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03


김영하가 쓴 소설은 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구타유발자>(2006), <용의자>(2013)를 만든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인기 소설을 가져와 알맹이엔 큰 변주를 줬다.


병수(설경구)는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딸 은희(설현)와 함께 살아간다. 그의 과거는 연쇄살인범. 죽어 마땅한 악인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단했던 시절이 있다. 17년 전 자동차 사고 후 살인을 멈추고 살인욕구를 억누르며 살았다. 하지만 사고의 후유증이 뒤늦게 알츠하이머병 판정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기억부터 먼 기억까지 모든 게 사라져 가게 될 처지에 우연히 태주(김남길)의 차와 접촉사고가 난다. 그의 직업은 경찰, 하지만 본능적으로 살인범임을 직감한다. 더구나 그의 애인이 자신의 딸이다. 전직 연쇄살인범 병수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태주를 막아야 한다. 기억이 그나마 남아있을 때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원작의 주인공은 달랐다. 쾌감을 위해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태주처럼 나름의 정의를 행한다는 명분이 아니었다. 감독은 영화 속 전직 연쇄살인범에 좀 더 애정을 주기 바란 것이다. 딸도 다르다. 소설에는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었던 딸이 아빠와 함께 살며 적극 간호를 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딸을 지키려는 이유가 더 확실해졌다. 직접 볼 관객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을 걷어내지만 결말도 다르다.


살인자01


원작보다는 보는 이들이 주인공의 감정에 더 이입되는 것은 장점이다. 기억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살인자의 모습에 ‘아버지’를 잘 덧씌웠다. 다만 후반부 반전과 결말로 가는 과정이 소설보다 훨씬 힘 빠진다는 게 아쉽다. 설경구는 놀라운 정도로 잘 어울린다. 속내를 철저히 감춘 채 위협하는 살인마 태주를 연기한 김남길도 준수하다. 설현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틀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큰 기대가 없는 만큼 큰 실망도 없는 캐스팅이다.


감독의 연출력은 평균 이상이다. 어려운 소재와 주제를 잘 변주해 이야기를 짜낸 셈이다. 현실과 망상 그리고 불확실한 기억과 사실의 부정 등 만만치 않은 무게가 느껴진다. 특히 긴장감이 감도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 드러나는 블랙 코미디는 원 감독만의 필살기다.


살인자02


단지 원작과 다르게 설정을 잡아서 출발했지만 전달한 메시지를 너무 생각한 탓에 후반부 장르의 쾌감이 덜해졌다. 추리, 서스펜스 그리고 스릴을 전달하는 데 있어 반전의 충격을 크게 주려 애쓴 것은 보이는데 원작의 한방과 비교되는 결말이다. 그럼에도 흥행 출발은 무난해 보인다. 대작들이 접었거나 힘 빠진 순간에 딱 알맞게 걸린 운도 한몫했다.


배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