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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선생님은 돌봄교실 선생님의 처지와 역할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했다.> 


학교 선생님이라 하면 존경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방과후돌봄교실 선생님의 입지는 어떨까? 20명이 넘는 어린 초등생들을 챙기는 복잡하고 궂은일을 하지만 근무조건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돌봄 선생님들의 일과 보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 처음 인터뷰를 응할 때 마음은 어땠나요?


안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을 누가 좀 물어봐 줬으면 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알고 보면 참 힘든 일이랍니다. 예전에는 한 집안에 아이들이 두세 명 있었지만 지금은 외동인 경우가 많습니다. 곱게 키우다보니 고집도 세고, 자기주장도 강해서 아이들 간에 마찰도 잦고, 말대꾸도 많이 하는 등 친부모님께서도 힘들어 하시지요. 그런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보는 일이니 쉽진 않습니다만 학부모님들께서 이해도 잘 해주시고 격려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그나마 위안이 된답니다. 이런 얘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조심스럽습니다.

  

2. 구체적으로 ‘방과후돌봄교실’ 선생님이 하는 일은 무엇이죠?


정확한 명칭은 ‘돌봄전담사’이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합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라 오후부터 근무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행정업무나 준비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저 같은 교육청 소속 선생님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교사가 진행하는 정규수업이 끝나고 방과후교실을 책임지는 선생님은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외부 민간업체 소속 비정규직 위탁선생님이 있고 저처럼 교육청 소속인 무기계약직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무기계약직 선생님은 채용하지 않고 위탁 비정규직 선생님만 쓰다 보니 업무량이 늘어났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돌봄교실은 집과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온돌구조여서 일일이 쓸고 닦아야 합니다. 세 교실에서 그날 할 일을 정리하고, 아이들 간식을 챙기다보면 아이들이 들이닥치지요. 시작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정규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건너오는 시간부터 전쟁입니다. 한 반에 보통 20명인데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25명까지는 수용합니다. 저희 학교는 돌봄교실이 세 반이고 한 반에 22명씩 돌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수업(개인이 비용을 대고 외주업체가 들어와서 주산, 피아노, 컴퓨터, 영어 등 학원을 대체하는)을 가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방과후돌봄교실’에서 돌보게 됩니다. 아이들마다 듣는 수업이 다르다 보니, 각자 시간을 체크해서 다음 수업시간에 맞춰서 갈 수 있게 챙기는 22명의 엄마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각자 등록한 수업과 쉬는 시간도 다르며 수업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따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 일일이 간식도 챙겨 먹이는 등 하루에 한 아이를 열 번 이상 챙겨야 하니 돌봄교실은 굉장히 복잡하고 바쁜 곳입니다. 정규수업이 없는 방학기간에도 쉬지 않고 다른 엄마의 역할들이 기다립니다. 저는 7년 동안 이 일을 해왔습니다.


3. 누구나 신청하면 돌봄교실 혜택을 볼 수 있나요? 아니면 자격 요건이 있나요?


일단 가장 중요한 필수요건은 맞벌이 부모 자녀여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조손가정, 다자녀가정, 다문화가정 등을 살펴서 결정합니다. 조건이 중첩되면 우선순위가 되겠지요. 어떤 학교에서는 신청자가 많아 심지 뽑기도 했다는데 저희 학교도 수용범위 안에서 선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들 반응이 좋아서 3학년까지 받아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수용능력이 안됩니다. 현재 여건상 3학년까지 대상을 확대할 수 없어서 1~2학년 위주로 하는데  맞벌이 가정이 많아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여건이 개선되면 3학년까지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4학년 이상은 수업이 많으니 늦게 끝나고,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것이 가능한데 3학년까지는 돌봄이 절실합니다. 2학년까지 아이를 맡기셨던 학부형들이 한 해 더 연장 요청을 하시면서 하소연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여건이 안 돼 “안 됩니다”라고 말할 때가 안타깝습니다.


4. 간식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과거에는 간식을 학교급식소와는 별개로 돌봄교실에서 직접 만들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 교육청 지침으로 ‘완제품으로 구매해서 배식’하고 있습니다. 집단 식중독 같은 것이 염려가 되니 그런 것 같습니다. 다달이 비용을 받아 빵집이나 떡집에서 구매를 해서 간식을 주는데 때로는 직접 해먹이고도 싶지만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돌봄교실에서는 음식을 전혀 조리를 하지 않습니다.


