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니 얘기를 해보고 싶다. 어머니는 1924년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고 몹시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김해 강창마을이라는 전형적인 농촌에서 태어나 시집 갈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외할머니께서 완고한 남녀 차별 의식을 가졌고 그것은 당시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위로 오빠 한 분은 일제시대지만 중학교까지는 졸업했던 모양이고, 맏딸인 어머니는 “여자가 배워서 뭐 해!”라는 말을 들으며 어릴 때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동생들 업어 키우고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것처럼 동네에 야학이 열렸던 모양이다. 10살 남짓 된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업고 글자를 배우러 야학에 갔는데, 외할머니한테 된통 야단 맞고 끌려 나오고는 결국 글자를 깨치지 못했고, 그래서 평생 외할머니를 원망했다.


밑에 여동생은 그나마 소학교를 다녔고, 그 밑에 남동생은 대학을 그것도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개업하고 평생을 부자로 살았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한탄을 자주 들었다. 내가 공부만 좀 했더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건데...내가 글자만 알았더라도 네 아버지하고는 살지 않았을 거야...


어머니의 한탄 덕분인지 나는 가난 때문에 재능을 살리지 못하는 사회를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는 삶의 목표가 생겼고, 양성 평등에 대해 일찍부터 민감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런데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2017년은 어떨까? 학교에서 사회 수업을 하다가 양성 평등 이야기로 나아가면 남학생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예를 들면, ‘군가산점 인정 문제’로 토론을 해 보면 남학생반에서는 핏대를 세운다. 군대 갔다 온 만큼 인정을 해 주어야 하고, 이걸 인정해 주지 않을 거면 여자들도 군대 가야 한다고 거품을 문다. 완벽한 의견 일치이다.


내가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며 여자는 군대 가기에는 신체가 약하고, 또한 임신해 있는 기간도 길고 육아도 많이 담당하고 집안일도 여자들이 훨씬 많이 하지 않느냐며 여자들도 사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 남학생들은 “남자가 임신할게요. 육아도 남자가 할게요. 대신 여자들이 군대 가야 돼요.”라고 감정적으로 대응을 한다.


또 내가 학교를 보면 여자 교장 선생님은 거의 없지, 또 국회의원에도 여자가 거의 없지. 이런 거 보면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 차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면, 대뜸 “여성가족부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해체해야 돼요.”라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지금은 양성의 역할이 뒤섞이고 조정되는 혼란기인 듯하다. 남학생들은 뭔가 여학생들한테 밀리면서 많은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당장 학교에서 시험 점수에서 밀리고 입시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좁은 시각에서 우리나라가 여성 천하가 아니냐는 착각을 하는 듯하다.


가정에서부터 양성을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올발라야 한다. 그래야 학교 와서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양성이 평등하고 상호 보완적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교육을 구체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한 쪽 성으로 지나치게 편중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할당제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어디든 양성이 협력해야만 일들이 잘 진행된다는 구체적인 경험을 많이 쌓도록 해야 극단적인 여성혐오, 남성혐오가 사라질 것이다.


천창수 화암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