젊은 변호사들이었죠. 그렇게 지내다 87년 2월에 울산으로 오게 됩니다. 울산에서도 같은 광고문을 기치로 내걸었죠.


그해 유월 항쟁이 있었고 항쟁 직후에는 크게 울산에 구속자 문제나 법률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87년 7월 5일이 울산에서 굉장히 중요한 날이죠. 권용목, 사용운, 오종쇄 씨 등이 현대엔진노동조합을 설립하는데 민주노조로는 1호죠. 그 전에는 현대그룹에서 정주영 당시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됐죠. 현대엔진노조 설립을 시작으로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나고, 8월 18일 현대계열사 노동자들이 남목고개를 넘어 공설운동장까지 행진해요. 그날 노동부차관까지 내려와서 이런 합의가 이뤄져요.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인정, 9월 1일까지 임금인상 타결, 각 계열사 사장들에게 전권 위임. 이게 합의서 사본입니다. 울산시장과 노동부차관, 안기부 소장 이런 사람들이 합의했죠. 이렇게 8.18 합의로 어느 정도 진정되나 싶었는데 제대로 합의가 이행이 안 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9월 초순에 구속자들이 발생합니다.


당시 노동자들이 상담하는 모습도 사진에 담겨 있습니다. 권용목, 김진국, 다 젊은이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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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18 합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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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송철호 변호사가 노동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철호 변호사, 김진국 당시 현대중공업노조 수석부위원장, 권용목 현대엔진노조 위원장. 변호사 사무실을 연지 1년이 되지 않아 개업 축하 화분이 그대로 놓여 있다.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나를 잘 몰랐고, 또 노동자들이 변호사들의 역할을 몰라 변론을 누구한테 부탁하느냐면 회사 측 고문변호사한테 해요. 구속 노동자들이 변호사가 그냥 도와주는 사람이라 생각했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몰랐던 거죠. 당시 회사 측 고문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자꾸만 반성하고 다시는 안하겠다는 각서 등을 작성해 제출하면 바로 그 다음날 석방해주겠다고 권유하니 노동자들이 뭔가 변호사가 할 역할이 이게 아니지 않냐고 해서 찾아온 사람이 접니다. 처음에 9월 구속자 네 명부터 시작했더니 울산지역에 구속자 재판받는 이, 불구속 재판 받는 이 전부 또 학생들까지 구속자 발생하면서 나중에는 다른 변호 일은 할 수 없게 되죠.


노동자대투쟁은 전국적인 문제가 되면서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돼 노무현 변호사, 서울의 조영래 변호사가 와서 도와주기 시작해요.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울산에 왔죠. 문재인 변호사는 그 당시 울산을 직접 오진 않고 항소심을 부산에서 담당합니다. 보이지 않게는 1차 주심 변호사가 동부영남(부산, 경북, 포항, 대구 일부) 학생이나 노동자가 구속되면 이건 내 몫이 되고, 서부영남은 노무현 선배가 많이 맡았죠. 그래서 대우 거제 이런데 많이 가시고 나중에는 대우 제3자 개입 문제로 구속도 되고 그러셨죠. 문재인 변호사는 부산에서 항소심을 주로 맡아 셋이서 역할 분담을 했죠.


그렇게 쭉 지내다가 90년대 초반까지는 인권문제가 이런 변호사의 역할과 기능이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시민운동이 주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뒤에는 민주화를 추동하고 잘 이끌고 가는 민주시민회가 결성됩니다. 울산민주시민회 결성 과정부터 참여해서 장태원 선생, 이완재 목사, 성인수 교수하고 87년 이래 흩어진 시민사회단체를 하나로 묶어 민주시민회를 만들고 그를 중심으로 교육활동, 사회적 문제제기 등을 주로 했었죠.


그러다가 1992년에 들어서서 이제 정치권에 진입해야 된다, 92년에 대선이 있고 초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국회의원 선거부터 해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 시민사회계가 회의를 했죠. 당까지 정하고 정치권에 두 명을 진출시키는데 권용목의 부친 권처홍 아버님께서 동구, 중구에는 김태호와 신진 인권변호사가 붙어야 한다고 해서 저 송철호를 시민사회 노동계에서 연합후보로 출마를 시키죠.


솔직히 저는 정치지망생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88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초선 의원이 되고 자꾸만 자꾸 정치계로 같이 가자고 권유해서 저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고, 또 솔직히 울산이 내 연고지도 아니고 해서 좀 어렵다고 고사를 했죠.


