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혼자만 듣지 마시고 이웃 분들에게도 꼭 좀 전해주십시오.”


일본 탈핵 운동가 칸노 치카게 씨 가족이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칸노 씨 일행은 광복절 다음날인 지난 16일 오후 경남 양산을 찾아 개운중학교 학습실에서 후쿠시마 이후의 삶을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했다.


칸노 씨는 동일본 대지진이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담담한 어조로 개운중 학부모들과 웅상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살면서 지진은 많이 겪어봤지만 그날의 지진은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막내딸이 다니던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있었을 때 지진이 발생해 딸을 끌어안고 급박하게 운동장으로 몸을 피해야 했던 기억부터 꺼냈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찬장에 있던 접시가 전부 마룻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던 것을 남편과 망연자실하게 바라봤을 때도 칸노 씨 가족은 모르고 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일본정부가 사고 직후부터 거짓말을 하며 진실을 감춰왔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동시통역을 맡은 교토지역 관계자가 서러움에 복받친 나머지 목이 메어 잠시 통역을 멈추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에 개의치 않은 청중들은 공감한다는 뜻에서 관계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장내에서 후쿠시마를 대하는 아베 정부, 세월호를 대하는 박근혜정부가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엄마, 우리 이제 이런 거 그만하자”


방사능 누출에 위험을 느낀 칸나 씨와 두 딸이 먼저 교토로 거처를 옮겼다. 매월 한 번씩 남편이 후쿠시마에서 교토로 찾아와 가족들과 재회하는 삶이 이어졌다.


“결국 애들 아빠와 딸들이 먼저 이제 이런 거 그만하자고 말했어요.”


후쿠시마 사고 이듬해 남편 세이지로 씨도 교토에 일자리를 구해 다시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이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한 가정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선택을 가족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책임은 일본정부에 있다.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이하 핵전)와 거주지 사이 거리에 따라 강제피난, 자유피난으로 구역을 나눴고 자유피난지역에서 본인의 의사로 피난을 간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피난을 안 가도 되는데 스스로 떠났으니 정부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얘기죠.”


더군다나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핵전의 방사능 누출로 인한 사망을 인정하는 데에도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칸나 씨의 주장. 심지어 후쿠시마 핵전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판마저도 최근에 처음 열렸다고 한다. 자유피난 세대, 방사능 후유증 사망자 유가족 등 후쿠시마 핵전 피해 당사자들이 이에 반발해 곳곳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와 도쿄전력의 은폐 속에 큰 진전은 없는 상황.


준비된 강연이 끝난 뒤 청중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양산은 안전할까. 울산만큼이나 신고리 핵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들은 이제 어찌해야 하나? 개운중 학부모 중심으로 모인 웅상 주민들은 이 고민거리를 교토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나눴다. 주민의 물음 중에 칸나 씨가 가장 고심해서 답한 대목은 ‘당신이 지금 우리라면 양산을 떠날 건가?’라는 것.


“자녀분들이 지금 몇 살이시죠?”


“중학교 2학년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칸나 씨는 용기를 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강의 잘 들으시고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든 떠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준비하고 알아보십시오.”


이번 특강은 개운중학교 교사들이 교류활동 차 방문한 교토에서 칸나 씨 가족을 만나 친분을 쌓은 뒤 한국 답방 및 강연을 요청하여 이뤄졌다. ‘건달할배’ 채현국 이사장은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자리하지 못했지만 “광복절이 일본에서는 패전일인데 이날 역사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찾아와주심에 감사드린다.”는 축전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날 강연 내용 대부분은 2016년 칸나 치카게 씨 강연 ‘후쿠시마 이후의 삶’과 겹칩니다. 열람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생명운동아카이브에서. mosim.or.kr/bbs/sub3_2/59637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