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지붕들 사이로 좁다란 가로등/ 그 하늘 아래로 사람들 물결/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별이 별하나/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이...


얼마전 고대하고 고대하던 조동진(포크송의 ‘대부’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더라) 콘서트를 예매하고 좋다좋다했는데...오늘은 갑작스레 비보를 맞았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하고 있었는데...아쉬움과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그의 계절에 그는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노래가 있을소냐만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송은 민중의식과 함께 성장한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본디 미국에서 출발한 포크송은 상업주의와 비판적 사회의식이 투영된데 반해, 우리나라는 상업적음반도, 방송활동도 거부하지 않을뿐더러 사회비판의식도 강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포크송’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70~80년대 초기 민중운동은 조직된 학생들이 중심이었고 이들 학생 사이에서 유행한 어쿠스틱 기타와 노래는 민중운동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오늘의 시민운동은 그 주체가 일부 특정집단의 특정계층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시민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민중가요랄 것이 모호해졌다. 대중은 스스로 저마다의 목소리로 자신을 노래한다. 그것은 특정한 형식으로 모아지거나 구분할 수 없다. 오히려 통일된 언어로 노래하는 것이 구시대의 촌스러움으로 인식되어질 정도다.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에서 한 노래한다던 나는 “아침이슬”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선생님들은 수업이 지루할 때면 꼭 한사람씩 불러 세워 노래를 시키곤했다. 수업이 끝나자 한 친구가 다가와 하는 말, “그 노래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당시 그 친구는 소위 운동권 대학생 오빠가 둘 있던 친구로 주로 ‘노찾사’ 노래를 듣던 아이였다. 왜 그땐 물어보지 못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지금도 가끔 사회운동을 직업으로(혹은 서브직업으로) 자처하는 친구들은 만난다. 소위 “투쟁”이란 언어 아래 하나됨을 강조하는데....그 투쟁 안으로 선뜻 들어가기 쉽지 않다. “요즘 누가 집회라고 해! 촌스럽게~ ㅋ 캠페인 모리나? 캠페인” 그의 장난끼 섞인 말엔 뭔가 오랜 고민이 녹아 있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은유라는 표현법이 있어서이다. 구호가 하나라고 노래가 하나란 법은 없다. 처음으로 치자면 포크송은 “민요”이고, 이 민요는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의 노래였다. 민중운동에 대한 역사의식을 토대로 한 가치 부여에 이견이 없지만, 노래하는 법이 다르다고 너는 민중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에 테두리를 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민중가요는 시간을 통과하며 그 해석과 범위가 달라지고 있다.   


윤지현 전문 기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