기억하기로는 88년 무렵에 문재인 변호사가 한번 같이 등산하지 않겠냐고 해 부산 자기 사무실하고 울산 우리 사무실하고 등산하자고 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표충사 앞에서 만나 사자평 넘어 재약산, 천황산까지 갔죠. 중간 무렵에 사자평에서 점심을 먹는데 억새밭에서 점심 자리에서 변호사라고 우리 둘이 앉고 직원들은 따로 앉고 소주 한 잔 하면서 문재인 변호사가 그런 이야길 해요.


“노무현 선배께서 정치하자고 자꾸 얘기 안하시나?”


“어. 맞다.”


“내한테도 그러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치하고는 체질이 안 맞다. 근데 형은 좀 맞는 거 같다. 노무현 선배가 저렇게 애타게 그러는데 형은 좀 거들어줘도 될 거 같다.”


나중에 문재인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 됐을 때 그때 빚 갚으라고 한 계기가 됐죠. 하하.


#첫 선거...시민사회 추대로 출마


아무튼 그때 바로 출마한 건 아니고 1992년에 시민사회에서 추대해 출마하는 것으로 돼 정당까지 민주당으로 선택해서 권 아버님은 무소속으로 하고 송 변호사는 민주당으로 한다. 권 아버님도 내용적으로는 민주당으로 해서 선거자금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둘을 세트로 해서 출마한다고 정했죠. 민주당에서도 그걸 오케이했어요. 송철호를 끌어오기 위해서... 그런데 결국 둘 다 권 아버님은 정몽준한테, 저는 김태호한테 졌죠.


이종호 편집국장(이하 ‘이’)=심완구 의원과는 어떻게 이어지나요?


송=심 의원께서 87년에 한번 보자구 그래요. 선배입니다. 공업탑 복국집이 많았는데 그때 점심을 먹다가 이 어른이 김영삼 총재께서 송철호를 꼭 영입시켜라, 내가 그 사람을 88년 출마하면 특별히 지원해서 김태호하고 싸워서 승리하도록 해보자고 해 나를 지목했대요.


그래서 같이 점심 먹으며 나를 설득하는데 저는 그때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분을 젊은이로서 비교했을 때 김대중 선생이 좀 더 앞선다고 생각했어요. 내심은. 그 말은 표현 못하고 87년 김영삼 쪽으로 가자고 심 선배가 설득하는데 거부를 했죠.


그때도 사실 이흥록 변호사가 부산에서 울산으로 잠깐 계셨는데 이분이 김대중을 지지하는 대표적 변호사여서 저를 김대중 선생님이 만나자고 한다고 87년에도 양쪽에서 다 저를 찾고 있었죠. 그래서 사실은 김대중 총재를 만나려고 했는데 같이 서울로 출발하려는 날 이흥록 변호사에게 “선배님 제가 김대중 총재를 만나게 되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야권 단일화 문제니까 김영삼 김대중 중에 87년 12월 대선에 한 사람만 출마해 단일화를 꼭 이뤄야 합니다. 이뤄야 한다면 저는 김대중 총재께서 양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죠.


이 변호사가 놀라서 “왜?”하고 물어봐요.


“저는 김대중 총재를 더 아낍니다. 지금 시대정신이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군부청산이 시대정신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부청산은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올 텐데 김대중과 김영삼 중에는 김영삼이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부청산의 바탕 위에 다음에 김대중 총재께서 대통령이 되신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상당히 순행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으로 된다면 어렵기도 하지만은 엄청난 저항을, 소위 적화통일 논리로 해서 피바람을 몰고 올 수 있습니다.”(송 변호사)


“미안하지만 그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면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몽둥이로 맞겠다. 안 가는 게 옳겠다.”(이 변호사)


그래서 가기로 했는데 안 가고 중지한 적이 있죠.