5. 돌봄교실 하루 일은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끝날 것 같은데, 그 일은 어떤가요?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수업을 가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한 주에 3일정도 외부강사를 섭외해서 특별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기도 하니 그런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세 반 프로그램을 짜고, 특별활동 선생님을 섭외해 결제를 받고, 외부강사님들이 혼자서 진행이 힘드니 저희 선생님들이 들어가 도와줍니다. 다음에는 간식 주기인데 개별 부담하는 간식비는 3만원이지만 간식 외 특별활동, 교구, 기타 등등 다른 부분은 교육청 예산으로 지원됩니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기 위해 늘 고민해야 합니다. 귀가시키는 일도 단순치 않은데, 22명 아이들이 집에 가는 시간대가 다르고 변화가 많습니다. 특히 3월초, 아이들 이름도 생소한 시기에는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차로 태우러 오든지, 학교에 언니 오빠가 있으면 데리고 가든지, 부모님이나 할머니께서 데리러 오시기도 합니다. 교육청 지침이 안전문제로 절대 아이를 혼자 집으로 보내지 못하게 합니다. 누가 데리러 오겠다는 문자가 오면 아이들을 보호자에게 인수인계하는데 아이들마다 생활환경이 다르고 요일별로, 월별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걸 다 기억하고 챙기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6. 어린아이들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들이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부모님이 교실 입구까지 오셨는데 아이들이 안 가려고 고집피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가 더 편안하고 재미있고 집에 가면 심심하니까요. 20~30분 문을 열어 놓고도 아이가 안 따라 가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애가 그러고 있으니 나중에는 교실까지는 오지 마시라고 했어요. 학교 입구에 도착해서 문자를 주시면 제가 아이를 준비해서 정문까지 내보내겠다고요. 부모님들은 아이들한테 못 이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편, 맞벌이하시는 한 어머님은 데리러 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 번은 여자 아이가 다른 엄마는 데리러 오는데 우리엄마는 왜 데리러 안 오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허겁지겁 회사를 조퇴해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모든 학부형들이 교실까지 데리러 오지 않고 교문에서 인수인계를 합니다. 아이들 가정조건이 다 다르고 데리러 오지 못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 상처가 큽니다.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의아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해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학부모 OT(오리엔테이션: 안내 교육)때 그렇게 처음부터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먼저 저한테 알려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혼날까봐 자신이 잘못한 행위는 다 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집안의 아이’와 ‘바깥의 아이’는 다를 수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 합니다. 공동생활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 겪는 일반적인 과정이니까 부모님들이 많이 지지해주시고, 믿고 따라 주십니다.


7. 아이들을 많이 대하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생기지 않나요? 그 중에 특별한 일이 있다면? 


저는 처음부터 사회복지학을 전공해서 보육교사자격을 취득했지만 졸업하고 나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준비했습니다. 6개월 요양병원 실습도 마쳤구요. 자격 취득 후에는 요양병원에 취업하려고 했습니다. 보육 쪽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떤 계기로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늦둥이를 두었는데 나이 터울이 많이 나요. 큰 딸이 서른두 살, 밑에 아들이 서른 살, 셋째인 딸아이가 열일곱 살이에요.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고열이 40도 가까이 나더라고요.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내가 요양병원에 가면 3교대를 해야 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던 차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방과후돌봄전담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거지요.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이 내린 날이었는데 그 눈길을 뚫고 서류를 떼서 학교에 넣었어요. 그런데 경력 많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합격을 했더라고요.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인상이 참 좋고, 기존 선생님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게는 운명처럼 이 일이 주어졌다 생각합니다. 업무 내용도 생소하고, 아이들도 접해보지 않아 두려웠는데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욱 부담스러워 망설여지더군요. 용기를 내서 맞닥뜨리기로 했는데 처음 맡게 된 아이들이 진짜 말썽쟁이로 유명한 아이들만 제 교실에 다 온 거예요. 처음부터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나고 보니 덕분에 단련도 빨리 되었던 거 같습니다.


돌봄을 내 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또 있었어요. 한 여자아이에게서 남다른 분위기를 느껴 눈여겨봤더니 얼굴에 그늘이 있고 아이들과 잘 섞여 놀지도 못하고,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식탐만 많아 살이 찌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와 상담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막 우시는 거예요. 애기를 놓자 말자 남편은 집을 나가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자신은 따로 시내에 산다는 거예요. 아이 고통이 크고 부모 정이 그리운지 어울리지도 못하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하는데 아셨냐고 물으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 딸을 데리고 살아야겠어요.” 해서 전학을 시켜 데리고 갔는데 몇 달 뒤 어느 선생님 한 분이 찾아오신 거예요. “선생님. 돌봄교실 빈자리가 있나요? 누구누구 어머니가 교통사고 돌아가셨어요.”라는데 그 충격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바로 그 아이였어요. 뭐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 아이 외할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애 아버지는 이미 양육권과 친권포기 각서를 쓰고 남이 되어버린 상태였고요. 그래서 아이 양육을 책임지게 되신 외할머니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권유하고 절차를 알려드렸더니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어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돌보게 된 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소문날 정도로 내내 찾아오더군요. 엄마처럼 의지하고 싶었나봅니다. 그런데 그 때 트라우마가 큰지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정신연령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더라고요. 그 순간에 멈춰버린 것 같아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무척 힘들어 하시고 많이 우시더라고요. 친딸처럼 진짜 여러 방법을 써 봤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에 7년이 훌쩍 가버렸네요.


