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어지는 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내 앞으로 걸어온다. 두근거림과 떨림, 설레는 싱싱한 호르몬이 두 사람의 손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한 송이 청춘의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머리를 맞대고 무어라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알싸한 향기가 묻어난다. 그 향기가 푸른 잎사귀로 전이 되며 푸른 길들이 펼쳐진다. 나도 싱그러워진다. 두 사람이 잡은 손향기에 취해 내 걸음이 느려진다.


 “손을 잡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엄마와 아기가 꼭 잡은 손은 원초적인 사랑이 담겨있다. 두 몸에서 자라고 있는 본능적인 따스함은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잡은 손은 부모와 자식 사이를 뛰어넘는 한 몸이었을 때를 기억할 것이다. 엄마는 꼭 잡은 말랑한 촉감으로 태동의 전율을 작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아기는 마치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탯줄이 끊어지던 그 순간을 기억하듯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는다. 두 사람의 사랑이 형태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별을 앞에 놓아두고 연인이 잡은 손은 만감이 교차하는 손이다.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서려 있기도 하고, 진심으로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숨어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그동안 너를 사랑해서 즐거웠노라는 그리움의 손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는지 또는 어쩌다가 변심을 했는지 라는 애증의 손이 되기도 한다. 함께 지낸 시간들에 대한 미련이 잠시 손바닥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부부가 잡은 손은 고무줄 같은 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다가 한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가장 밀착되는 손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위안될 때 가장 가깝다. 불확실한 인생의 동반자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격려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는 원수 같은 손이 된다. 그럴 때 두 사람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손이 되기도 하지만 수많은 갈등과 고비를 함께 넘기면서 부부의 정이 더욱 돈독해질 때 세상에서 가장 밀착된 손이 된다.


 병실에서 마지막 잡은 손은 슬프면서도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점차적으로 식어가는 손과 식어가는 손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또 다른 손. 한세월 걸었던 수많은 길들이 온기가 차단된 차가운 손에서 흩어지고 사라진다. 그렇게 한 생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승과 저승으로 분리될 때 사랑했던 사람들은 잡았던 손을 차마 놓지 못해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잡는 손 중에 뭐니 뭐니 해도 백미는 석양을 바라보는 노부부가 잡는 손이다. 깊은 주름 위로 노을이 물들면 세월의 흔적마저 영롱해진다. 우리는 타자와 손을 잡는 순간 사랑이 흐르고 행복을 느끼며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물론 잡는 손 중에서 더러 슬프고 더러 안타깝기까지 한다. 고달픈 인생에 지쳐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없이 잡아주는 손은 또 얼마나 따스한 것인지, 인생은 그 얼마나 살맛나고 풍요로워지는지. 가끔 나도 그 누군가가 되어 타인의 손을 잡아준 것이 과연 몇 번이나 되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푸르른 날이다.


조숙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