#현실정치가 만만한 게 아니구나


그리고 92년에 시민사회 추천으로 권 선생과 출마하고 그게 정치 입문이 됐는데 막상 해보니까 현실정치가 만만한 게 아니구나, 더군다나 제 선대 뿌리가 호남 익산이라는 걸 상대진영에서 엄청나게 퍼뜨리고 호남에서 오는 걸로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부산에서 나고 부산에서 초등학교 다니고 어머니 돌아가셔서 익산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 부산으로 왔는데 그걸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할 이유도 없는데 상대진영에서 너무 그걸 악용하니까 울산에서 정치하기 힘들겠다, 나가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야권 신진으로 젊은 대표선수로 하다 보니 때만 되면 땟거리처럼 어떻게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괴롭히는 거예요. 결국에는 내 흉중에 마음이 약한 죄로 결국은 거부하다가 그냥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대표선수로 나서고 하는 일이 계속되죠. 그것이 국회의원 여섯 번, 시장 두 번, 대한민국에서 큰 선거를 나처럼 많이 치르고 패배만 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꼬라지가 되고 말았죠.


이=쉽지가 않은 일인데요.


송=기둥뿌리 흔들린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재정문제가 늘 고통을 주죠. 최소범위에서 하려다보니 인심이 박하다, 도와준 사람들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이야길 많이 듣게 되죠. 대신 선거 끝나고 나면 그 다음 날 바로 다시 변호사 상담하고 법정에 가고 그렇게 뭔가 부지런히 죽어라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빠졌죠.


이 문제에 관해 노무현 선배와 토론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현대차노조 대의원 중에 하나가 변론 끝에 석방이 됐는데 그런데 다른 일로 구치소에 가니까 다시 구속돼 있는 거예요. 내가 그걸 보고 당신 이리 와 봐요. 석방됐는데 왜 아직 남아 있소? 하니 하는 말이, 나가서 석방돼서 기분 좋아 친구들하고 음주하고 운전하다가 뺑소니하고 또 구속됐다, 그러더라고요. 석방 환영주 마시고 다시 구속된 셈인데 변호사가 다른 사람이예요. 그러면 왜 나를 찾아오지 않았냐? 물어보니 말이 걸작입니다. 이 변론은 돈을 줘야하는데 변호사님은 돈을 주는 변론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걸 화를 낼 수도 없고 기가 막혀서 노무현 선배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노 변호사 말씀이, “송변! 그런 정도로 못 참어? 내는 그보다 더 한 꼴도 당하고도 산다!”라고 하세요.


알고 보니 노 변호사는 이런 일도 겪었대요. 어렵게 어렵게 석방된 친구들이 노 변호사 자택에 쳐들어왔대요. 그래가지고 양주 꼬불쳐놓은 게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부르주아 집에 이런 것도 있다 하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마시고 술 다 마시고 가더라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역사의 희생자, 영웅적인 심리가 강하고 변호사는 당연히 봉직해야 하는 봉사자라는 생각이 강한 거 같았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많으니까.


한 번은 노무현 선배가 해수부장관이 돼서 서울에 한번 고기 사준다고 오래서 갔어요. 해수부 건너 고기집에 이강철 선배하고 어울려 고기에 소주 한잔 하면서 어울려, 선배님 제가 참 궁금한 거 있는데 평소에 물을만한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이것만 한번 물어보자. 선배나 저나 변호사인데 저는 진짜 돈 때문에 말을 못 하겠고 낑낑대고 파산위기도 많이 느끼고 밤잠도 설쳤다. 근데 가만 보면 선배님은 나보다 일을 덜 하는 거 같다. 난 선거 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날부터 저는 변호사입니다, 일해야 합니다, 하는데 선배님은 전국적으로 지방자치연구회하고 하는데 도대체 그 경비는 어디서 나오며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노 변호사 말씀이,
“송변! 송변은 부산고등학교 나왔지? 내는 부산상고 아이가? 상고 나온 사람이 이재는 낫지. 땅을 사 봐도 더 사봤고... 살 길 궁리하는 건 내가 송변보다 낫다.(씨익) 내가 낫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물장사까지 손댔다가 죽을 지경이다.”


그게 알고 보니 ‘장수천’ 사업이었어요. 물까지 관여했다, 나중에 그 말의 의미를 알았죠.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속은 안 좋다는 말이 경제적으로는 늘 어려운 문제였던 거 같아요.


저 역시도 그래도 어떻게 부도는 면하고 지금까지 버텨왔고... 진짜 옛날에는 출판기념회 하면 후원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게도 못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자원봉사가 주 활동 원천이고 하니까 여당이나 소위 여당이 생각하는 통.반 조직은 꿈도 못 꾸고 선거법 상 인정하는 운동원 유지하는데 급급하고. 그러면 생각해봐요. 후원금하고 하면 빚을 지지만 그래도 또 죽어라 몇 년간 갚으면 갚을 정도의 빚만 지더라고요. 솔직히 아직도 빚이 있고요. 갚고 또 갚고 하면서 파산 안 당하고 지내고 있죠.


