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들


                                   송  찬  호



돼지 운반 차량이 전복되고
간신히 살아남은 붉은 돼지들이
가까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지친 네 다리로 땅만 보고 걷는
그들의 걸음걸이는 한결같았다
그들은 그들 무리를 표시하는
어떤 나뭇가지도
입에 물고 있지 않았다

언덕에는 지난 여름 지독한 피부병을 앓은
버짐나무 몇 그루 서 있었고
약수터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오래전 이 길을 지나간 어떤 종교의 이동 경로와 흡사했다
따라서 다치고 지친 그들 몸이 쉬어가기에
언덕은 이미 지나치게 통속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붉은 돼지들이었다
환란이 닥쳐오면 그들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후각으로 흙을 헤쳐
붉은 돼지씨를 심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난 다섯 달 동안 쉼 없이 살을 찌웠고
만족할 만한 무게로 계체량을 통과했다
돼지 운반 차량은 그들을 싣고
저녁별 돋는 초승달 도축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언덕을 오르며 돌부리를 디딜 때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그들의 발굽에서
오래 걷는 자들의 나막신 소리가 났다

벌써 저녁이 오고 있었다
초승달 도축장이 멀리 보였다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며 어떤 돼지들은 울고
또 어떤 돼지들은 웃고 노래했다

그들은 붉은 돼지들이었다
‘환란이 닥쳐오면
본래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그 말을
몸으로 살찌워 운반하는 붉은 돼지들이었다


삶을 적시(摘示)하는 묵시록 같은 시다. 시 자체로 온전한 시이므로 몇 마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차라리 두려울 시다. ‘오래 전 이 길을 지나간 어떤 종교의 이동 경로’라든지, ‘오래 걷는 자들의 나막신 소리’라든지, ‘초승달 도축장’이라든지 이런 시행들이 현실의 전복과 환란이 닥쳐오는 운명들에 대해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위로를 던지는 듯하다. 그들은 붉은 돼지들이었다. 몸을 살찌워 운반하는 붉은 돼지들이었다. 시인이 말하는 그들은 ‘불로서 폭발하고 흙으로서 증식하는’ 붉은 돼지들이었다. ‘초승달 도축장이 멀리 보였다’, 아름답다.


강현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