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는 일이 그러하듯이 개와 함께하는 삶에도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물들과 함께하는 삶에는 공감보다는 귀찮고 불편하고 돌봐줘야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 뿐이다. 돌보는 과정에서도 물질적이고 시간적인 비용을 수월찮게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많은 이유 중 한 가지는 탓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는, 더욱이 그 결과가 부정적인 경우라면 더욱 더 결과의 원인에 집착을 하게 된다. 인간의 문화는 관습이 된 것들로 이루어 졌다. 원인과 결과를 밝혀야만 하는 습관이 퇴적층처럼 쌓이고 굳어지는 과정에서 과학문명이 이루어졌다. 인과론의 집착으로 수확된 현대의 과학문명은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지만, 현대인의 심성에 분별과 집착이라는 개성을 삶의 본질처럼 현대인의 영혼에 심어놓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언제나 결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못된 결과에 대한 원인을 언제나 외부에만 두려고 한다. 그렇기에 남을 탓하면서 남을 원망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남을 탓하려는 원망이라는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내 탓이 아니기 때문에 화를 내면서 불행해지고, 남을 미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돌보는 반려동물에게서 자기 불행의 원인을 찾거나 탓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밥을 주고 키우는 개가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더라도 수습이 가능한 선에서는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는 하겠지만, 금방 잊어 버려야 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 감정을 교환하면서도 지배가 가능한 돌봄, 즉 반려견과의 시혜적인 관계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는 것이다.


요즘 명촌 진장동 주변을 돌아다니는 개들을 보면 몽구를 닮은 개들이 억수로 많다. 진천 처가에 가도 몽구를 닮은 개들이 부쩍 눈에 띈다. 몽구가 장가를 가지 못 할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암컷의 주인이 개 청혼을 해오면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며 몽구의 교미를 도왔다. 그런 나의 행동이 수컷들이 가진 콤플렉스 때문에 생겨난 행동이었는지, 암컷에 대한 수컷의 끝없는 구애의 본성이 작동되어 동조한 것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붙여준 몽구의 암캐들은 전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거기에다 내가 모르는 몽구의 암컷들은 또 얼마나 많을런지?’ 몽구를 닮은 개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자연스러움을 삶의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내가 몽구에 대해서는 인위적으로 지나친 편의를 제공한 결과를 목격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개들의 유전학적인 질서에 관여한 결과가 개들의 보존과 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길 바랄 뿐이다.


(주의) 아래의 글은 몽구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꾸었던 꿈의 줄거리다. 단지 꿈 이야기로 읽어 주기를 바란다. 동명의 회장님을 비하 하거나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손톱만큼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은 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몽구 첫 편이 연재되던 날 몇 건의 항의 문자와 카톡을 받았다. “30년간 회장님의 회사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교육시키며 가정을 지켜왔는데, 그런 분의 이름을 개와 비교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어떤 분은 “자동차 앞에서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고 항의를 했다. 결국 밴드에 올렸던 15군데의 글을 지워야 했다. 그 분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었고, 그런(내가 쓴 글을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하는) 분들과 논쟁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발 빠르게 원인을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신문에 연재된 글을 읽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몽구야!
우리가 사는 동네가 갑질하는 회장님들 때문에 시끄럽단다. 하는 일은 너와 비슷한데, 행실은 완전히 개와는 다른 사람들이란다. 몽구는 열심히 일하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집과 재산을 지켜주는 수고를 하는 대가로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으로 살아가는 한낱 반려동물이지만, 회장님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회사로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서 번 엄청 많은 돈으로 만든 명예와 권력으로 글로벌 경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란다. 몽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몽구가 나쁜 개 행세를 하게 되면 밥도 안주고 혼을 내면서 너를 맘대로 처벌할 수 있는 너의 주인인 나와 같이, 그 사람은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러 개의 주인 같은 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몽구야! 내가 니가 맘에 안 든다고 너를 쫓아내면 나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단다. 그것이 싫으면 나는 아무도 모르게 너를 해치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힘들고 괴롭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 한단다.


그런데 회장님들은 법으로 인정한 자기 회사 직원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내쫓아 버렸단다. 그래서 처지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서 해고시킨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법을 지키라고 농성을 하고 있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차들이 달리는 교각 위에 올라가서 수 개월이 넘도록 법을 지키라고,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폭염 속에서 목숨을 걸고 절규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단다.


몽구야! 나는 회장님처럼 많은 직원과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회사를 가져보지 않아서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하기가 어렵단다. 하지만 개인 너도 너를 먹여주고 살 집을 제공해 주는 나를 배신을 못 하듯이, 열심히 노동을 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착하고 훌륭한 노동자들이 너보다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단다.


몽구야! 문득 어젯밤 꿈이 생각난다. 평소처럼 너를 차에 태워놓았다가 퇴근을 하려고 차문을 여는데, 갑자기 몽구 니가 차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어디론가 막 달려가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너를 불렀는데도 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어. 나는 시동을 켜고는 너를 쫓아갔는데, 몽구가 달려간 곳은 회장님 회사 정문 옆에 있는 철탑이었어. 그때 몽구를 발견한 철탑 아래 모여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우왕좌왕하고 그 사이로 몽구는 철탑 위로 뛰듯이 기어 올라가는 거야.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사람들은, “저 개새끼 잡아라”라고 소리치며 들고 있던 깃발과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던지며 일대 소란이 벌어진 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소리를 지르는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마음에서만 맴도는 거야. “그 몽구는 그 몽구가 아니고 우리 몽구라고...”


철탑 위엔 지친 두 청년과 그리고 덩치가 크고 괴물같이 생긴 회장과 몽구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가 있는 거였어. 나는 철탑에서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잔뜩 겁을 먹고 움츠리고 있는데, 몽구는 청년들의 손과 몸을 핥아주는 거야.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말이야. 그런데 옆에 있던 괴물같이 생긴 덩치 큰 회장이 몽구를 밀치고 화를 내면서, “야 이 개새끼야. 니가 뭔데 나의 개들을 건드리냐”라고 소리치더니 몽구 너를 철탑에서 떨어뜨려 버리려고 달려들기에 내가 말리려고 회장을 잡는 순간 회장과 내가 철탑 아래로 떨어진 거야. 회장을 끌어안고 떨어지면서 “이 몽구 새끼야!”라고 소리치면서 잠에서 깼는데,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단다.(계속)


칠환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