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과연 건국 몇 년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다행히 대통령이 나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적통을 계승해 2019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임을 밝혔지만, 일부 보수세력들은 여전히 1948년이 건국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국이 몇 년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이런 논란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일제의 잔재는 여전히 뿌리 깊게 우리 생활 속에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울주군에 있는 읍·면사무소 회의실에 가면, 일제 강점기에 읍·면장을 지낸 사람들의 초상화가 버젓이 걸려있다. 모르긴 몰라도 일제 강점기 제일 하부기관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료들이 독립지사일리 만무하다. 어쩌면 총동원령에 의해 주민들을 수탈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에 가까울 것이다.


불과 몇 해 전 충청도의 한 지자체 읍·면사무소에 일제강점기 일본 군복을 입은 역대 읍장의 사진을 버젓이 걸어놨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일례로 옥천지역의 옥천신문이 일제강점기 이 지역에서 군수를 지낸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당시 군수가 3·1 운동을 탄압하면서 만세시위를 진압하는 자제단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데 앞장섰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대부분 군수들의 경우 항일운동가를 탄압하고, 징용이나 학병을 보내기 위한 일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부역하며 일제의 지배를 앞장서서 강화해 나갔음이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하동군수와 창녕군수를 지낸 이항년 박사는 “일제 때 고등관인 군수가 뭘 하는 자리인 줄 알고 맡았다면 모두 친일파”라면서, 스스로가 친일파였음을 밝힘과 동시에 하동을 찾아가 자신의 친일 행각을 사죄했다. 그럼에도 지금 울주군 내 각 읍·면사무소에 걸린 일제강점기 시절 단체장들의 초상화는 그들이 일제 강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를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아무런 반성도 없이 회의실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내려 보고 있는 일제 강점기 관료들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그걸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의식 또한 안타까울 뿐이다.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1919년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임을 밝힌 건,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제국주의를 피해 중국 상해에 세운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비록 군수보다 낮은 지위의 읍·면장들이라고는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읍·면장을 1대, 2대라며 초상화를 걸어놓은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를 우리 정부로 인정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제언하자면, 저기 높은 곳에 걸려 여전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일제 강점기 읍·면장들의 초상화를 내리고, 그 자리에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을 내걸어야 한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현실에서 일제의 잔재를 뿌리 뽑는 길이다.


게다가 광복 이후 읍·면장을 지낸 사람들의 사진이 일제 강점기 그들의 초상화와 같이 걸려 있다는 데 대해 그 사진 속 인물들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울 뿐이다.


광복절이 지난 지금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자꾸 떠나지 않는다. 광복절을 앞두고, 집집마다 태극기 걸기를 홍보하고, 주요 거리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KTX 울산역 앞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방에는 일제 강점기 관료들의 사진을 버젓이 걸어두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인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