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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박희순이 등장한다. 연기자가 감독이 차릴 밥상의 주재료라면 나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화려하다. 연기력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화제를 이끌 만한 배우들이다. 거기에 스타일이 강한 감독이 연출을 했다. 지금도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 잊을 만하면 방영하는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이다.


박훈정은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이름을 얻었다. <부당거래>(2010)와 <악마를 보았다>(2010)에 그가 던진 이야기의 힘이 있었다. 반대로 같은 해 데뷔한 연출작 <혈투>(2010)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성공한 감독으로 이끈 것은 2012년 <신세계>. 어두운 세계를 그려낸 느와르 영화로 500만 관객을 이끌었다. 하지만 뒤이었던 <대호>(2015)에서 꺾인 후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느와르를 가져왔다.


이야기 구상은 괜찮다. 국가가 적극 관여한 ‘기획귀순자’ 김광일(이종석)을 앞세웠다. 미국과 한국의 첩보기관 CIA와 국정원의 작품이다 그런데 그가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다. 그의 범죄를 감추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북에서 내려와 복수하려는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범죄를 파헤치는 열혈 경찰 채이도(김명민) 이렇게 네 명이 얽힌다.


전개되는 판은 확실히 키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조직폭력배에서 국가기관으로 확장했으니 그렇다. 하지만 추리와 추적 그리고 검거라는 구성을 배제했다. 기존의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지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을 드러났고 이를 둘러싼 상황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프롤로그, 용의자, 공방, 북에서 온 귀빈 VIP,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다섯 가지 챕터는 과거와 조금 더 오래된 과거를 오가며 부조리하고 답답한 길을 걷는다. 


문제는 이야기의 무게와 깊숙한 내면의 힘이 모두 없다는 것이다. 낭자한 피와 가학적인 살인의 현장은 논란을 낳을 만큼 마음껏 우려냈다. 하지만 영화라는 밥상의 메인 재료가 될 배우들은 살려내지 못했다. 중심인물들이 모두 분명한 목표가 있고 이를 관철해가는 갈등이 부딪히며 상승효과를 내야 하는데 뒤로 갈수록 툭툭 끊어진다. 이야기는 불편함만 준다. 결국 감동까진 아니어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마저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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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장점을 꼽아본다면 시니컬한 유머와 끝까지 유지한 비장한 흐름 정도. 에필로그는 과감한 편집이 속도감을 냈다고 말하기엔 몰입의 순간도 함께 방해했다. 더구나 대사는 많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없다.


기대를 빼고 거품을 빼고 본다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만큼 화려하게 차린 밥상은 그 이상의 맛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감독 자신이 만들었던 <신세계>의 벽은 높았다. 더 잔인한 범죄는 보여주고 잔뜩 어두워진 것을 진일보라고 말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결과다.


배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