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농부철학 (1)

<초가을, 이질풀꽃>


가을입니다. 햇볕은 한여름보다 따가운데, 밤 기온은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날씨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들은 풀입니다. 신발과 바지를 스치는 풀들이 서걱댑니다. 겉은 여전히 푸르나 촉촉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마다 늦은 꽃을 피우거나 이미 맺은 씨를 여물게 하느라 제 몸의 물기를 다 써버리는 모습입니다. 하늘 아래 손바닥만 한 흙더미를 뿌리로 움켜쥐고 저무는 삶을 재촉하는 그들이 우리나라 농민을 닮았습니다.


최근 있었던 농약계란 파동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불편합니다. 엉뚱하게도 저는 그 와중에 어떤 지역 축제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커다란 웅덩이에 풀어놓은 물고기를 관광객들이 손으로 잡는 놀이 말입니다. 그렇게 잡은 고기를 요리해먹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우리가 먹을거리 전반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이렇지 않나 합니다. 음식을 두고 유별나게 예의와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겠으나 음식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속시켜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의 숙명이자 역동성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에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유일한 존재인 인류의 의의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있습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구약의 창세기 3장의 일부입니다. 금지를 어긴 인간에 대한 신의 단죄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수렵과 채집 생활을 거두고 농업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인류의 수고로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농민의 고달픔을 이처럼 간결하게 알려주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12농부철학 (2)

<고추 마르는 계절>


태초의 인간이 금단의 과일을 따먹은 원죄로 인해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농사로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는 종교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식량 생산은 인류를 커다란 위기에 빠트렸습니다. 균일하지 않은 생산성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렸고, 이는 생산력의 원천인 인구증가와 맞물려 식량사정이 더 악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그러한 어려움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입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란파동에서 보듯 우리는 또 다른 식량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지구상에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12농부철학 (3)

<고양이들의 해바라기>


계란파동의 근본적인 이유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있다고 진단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장식 축산의 본질이어서 방사 축산 등 환경 친화적 축산의 가능성마저 회의적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생산이 소비를 추동하는 경제체제의 그악스런 면모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러한 규율이 다른 산업이 아닌 농업에 적용되는 것은 위험천만합니다. 계란파동이 이를 반증합니다. 계란이 직접 또는 가공원료로서 제공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가격입니다. 일정한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합니다. 양계장 간의 생산성 경쟁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게 됩니다. 비단 계란뿐 아니라 농축산업 전반을 지배하는 원리가 이렇습니다.


식량생산은 생명의 생산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산업의 상품생산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생명들은 한마디로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기술과 화학재제를 활용하여 억제, 또는 활성화하여 목적에 맞게 생산하는 과정은 부작용을 양산하는 실패의 과정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는 농축산물의 전반적인 품질저하를 가져 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작물을 생산하면서 수많은 억제제와 촉진제를 사용합니다. 농약과 함께 이러한 호르몬제의 사용은 (사람에 대한 위해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농작물의 고유한 특성을 해치고, 그로 인해 품질저하를 가져옵니다. 개개의 작물에서 기대하는 영양분이 부실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생산물에 대한 표준화가 강제되는 시장의 요구가 철회되지 않는 한 농민들은 이러한 생산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먹을거리 앞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인류의 식량생산은 자연 생태계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합리적 활용도 아니고 대상화될 수 있는 타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일원입니다. “그(흙)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12농부철학 (4)

<김장배추 심는 날 >


당연한 말씀이지만, 소비자는 먹을거리에 대해 매우 엄격합니다. 저는 그 엄격함이 생산과 유통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과 감시로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시다시피 농축산업은 산업적인 자생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경제체제의 주체가 아니라 종속된 변수에 불과합니다. 심각한 노령화로 활력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해가 갈수록 생산구조 자체가 편협해지고 있습니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사슴을 잡아 먹을거리로 취하면서 그들을 신성한 동물로 섬겼습니다. 이는 위선이 아니라 먹어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생명의 경의입니다. 존중이고, 감사일 뿐 아니라 경건함을 새기는 의식인 것입니다. 비록 성경이 농사를 죄의 대가로 설명하고, 전통사회는 밥상문화를 가부장제의 공고화 수단으로 삼았다 할지라도 그 원천은 먹을거리의 신성함입니다. 또한 자연에 기대면서 동시에 그들 생태계와 싸워야 하는 재배과정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작물이 철없이 생산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거두는 계절 가을입니다. 우리 먹을거리의 상징인 벼가 곧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하늘은 더욱 깊어가고, 햇볕은 더욱 까슬까슬해지고, 바람 또한 말갛게 손등을 스칠 것입니다. 유난히 길고, 무덥고 비도 많이 내렸던 여름은 아내와 나누는 막걸리잔 사이에서 추억으로 스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저녁 뒷산에서 꾸물대던 고라니도 더 깊은 산으로 물러가듯 우리나라 농민들의 발걸음도 깊어지겠습니다.


이근우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