이=시민운동에 뛰어든 계기는요?


송=울산지역의 시민들에게 내가 울산지역 출신도 아니고 노동인권 변론 이거 가지고 깊이 있는 뭔가 명분, 뭔가 시민에게 이런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하고 명분을 주장하기에는 노동자 학생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시민들에게는 당신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물어보면 그런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DJ “자네 말 일리 있네”...만장일치 승격


1995년 광역시 승격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돼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선거공약 중에 하나로 울산광역시 승격을 약속하는데 그때 김대중 대통령후보도 공약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94년도에 그걸 무기한 연기합니다. 97년경에 재론하겠다는 건데 그때는 대선이니 사실상 안하겠다는 얘기죠. 그때 광역시 승격문제가 울산 사회의 주 관심사였을 때 이 문제에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95년 8월에 울산광역시는 하나의 권리다, 우리 울산시민이 겪은 수많은 고통 노사분규 환경오염 도시난개발 이런 것들에서 오는 고통에 대해 정부가 광역시 승격을 통해 뭔가 보상해줘야 하는데 그 약속을 어긴 것은 그냥 기다리면 안 된다고 해서 울산광역시 쟁취시민운동본부를 만듭니다. 10만 명 서명운동을 합니다. 광역시 쟁취, 청원운동까지. 97년 7월 15일 광역시 승격되는 데 한 축을 담당하고 많은 분들이 역할을 했습니다. 시의원도 그렇고, 그 중에서도 권리 쟁취 차원에서 시민운동으로 한 것은 제가 주도한 것입니다. 제도권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노력을 결합시킨 형태로 광역시 운동이 벌여졌고 그것이 광역시 승격의 큰 축이 됐다는 거죠.


김대중 총재께도 광역시 승격을 말씀드리니 안 된다고 하대요. 송변 고생한 거 다른 건 도와줄 수 있지만 광역시 승격은 안 돼. 왜 안 되는 지요? 그 분이 92년에 대선에 실패하시고 정계은퇴 선언하고 유럽에 영국에 계셨죠. 계시는 동안 영국과 유럽의 지방자치를 면밀히 검토하셨는데 보니까 지방자치는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이 정보화시대 그때부터 인터넷 생기고 할 때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세분화하는 것이 추세가 아니고 광역화하는 것이 추세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을 메갈로시티(거대자치단체)화 하는 게 추세라는 걸 유럽에서 보신 거죠. 지방자치 신념이 강하지만 광역화하면서 지방자치하는 걸 부산경남을 통합해 거대한 지자체를 만들자는 건데 이걸 쪼개자는 거는 세계사적 흐름을 역행하는 거라고 하세요. 그때 길거리에서 하루에 500명 서명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5만 명 서명을 받은 상황에서 이 얘기를 들으니 땀방울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선생님 말씀 맞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지금 울산시민들은 운전면허 갱신하려고 해도 창원 경남도청까지 가야되는데 그럼 하루 걸립니다. 이렇게 백만 시민이 고생하는데 이렇게 ‘한시적으로’ 광역시 승격을 시켜주는 건 어떻습니까?”(송 변호사)


“그건 무슨 뜻이오?”(김대중 총재)


“광주를 전남에, 대구를 경북에, 대전을 충청에, 부산을 경남에 통합할 때까지 울산을 광역시로 시켜주면 어떻겠습니까.”


김 총재께서 한참을 가만히 저를 보시더라고요.


“그럼 자네말도 일리가 있네!”


그래서 야당의 반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96년에 야당의 반대 없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광역시 승격운동은 울산시민에게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울산시민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고, 그게 첫 번째 제 기여였습니다. 울산 출신도 아니고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일정 정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첫 뿌리가 광역시 승격인데, 그때 5만 명 서명 운동 받는 게 언양장, 남창장, 동구 남목장 그 온갖 거점을 돌아다니는 계기가 됐고 20년이 넘었지만 그때 장터에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이유죠. 후배들에게 처음 정치를 시작하려면 어딘가 좌판 깔아놓고 사람들 많은 분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판을 열지 않고 무슨 재주로 시민들에게 어필하겠느냐, 이슈를 선점하는 노력을 해라고 조언해요. 광역시 승격에도 도움이 됐지만 저 스스로도 많은 도움과 보상을 받은 셈이죠.