돌봄전담사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제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참 많다’는 겁니다. 원래 많았는데 모르고 살다가 이 일을 하면서 눈을 뜬 거겠지요. 제가 다 해결해 주려 하면 안 되는데, 그럴 능력도 여력도 안 되는데 애를 쓰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몸을 상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요. 타고난 성격 같아요. 반 편성을 위해 심지 뽑기를 해도 이상하게 그런 힘든 애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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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가 일반화된 마당에, 역할은 많아지고 있지만 ‘방과후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돌봄교실'은 우리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8. 이런 아이들에게 특별한 치유법이 따로 있을까요?


저는 특별한 치유 방법이 있다기보다 사랑과 스킨십, 남다른 관심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고, 몸에 상처가 있고, 머리에 땜방도 많은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집에서 많이 맞은 것 같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 이혼해서 딸을 데리고 와 있는 고모, 역시 이혼한 홀아비 아빠, 두 형제까지 총 일곱 명이 같이 사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아이 가슴에 불기둥이 들어있는 거예요. 어떤 일로 훈계를 하다가 눈빛을 마주쳤는데, 순간 살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입을 다물었어요.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큰 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날은 아무 말도 안했어요. 학교 차원에서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상담했더니 “선생님이 책을 사서 공부하면서 직접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더군요. 무척 서운했어요. 밤잠을 설치고 남편과 상의도 하면서 고민한 끝에 방법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먼저 다가서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잘한다. 잘한다.”, “너는 잘 할 수 있어.” 계속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지요. 그 친구가 운동을 잘했어요. 그래서 “운동 잘한다. 나중에 운동선수든지 군인 아저씨 되면 좋겠다.”고 한동안 격려를 했더니 그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다른 사람들 말은 안 들어도 제 말은 들으면서 변하기에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입학하면서 돌봄 졸업할 때까지 데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피구선수, 육상선수, 탁구선수 같은 걸로 키워달라고 체육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지금은 학교 대표선수로 뛰고 있구요. 이런 몇 명의 친구들이 제 인생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이런 친구들 때문에 제가 돌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고 천직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이상하게 많이 따른다고 느끼는 건 제 착각인가요?(웃음)


9. 힘든 일이 있으면 스스로 이겨내나요?  


저는 ‘베푼 만큼 제 자식들한테 복이 돌아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많이 베풀고 살려 합니다. 오지랖이 넓다 할 정도로 남 말을 많이 들어준다거나 나눠먹는 걸 좋아하고 끝까지 다가가 보려고 애쓰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옹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처음에 조언을 하다 안 되면 야단도 치고 냉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힘든 일에 맞닥뜨리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 집요함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름 강한 생활력을 가지게 된 이유라면 어릴 때부터 소녀가장으로 자란 환경 탓이 크겠지요. 함께 생활했던 동생들은 고집과 주장이 강한 저를 겁내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왔겠습니까? 어렵고 힘든 일을 극복하거나 이 길을 오기까지는 남편 도움이 컸습니다. 가세가 기울고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소녀가장으로 동생들과 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지만 다시 공부를 마치게 한 사람도 남편입니다. 40대 초반에 우울증이 잠시 왔는데 남편이 검정고시 시험을 치라고 공부를 권하더군요. 해도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컸는데 하도 권하기에 기출문제를 접해보니 ‘이 정도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원등록도 하고 없는 시간 쪼개서 공부를 해서 두 달 반 만에 검정고시 합격을 했더니 제 생일 선물이라고 남편이 ‘사이버대학 입학확인서’를 주더군요.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왔습니다. 요약하자면 “남편이 내 인생에 가장 훌륭한 멘토다.”입니다.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학교는 방학이 있지만 우리 돌봄전담사들은 방학이 없습니다. 교육공무직이 되고 얼마 안 있어 토요일도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토요 근무가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입니다. 여름휴가 개념도 없어서 쉬려면 무조건 연차를 써야 합니다. 일반 정규교사들과 처우가 많이 다릅니다. 학교에는 저처럼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분들이 많은데 파견직, 임시직 등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돌봄교실에는 외주 교육업체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함께 일하고 있지만 이 분들 환경과 처우는 더 열악합니다.


2011년 처음 돌봄전담사로 근무할 때 행정실장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저희를 상대하려 하질 않았습니다. 학교 회식도 초대 받지 못했고 학교 안에 있지만 투명인간 같은 신세였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도 바뀌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비로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생활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육공무직’이란 천재지변으로 임시휴교 때도 학교에 출근해 학교를 지키는 경우도 많고 궂은일들은 거의 떠맡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상황과 처지가 알려져서 처우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먼 훗날 시간이 지나 우리 돌봄 아이들이 ‘엄마 같이 푸근하면서 좋은 선생님이 있었지.’라고 제 이름 석자만이라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어 이동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