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전기에는 귀족들의 철학인 ‘이일원론’은 인류가 이룩한 정신적 창조물 가운데 완벽하고 고결하고 또한 난해하기가 으뜸이어서 두고두고 숭앙된다. 그러면서 최대의 장점이 또한 최대의 단점이다. 삶의 현실을 배제하고 이상을 그리기만 해서 설득력이 부족하고 효력이 의심된다.


현실을, 현실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다시 말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말해야 한다. 이런 요구가 강력하게 대두해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이상주의이기도 하고 현실주의이기도 한 ‘중세후기의 이원론’을 이룩해야 한다.
그 과업을 힌두교문명권의 라마누자(Ramanuja, 1017~137), 이슬람문명권의 가잘리(Muhammed al-Ghazali, 1058~111), 유교문명권의 주희(朱熹, 1130~200, 기독교문명권의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맡았다.


주희(朱熹)가 이(理)만 소중하지 않고 기(氣) 또한 소중하며, 이와 기는 하나이면서 둘이어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지만 서로 구별된다고 한 것이 다른 세 사람도 함께 지닌 생각이다. 그런 특징을 가진 ‘이기이원론’이 ‘중세후기사상’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 네 사람의 사상은 이와 기가 둘 다 소중하고, 그 둘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지만, ‘이’가 ‘기’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는 ‘이기이원론’이다. 누구든지 자기 삶을 이룩하면서 진리 탐구를 할 수 있지만, 삶의 실상 자체가 진리는 아니고, ‘삶의 실상을 넘어서서 고차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외면의 얽힘과는 다른 내면의 평온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철학에서 찾는 동력>, 조동일


주자의 사상은 중세후기의 모범답안이 되었다. 모범답안으로 인정되면서 창조적인 노력의 의의는 줄어들고 사고를 공식화하고 사회를 규제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혁신이 보수로 바뀌고 추종자나 맹신자들이 생겨나 긍정적인 의의는 없애고, 사상을 규격.교리.절대화했다.


이황은 오로지 주자를 신봉하고 주자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이 편지에서 누누이 밝혔다. 이황은 중세후기철학의 모법답안에 갇혀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중세’로 역행시키고, ‘근대화’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사용된 철학의 맹주가 되어 사고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 철학의 현실이다.


비이기위일물변증(非理氣爲一物辯證)(5)
이기철학 입문(7)


然竊見朱子謂叔文說(연절견,주자위숙문설)하니 : 주자가 숙문에게 한 말씀을 그윽이 살펴보니
精而又精(정이우정)하여 : “정밀하고 또 정밀하여
不可名狀(불가명상)을 : 가히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을
所以不得已而强名之曰太極(소이부득이이강명지왈태극)이요 :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태극’이라 하고
又曰(우왈) : 또 말하기를
氣愈精而理存焉(기유정이리존언)은 : 기운이 더욱 정밀하여 여기에 이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皆是指氣爲性之誤(개시지기위성지오) : 이런 것은 모두 기(氣)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오류이다.” 하니
愚謂此非爲叔文說(우위차비위숙문설)이요 : 어리석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숙문을 위해 하는 설명이 아니라
正是爲花潭說也(정시위화담설야)라 : 바로 이것은 화담을 위해 설명하는 것 같다.
又謂叔文若未會得(우위숙문약미회득)이면 : 주자가 또 말하기를 “숙문이 만약 이런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且虛心平看(차허심평간)하여 : 또 마음을 비우고 공평하게 보면서
未要硬便主張(미요경편주장)이요 : 강경하게 편중된 주장을 할 필요는 없고
久之自有見處(구지자유견처)하니 : 오래되면 자연히 보이는 자리가 있을 것이니
不費許多閒說話也(불비허다한설화야)라 : 허다한 쓸모없는 이야기로 귀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如或未然(여혹미연)이면 : 만일 혹시 그렇지 않으면
且放下此一說(차방하차일설)하고 : 또 이 일설을 내려놓고
別看他處(별간타처)하면 : 따로 다른 곳을 보면
道理尙多(도리상다)하여 : 도리가 아직 많아
或恐別因一事(혹공별인일사)하여 : 혹시 다른 한 가지 일로 인하여
透著此理亦不可知(투저차리역불가지)를 : 이 이치를 투철하게 알게 될지도 모르므로
不必守此膠漆之盆(불필수차교칠지분) : 굳이 이 아교 덩어리를 지켜서
枉費心力也(왕비심력야)라 : 마음과 힘을 공연히 허비할 것이 없다.” 하였다.
愚又謂此亦非爲叔文說(우우위차역비위숙문설)이요 : 어리석은 내가 또 생각하기에 이것은 숙문을 위한 설명이 아니라,
恰似爲蓮老針破頂門上一穴也(흡사위련로침파정문상일혈야)라 : 화담(연로)을 위해 정수리 위의 한 혈에 침을 놓는 것 같이 보인다.
且羅整菴於此學(차라정암어차학)에 : 또 나정암이 이 이기(理氣) 학설에 대하여
非無一斑之窺(비무일반지규)하나 : 한 점 엿본 것이 없지는 않으나
而誤入處正在於理氣非二之說(이오입처정재어리기비이지설)이니 : 잘못 들어간 곳이 ‘이와 기가 두 물건이 아니라’는 설이니
後之學者(후지학자)가 : 후대의 학자가
又豈可踵謬襲誤(우기가종류습오)하여 : 또 어찌 가히 오류를 계승하고 답습하여  (*踵 계승할 종, 襲 계승할 습)
相率而入於迷昧之域耶(상솔이입어미매지역야)리오 : 서로 이끌어 미혹되고 어리석은 지경에 들어가게 하겠는가.(끝)


백태명 학음모임 강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