#광역시 승격 후 고속철도 문제 생겨


광역시 승격 이후에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허전해 시민에게 다가가고 주장할 거리가 없나 생각하다가 고속철도 문제가 생긴 겁니다. 울산역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98년엔가 울산시 정책대학원에 들어가 고속철도를 연구하고 그걸로 논문 쓰고 석사학위도 받아요. 고속철도 울산역의 당위성에 대해 주장하는 단체를 1997년에 만듭니다.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 위원회를 만들어서 또 돌아다니며 서명운동을 합니다. 언양장, 남창장에서 고속철도가 대구에서 경주에 서고 바로 부산으로 간다면 언양장 같으면 얼마나 피가 끓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바로 여러분 눈앞에서 300킬로 시속의 철도가 지나는데 엄청난 소음 괴성을 내며 지나는데 여러분 앞에는 서지 않습니다. 그럼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호소하고 김영삼 정부 말기부터 고속철도 울산역 추진해라 서명해서 보내고 청원하고 10만 명 서명을 모아요.


사실 이미 그게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고속철도 확정발표되고 91년 10월 역까지 확정된 상태에서 10년 가까이 지난 상태에서 설계니 보상이니 진행이 다 된 상황에서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한 것을 두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께 호소하죠. 김대중 대통령 때는 빈정대기도 하더라고요. 호남 자체는 철도 계획마저도 없는데, 경주 이용하면 되지 무슨 역 이야기까지 하느냐 핀잔까지 들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친하니까 마주보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제가 고속철도 이야기하며 흥분하는 것도 많이 봤으니까 “고속철도 울산역 좀 챙겨주십시오.” 하니까 “그거 안 될 일을 주장하는 거 아니가?” 이러데요. “고속철도가 밀양 가는 거 아니야?”(노무현 대통령), 그러니까 경부선하고 착각을 하신 거죠. “대통령님, 그거는 옛날 경부선이고 지금 새로 생기는 거는 대구에서 경주로 해서 울산 언양을 가운데로 통과합니다. 그런데 역을 안 만들고 그냥 간다는 겁니다.”하고 말씀드리니,


“세상에! 그게 말이나 되나? 밀양에서 끌어온다는 것도 아니고 밀양에서 울산으로 끌어와도 시원찮을 판인데, 울산을 지나가면서 울산에 만들지도 않는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가?”(노 대통령)


“근데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셔도 관료들은 그렇게 안 할 겁니다. 마음 단단히 잡수시고 꼭 좀 챙겨주십시오.”(송 변호사)


실제로 관료들이 그렇게 안 된다고 했대요. 논란도 많았고 장관부터 시작해 관료들도 만만치 않고 육상 철도 정책 실장들은 5년만 우리가 버티면 될 거 아닙니까? 이런저런 보고서 쓰고 공사 지연시키고 정권 바뀌면 그냥 가면 됩니다, 했대요.
또 문재인 실장이 민정수석으로 계시니까. ‘빽’이 좋잖습니까. 문재인 수석한테 교통부장관 만나게 주선해 달라, 차관 국장 전부 문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다 주선해주고, “설득은 형이 가서 하고.”(문 민정수석) 많이 도와줬어요. 결국은 고속철도역을 최종 발표한 게 2003년 11월이죠. 울산에 설치하겠다고 한 게.


그러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국립대 문제가 시작되고 국립대 문제도 대통령께서는 쉽게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울산에 대학이 없다는 건 국립대가 없다는 건 쉽게 이해하시더라고요. 교육부 관계자들은 지금 있는 국립대도 반으로 줄여야 되는데 무슨 국립대 신설이냐 어림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에이, 송 위원장. 산아제한 한다고, 산아제한 필요하다고 알라들 하나도 못 낳게 두드려 막을 수 있나? 필요할 땐 낳아야지.”


이에 빗대서 말씀하신 거죠. 대학을 줄여야 한다고 해서 전국을 그렇게 다 막는 게 어디 있느냐, 대학이 필요한 덴 만들고 안 그런 데는 줄여야지, 라고요.


