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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2009년 울산 신청사 입주를 기념한 '금송'이고 오른 쪽은 400년만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울산동백(오색팔중)'이다. > 



퇴계(이황)선생을 모신 안동 도산서원에는 좀 생뚱한 나무가 심겨져 있다.
이른 바 세계적 3대 조경수 중 하나인 금송이다. 이 나무는 원래 1909년 청와대 자리, 그 전신인 조선총독부 자리에 심었던 금송 3그루 중 한 그루였다.


1970년 12월 8일 박정희 전대통령은 도산서원 성역화사업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 마당에 있던 금송 한 그루를 이곳에 옮겨 심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금송은 2년만인 1972년 고사했다. 안동군은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몰래 새 금송을 심은 뒤, 박대통령이 심은 나무라고 40년 동안 그 사실을 숨겨왔다. 진실규명을 요청한 혜문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국장)노력으로, 현재 금송은 안동군이 당시 거금 예산 오십 만원을 들여 1973년에 새로 심은 나무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이 남긴 기념수는 그 권력자와 같은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금송이 비록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아우리카리아(호주 삼나무)와 함께 3대 조경수로 불리지만, 일본 원산이고 황실에 즐겨 심어서 천황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와 역사관계로 볼 때, 조선총독부로 인연이 맺어진 나무를 조선성리학의 최고봉인 도산서원에 심은 것은 우리 전통사상이 일본정신을 본받기를 원하는 듯한 묘한 상징이 된다.


요즘 시청마당은 어수선하다. 증축공사를 한다고 울타리가 쳐져 있어 답답하기도 하고 노동자가 옥상농성을 하고 입구에는 천막농성 중이다. 들어가는 입구 중앙통로에 화분을 연달아 놓아 숨이 턱 막힌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공사를 이유로 잘 자라던 울산동백(오색팔중)을 옮겼다는 소식에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울산왜성이 있었던 근방에서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채집한 희귀한 동백종이 일본 어느 절에 심겨져 있었는데 힘겨운 노력 끝에 400여년 만에 다시 가져와 심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옮겨진 동백은 다행히 생육에는 큰 문제가 없는 모습이었다. 새순이 돋아났고 위쪽에는 열매도 군데군데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옮긴 위치가 주는 공간감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다시 옮기려는 계획으로 가식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나 저러나 역사성 넘치는 그 귀한 나무를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그 옆에 2009년 울산시 신청사 개청 기념식수를 한 ‘금송’이 심겨져 있었다.


나무라는 것이 정치나 이념도 없는 자연스런 존재이지만 나무에 담긴 상징성을 알고 나면 공공시설이 기념식수 나무를 정할 때는 좀 더 신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한 발 물러서서  기념식수한 나무는 일단 심어지면 당연히 역사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 금송마저도 가지가 꺾어지고 생육상태가 나빠서 참 보잘 것 없었다.


올 해 울산방문의 해를 두고 일본관광객을 생각한다면 아픈 상처더라도 역사적인 인연이 있으니 나쁠 것이야 없다. 청사 마당에 금송을 기념으로 심은 것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건강하게는 자라고 있으면 어떨까하는 바람이다. 해석은 결국 우리와 후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청 마당에는 칠엽수(마로니에)가 여러 그루 무성히 자라고 있다. 간혹 3대 조경수에 칠엽수를 넣을 정도로 인기있는 나무다. 우리에겐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라는 가사로 익숙하고 정서적으로 친근한 나무다. 넓은 잎도 싱그럽고 세력도 아주 좋은 나무라 많이 심고 있다. 하지만 울산동백과 금송 곁 좋은 위치에, 세력 좋게 자라는 큰 나무 한그루는 마로니에(가시칠엽수, 서양칠엽수)가 아닌 일본 특산식물인 ‘(일본)칠엽수’다.


서울 동숭동 거리에 심어진 ‘마로니에’도 사실은 프랑스 마로니에 공원에 심겨진 서양칠엽수가 아닌 (일본)칠엽수라는 것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일제 경성제국대학이 원래 동숭동에 있었으니......
시청 앞마당을 둘러보니 왠지 더 어수선하고 답답해진다. 그냥 나무는 나무일뿐인가?


아니면 ‘울산동백’이나 ‘금송’처럼 업적 자랑하기 유효기간이 다 지나서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일까? 그냥 애꿎은 나무들만 수난이다.
옥상에 있는 노동자들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인가?


이동고 자연생태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