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속도위반을 제대로 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속버스를 타고 먼 곳을 다녀왔다는 얘기다. 속도를 위반했다고, 굳이 ‘제대로’라는 부사를 써서 표현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에 잠시, 내가 위반한 것이 속도일까, 아니면 속력일까?


한번 헛갈린 것은 늘 헛갈린다. 속도와 속력도 그렇다. 두 낱말의 차이를 머릿속에 두었다가도 곧잘 두 낱말을 혼동해서 쓰기 일쑤다. 속도위반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속력위반이라 쓰지 않으니 위반할 때 쓰는 낱말은 속도가 맞을까?


국어사전을 펼쳐 풀이말을 읽는다. 속도라는 뜻은 두 가지이다. 속도(速度)와 속도(屬島). 첫 번째 속도(速度)는 명사로 빠른 정도. 빠르기를 뜻한다. 활용으로 자동차의 경제속도/ 교정 속도를 빨리하다 따위로 쓰인단다. 물리학에서 운동 물체가 단위 시간에 이동하는 거리를 뜻하고 음악 분야에서는 악곡을 연주하는 빠르기라는 풀이말이 눈에 띈다. 두 번째 속도(屬島) 역시 명사. 육지나 큰 섬에 딸린 섬이나 그 나라에 속하는 섬이라는 뜻이다. 알던 말을 사전에서 찾거나 검색하면 꼭 동음이의어가 나오는데 어떨 때는 다른 뜻을 살피는 게 재밌기도 하고 유용하기도 하다. 속력(速力) 역시 명사로 속도의 크기. 빠르기. 활용 예는 속력을 늦추다/ 최대 속력을 내다는 뜻이란다. 뜻풀이가 조금 어이가 없다. 속도를 모르면 속력은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설명이다. 사전을 찾아 풀이말을 읽어도 속 시원하지 않은 경우를 또 만났다. 어쨌든 내가 위반한 것이 속도이든 속력이든 빠르기와 크기를 거스른 것임이 틀림없으니 ‘위반’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일이니 이쯤에서 이야기나 계속해보겠다.


버스나 택시를 타는 일은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다지 두려운 일은 아니다. 또한, 우스갯소리처럼 나는 버스를 타고 걷는 BMW 족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가끔 난폭운전을 하는 이들이 섞였을지라도 대부분 시속 60㎞ 이하인 주행도로이다 보니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


그러나 일상의 속력을 벗어나는 일은, 특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내게 어떤 공포다. 언제나 그렇다. 멀면 멀수록,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증세는 심하다. 요즘같이 자동차가 온 세계를 누비고 자동차가 필수인 세상에 웃을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진짜다. 주변에 주말마다 혹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는 내가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믿을만한 운전자가 핸들을 잡았더라도 어김없이 두렵고 무섭다. 특히 옆 차 혹은 주변의 차가 달리는 속도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고속도로는 더 그렇다.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아니 일정이 나오고 떠나기까지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교통사고 혹은 더한 불상사를 상상하면서 무슨 핑계를 대고 가지 말까를 궁리하다가 아침이 되고, 떠날 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고속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떠난다. 눈길 줄 새도 없이 쌩쌩 지나가는 차들, 화물차들, 고속버스들을 보노라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금세 옆 차가 내 옆구리를 받을 것만 같아 소름이 돋기도 한다. 슬며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남편에게 속력을 줄이라고 지청구를 날리느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잠을 청하지 않는다. 구경 가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 내가 긴 자동차 여행을 별로 하지 않는 까닭은 순전히 속도위반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 택시를 타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오는 길,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기사는 곧바로 안전띠를 매라는 당부의 말을 마치고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타인의 속도에 맞춰 내 몸을 맡길 차례, 차를 탄 모든 이가 일상의 속도, 인간의 속도를 벗어나 달린다. 휴게소에 차가 멈출 때까지 우리가 속도를 몇 번이나 위반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휴게소에서 허리를 펴는 일이 힘든 걸 보니 꽤 여러 번이라 짐작할 뿐이다. 휴게소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은 풋잠의 기운이 덕지덕지하다.


다시 도로, 차 안도 밖도 온통 어둠이다.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차창을 사선으로 미끄러진다. 풋잠의 틈을 타고 상념이 자리 잡는다. 왜 나는 일상의 속도를 벗어나 빨리 달리는 일을 두려워하는가, 정말로 이유가 뭘까? 빗줄기와 어둠을 타고 이리저리 헤매던 생각이 문득 한 곳에서 딱 멈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 소멸!!


아!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 소멸이었구나. 빠른 속력을 거부한(?) 일이 다름 아닌 살고 싶다는, 죽기 싫다는, 오래 살고 싶은 집착을 버리지 못한 일이었구나. 평소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냉소적으로 삶을 바라봤던 나는 그만큼 비겁했구나. 중앙이 아닌 빈 곳을 찾아 헤맸구나. 소멸을 두려워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구나.


속도를 위반하는 일은 어쩌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버스는 경주를 지나고 언양을 거쳐 신복에 이르러도 속력을 늦추지 않는다. 하지만 더는 내게 버스의 빠르기는 두렵지 않다. 웅크린 어깨를 펴고 출렁이는 속도를, 속력을 느낀다. 속도위반의 공포가 사라진 버스를 뒤로하고 땅에 인간의 속도를 되찾는다.


다음엔 어디를 갈까나? 속도위반이 기다려지는 초가을, 그윽한 밤이다.


박기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