국립대도 교육부 저항이 심했던 것을 대통령이 그렇게 추진하시고 1500억 원 비용인데 반은 울산시에서 낼 테니 최종확정해달라고 하는 걸 당시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인 저나 당시 열린우리당 강길부 의원이나 왜 국립대인데 울산시에서 돈을 내야 되나, 시에서는 빨리 하자고 하고, 우리는 끝까지 정부 설득할 테니까 면담신청해서 강길부 의원하고 가서 교육부 장관하고 대통령 식사 자리에서 건축비용까지 국가에서 다 부담하는 걸로 결정하기로 했죠. 그래서 박맹우 씨하고 지방선거 티브이 토론에서 언급했죠. 750억 원을 당신이 시민세금으로 내자고 주장한 걸 내가 끝까지 국비부담으로 했는데도 당신은 무슨 근거로 시의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느냐고요.


#산재모병원이 차질 없이 추진되려면


산재모병원도 제가 먼저 2007년 가을 쯤에 이지스함 진수식 때 현대중공업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오셔서 롯데호텔 하루 주무시고 아침 새벽에 일찍 호텔 중식당에서 대통령 부부랑 저랑 강길부 의원, 문재인 비서실장이 식사하는 자리에 “대통령님. 마지막 선물 하나 더 주십시오.” 했죠. 그게 뭐냐고 하니, 울산이 대한민국 최고의 산업도시인데 산업재해가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그 사람들 위한 병원이 하나 없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깜짝 놀라요. 뭐 울산은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결여된 도시, 빼앗긴 도시처럼 돼 있구나. 문재인 실장에게도 물어봐요. “문 실장 이게 이해가 가? 산재병원이 하나도 없다는 게.” 그러니 문 실장이 아,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잘 알아보고 바로 정책화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얘기했죠. 그것이 이명박, 박근혜 때 지지부진하다가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입니다. ‘혁신형 공공병원의 성격을 결합한 국립병원을 발전시키자.’ 그걸로 끝장을 내야죠. 그 당시 문재인 실장이 분명히 같이 놀라고, 문제 있다고 공감한 것이니만큼 틀림없이 이번 정부에서는 이뤄질 거라고 믿고 있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제대로 진척이 안 됐어요. 지금도 예비타당성 심사 단계에 아직 머물러 세월만 보낸 셈이죠.


혁신형 공공병원을 주로 해야 되는데 다만 지금 이미 추진해오던 산재모병원을 철회하고 다시 공공병원으로 할 거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요. 그러면 우선 부처가 달라집니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죠. 산재모병원은 노동부 소속인데 근로복지공단 기금으로 쉽게 할 수가 있는데 보건복지부로 가면 국회로 다시 공이 넘어가게 돼요. 기술적인 미묘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있어 아주 굉장히 신중하게 현재의 산재모병원을 기본적으로 쟁취하면서 거기에 혁신형 공공병원을 가미시키는 방식을 검토 안 할 수가 없어요. 무작정 취소하고 다시 시작할 때에는 5년 내에 결론 내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울산에는 탈핵 등 굵직굵직한 문제가 많습니다.


송=저는 그때그때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뭘까를 고민합니다. 광역시 승격, 고속철도역, 국립대, 산재모병원... 무엇보다 내가 할 일이 있는 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시민에게 도움이 될 일이 있는가, 저는 그 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그동안 안개 속을 해매는 느낌이었죠. 뭔가 시민에게 중요한 기여랄까, 중요한 비전을 주지 못하면서 시장을 한다는 건 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에 와서 아주 긴 장고 끝에 고민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께서 ‘재조산하’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산과 강을 다시 만든다. 이순신 장군이 하셨던 말이죠.


대통령이 국민께 대한민국의 산하를 다시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하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것도 ‘재조울산’입니다. 울산을 다시 리모델링하자. 재조산하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민생이고, 하나는 울산산업 재편입니다. 그동안 너무 규제중심으로 삶을, 사람들의 삶을 옭아맨 구조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인 활동의 사회로, 창조적인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죠. 필요 없는 규제나 이런 것들은 대거 철폐하고 그동안 오랫동안 쌓여있던, 하나의 어떤 퇴적물처럼 옭아매고 있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대폭 개선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산업 쪽이죠. 아무래도 울산이 이제는 제조업 중심에서 문화관광생태도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없앤다는 게 아니라 그런 쪽으로, 중요한 도시행정의 목표를 그쪽으로 갈 때가 오지 않았나, 그렇게 하려면 환경과 안전의 가치가 소중해지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안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약간 좀 추상적인데요.


