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의 형제가 생사를 오가는 중병에 갑자기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게 되었다. 그 가족들을 만나 그 가족들의 대처 방식을 보면서 그 가족의 평소 모습이 어떤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가족은 평소에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힘든 일이 있어도 얘기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고, 그냥 일상의 이야기들만 하는 가족이었다. 그 가족의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주말부부를 하셨고 그래서인지 자녀들도 6살 터울로 형제들이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5세 이상이 되면 혼자서 자라는 아이들의 심리적인 특성과 기질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집안의 자녀들은 자신의 일을 혼자서 알아서 하는 특성들을 보였다. 하지만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기질적으로 순한 첫째는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되 혼자서 감내하고 참는 스타일, 온화한 둘째는 다른 가족들이 신경 쓰지 않게 애쓰면서 자기 가족을 알뜰히 챙기는 스타일, 기질이 강한 셋째는 자신의 기준을 고집하되 다른 가족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관대로 사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기질들 때문이었을까. 이 형제들은 가족 모임이나 서로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긴급 상황일 때만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이번에 첫째가 중병에 걸렸을 때 이들은 자신의 원가족인 부모 형제들만 모여 의논을 하고 그 의논의 결과도 배우자가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아는 지인은 결혼으로 이 가족들과 한 가족이 된 며느리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제외되는 남편 가족들의 가족문화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해도 되지 않아 그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자 나에게 이러한 상황들을 말하게 된 것이다.


내 지인은 자신의 남편과는 다른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내 지인의 부모님은 자신의 남편의 부모님처럼 주말부부를 하고 계시다. 하지만 형제들간의 모습은 달랐다. 이들 형제들은 평소에도 만남이 잦으며 서로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참견이 심하다 할 정도로 많이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부모 형제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서로가 만나 얘기를 하고 각자가 하는 일을 배분하여 자신의 역할들을 찾아서 협력해나가는 가족문화를 가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인 형제들의 배우자들도 그 일을 알고 함께 대처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 갈등은 생겼지만, 문제 상황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형제들이 함께 의논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자기 배우자의 가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지인이었기에 내 지인은 이번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친정에서 했던 것처럼 남편과 의논하여 자신이 도울 일을 찾아서 하려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그 순간 이 지인은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말할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부는 현재 자신과 남편, 아이들과의 일이 아닌 남편의 원가족의 일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하게 되었다. 분위기는 알 필요 없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남편과 분위기를 알고 함께 의논하고 협력하기 위해 의견을 말하고 제시하는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부부들이 있다면 각자 가족사와 가족의 문화 즉 가족들간의 의사소통 방식과 문제 발생 시 대처 방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한 번씩은 느끼거나 겪어보았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소 가족끼리 만남이 있을 때 부부 각자의 가족 문화를 살펴보면서, 서로의 가족 문화의 차이점을 알고 그것을 이상하게 보고 비난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주는 것이 우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분위기를 살피고, 조심스레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무엇을 하면 될 지 생각해본 후 내 생각대로만 행동하기 전에 ‘내 생각이 이러이러한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며 서로가 원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게 뭔지 알고 난 뒤 행동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부분은 내가 하기가 어렵겠다 말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글처럼 이렇게 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고 상대에게도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눈치’인 것 같다. 현재 여기 내 앞에 있는 그 사람과 지금 상황을 봐가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그것-통할 사람이면 의논하고 행동하는 것, 시도했으나 통하지 않는 사람이면 얘기를 하되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니 나와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통하지도 않고 협의도 안 될 때는 평소의 관찰을 통해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수용선을 감안하여 각자의 허용기준을 설정해 행동하는 것(이 때 상대의 허용기준이 추측되지 않으면 상대를 잘 아는 지인과 의논해 상대방의 허용기준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을 나는 눈치라고 정의한다. 


이 눈치는 주체성과도 연결이 된다. 이 눈치가 있어야 통할 것과 통하지 않을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자신이 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즉 우리가 말하는 포기해야 할 것들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눈치는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의 습관과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처 방식에서 생기는 것이며,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부모님과 형제간, 부부간, 부모-자식간, 스승과 친구, 지인, 많은 인간관계-이 다를 때는 나의 생각, 감정, 기대, 욕구가 달라야 하며, 그에 따른 대처 방식과 행동도 달라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눈치 있음’이 건강한 사람의 척도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송영주 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