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공관사병이라는 게 있다. 이들은 연대장급 이상의 지휘관이 거주하는 공관에 배치되어 중요한 연락이나 경호 등의 업무를 맡는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 공관사병들에 대한 군 최고위급 인사 부인의 가혹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부인은 공관사병들에게 전자 팔찌를 채워 수시로 호출하여 사적인 작업을 시키고,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말을 퍼부었으며, 휴가 나온 자기 아들의 속옷 빨래나 간식 준비 등을 시켰다 한다. 심지어 이들이 조리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얼굴에다 음식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니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공분을 살 만하다.


  문명사회에서 사적 노예와 같은 공관병 제도가 남아 있다는 점도 놀랍고, 이들에게 사적 노역을 일상적으로 시켜 온 관행도 놀랍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런 제도적 문제가 아니라 이 부인이 기자들의 취재에 대해 응답한 말이다. 이 부인은 노예 취급을 당했다는 많은 병사들의 증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나는 그 애들을 자식처럼 대했습니다.” 자식같이 대하는 게 전자 팔찌 채우고 자기 아들 속옷 빨래를 시키며 간식 준비를 시키는 것이냐고 많은 이들이 공분했지만, 어쩌랴? 분명 자식같이 대했다는데…….


  문득 십여 년 전 TV 속 한 교사의 목소리가 이 부인의 해명에 겹쳐 들려온다. 청소년 국토순례 때 몇 명의 여학생으로부터 성추행 의심 제보가 있었다. 한 교사가 여학생들의 배낭끈을 고쳐 매어 주는 척하며 몸을 더듬고 만졌다는 것이다. 그 때 그 교사도 기자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애들을 딸처럼 친근하게 대했을 뿐입니다.” 그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교사가 정말 여학생들의 몸을 더듬고 만진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너무 지나치게 반응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국어교사로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들의 말이다. 즉 공관사병을 아들같이 대했다는 대장 부인의 말과 여학생들을 딸처럼 친근하게 대했다는 그 교사의 말에 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휘관의 부인은 공관 사병들을 자식같이 대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학생을 인솔하는 교사는 여학생들을 딸처럼 대하면 안 된다. 자식과 부모, 그리고 부부는 지극히 사적인 관계로서 공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이이다. 즉 공사 구분이 어려운 사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이들은 가급적 한 부서에 두지 않는다. 나도 한때 내 딸이 다니는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지만, 수업 속에 직접 대면을 하지 않도록 했었다. 왜냐하면 교사와 학생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공적 관계로 만나야지 그 이상의 사적 관계가 되면 그 관계가 일그러지기 때문이다. 딸은 아무리 냉정하게 대하려 해도 결코 사적 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공자는 이를 가리켜 정명(正命: 이름, 즉 명분을 바로잡는 일)이라 했으며, 이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라고까지 했다. 이름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끝내는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고 했다. 학교의 언어 교육은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 언어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 즉 정명(正命)의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태도를 비정한 태도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게 받아들이려는 의식이 있다. 학부모들은 교사가 학생을 아들이나 딸처럼 여기기를 바란다. 역겨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교수가 대학원생 조교를 딸처럼 대하고 사장이 부하 직원을 아들이나 딸처럼 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순한 이름의 역겨운 관행 속에서 얼마나 많은 순결한 영혼이 짓밟히고 불합리한 갈등 속에서 절망하는가?


  우리 사회에는 사람의 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태도를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관행이 있다. 그러나 학교의 언어 교육이 가장 천착해야 할 문제는 현실 언어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언어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국어 교과서의 말을 진정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면, 현실생활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말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고 그 속의 문제점을 지적해내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에 학교의 언어 교육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학교 언어 교육은 기껏해야 바른 말 고운 말 예절바른 말 쓰기 운동 같은 유치한 영역에만 마냥 머물러 있으니 답답하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