송=이를 기본철학으로 해서 시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을 문재인 대통령께서 약속하셨지만 이건 작은 밑그림이고 크게는 반구대에서 태화강 하구까지 혹은 장생포까지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원시인이 그렸던 고래와 장생포의 고래가 문화로 만날 때가 왔다는 겁니다. 단순한 자연환경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엄청나게 깊은 도시다, 이를 태화강으로 연결해서 국제적인 관광, 인류문화와 역사를 스토리텔링하는 그런 관광지로 변모시킬 새로운 비전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거기에 태화강가에 있는 갖가지 것들, 학성공원도 동북아 최대의 국제 전쟁인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지예요. 학성공원 전투가 끝나고 가토 기요마사 일본 2대 장군이 야반도주함으로 임진왜란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동북아 정치지형을 바꾼 대사건이죠. 중국의 명~청 왕조 전환기, 일본 전국시대를 정리한 풍신수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 정권으로 250년 이렇게 정권을 바꾼, 저는 옛날부터 거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종합하는 태화강 시대, 다른 말로 국제적인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전환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10년 넘은 난제가 있는데 반구대 암각화 물 문제하고, 원전 문제, 신불산 케이블카 문제입니다. 관광이라고 했을 때 큰 그림이 태화강만이 될 순 없을 것 같은데요.


송=네. 태화강을 중심으로 한 태화강 상류의 영남알프스, 반구대 암각화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영남알프스를 소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작이나 추동은 시민의 의지가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무등산이나 태백산 국립공원 지정 과정을 보면 행정 관 주도로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고 시민 주도로 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영남알프스가 국립공원으로 가야하고 자연친화적인 관광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태화강 시대의 골자입니다. 태화강 발원지가 영남알프스 아니겠습니까. 국립공원으로 가는 게 옳다고 보고요.


반구대 암각화에 있어 물 문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울산시민에게 물 안 주면서 암각화 소중하다고 그거 지키라고 하는 것은 울산시민의 갈증, 물에 대한 본능적 요구를 너무나 무시하는 처사라고 봅니다. 울산의 수원이 될 만한 게 운문댐, 밀양댐 아직은 이야기 않지만 저기 영천댐이 있습니다. 제가 그 분야는 연구한 게 있는데 하여튼 정부에서 울산시민에게 물의 갈증을 해소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울산도 암각화를 책임질 수 없다, 이렇게 치고 나가는 게 중요하고, 통합적인 물관리 체계의 확립과도 관계가 있는데 울산시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할 책임이 국가에 있고 정부에 있고, 울산시민은 반구대 암각화를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잘 보존할 겁니다. 그냥 물은 안 주면서 반구대 암각화만 계속 보존하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생명이 저는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영남알프스도 반구대 암각화도 약간은 투쟁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구대 암각화 물 문제, 옛날 광역시 승격 문제하고 똑같습니다. 울산이 그렇게 희생했으면 정부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줘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원전 문제는 솔직히 저는 문재인 정부와 같은 생각입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5.6호기 중지하는 것은 울산시민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중지하려면 정부는 울산시민에게 울산시민의 상실감을 보충해줄 충분한 대안을 가지고 중지시켜야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원전해체센터 기술연구센터, 기타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심도시로 울산에 그만한 정부의 투자 없이 탈 원전만 이렇게 강행하는 것은 울산시민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상실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신불산 케이블카 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배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불산은 국립공원 지정이라는 더 큰 목표로 가야하는데 케이블카는 이에 부합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노약자나 교통약자를 위한 접근하는 편의를 제공하는 건 친환경적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개발을 통해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것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고 중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지방선거는 부울경이 핵심인데 문 대통령과 교감은 없습니까.


송=허허허. 뭐 하여튼 상당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제가 시민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좀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사적으로는 선거 때문에 내 가족과 너무 많은 분에게 고통과 혼란의 세월을 줘서 너무 많은 상처를 줬어요. 집에서는 제 생일을 기점으로 가족모임을 해요. 2남 2녀 결혼시키고 아이를 낳아 가족이 많은데 그 자리에서도 선거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가족들에게는 선거가 가슴에 깊은 응어리지요.


<특별취재팀>
기획, 대담=이종호 편집국장
사진, 동영상=김규란 기자
정리=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