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강변을 걷다 보면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모습이 세상의 실제 모습 그대로일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태화루에서 출발해 선바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제법 긴 산책길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똑같은 경치인데도 갈 때 보는 모습과 올 때 보는 모습은 종종 판이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길 가에 핀 꽃도, 강가에 서 있는 나무도 올 때와 갈 때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특히 강물의 빛깔이 엄청나게 달라 보일 때가 많다.


긴 산책길이니만큼 시간차가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성싶다. 나는 산책길에서 가끔 뒤를 돌아다보고 사진을 찍는 버릇이 있다. 선바위를 반환점으로 해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뒤를 돌아보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셔터 누르는 일도 잊은 채 나는 멍하니 서서 이제 막 지나온 그 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우연히 돌아다본 길, 방금 지나온 그 길 위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가을빛이 따사로운 정감으로 고즈넉이 배어 있었다. 오래 된 햇살, 낯익은 나뭇가지, 청량한 하늘 빛, 흰 구름……. 어쩌면 그 산책길에서 내가 찾고 있던 모습들이 거기 다 모여 있는 듯했다. 바로 저 모습들을 찾아 이 길 나섰던 것인데, 왜 저 길 걸어오면서는 그것들을 보지 못했을까.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 서글픔 같기도 한, 그래서 눈시울이 시릴 것도 같은, 형언 못할 감흥이 인다.


그 순간엔 몰랐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 돌아다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 존재의 흔들림이랄까, 그 현재의 불확실성이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이제 교사로서의 시간이 내겐 채 일 년이 남지 않았다. 그리 긴 세월인 줄도 모르겠으나, 아득한 사십 년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간 것이다. 돌아보면 순간순간들이 다 나름의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때 그 젊은 교사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 거친 세월을 그리도 무심히 스쳐왔던가 회한이 일기도 한다. 소중한 것들은 돌아다보아야 비로소 보이나보다.


오후 세 시쯤 태화루 가까운 강변에서는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오후의 햇살 아래 태화루 앞 강물 빛은 푸르다 못해 시릴 지경이다. 스마트 폰 화면 속의 물빛은 화면 밖의 물빛보다 더 짙푸르다.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살 때에도 나는 오후의 바다 빛깔을 유난히 좋아했다. 영도 청학동 우리 집 다락방에서 작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맞은편 적기 앞 바다는 마치 잉크를 풀어놓은 듯 새파란 빛이었다. 때로는 흰 수건을 그 물에 적셔 푸른 물빛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태화루 앞 저 푸른 강물 빛이 지구의 빛 장난이란 걸 잘 안다. 흰 수건 적셔 푸른 물빛 확인해 보려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현상이 아무리 황홀해도 본질은 또 다른 법. 오후 한때 황홀한 지구의 빛 장난을 함께 즐기면 그만이지 굳이 그 푸른 물빛을 눈앞에 확인하리야.


긴 세월 학생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고르지 않다. 내 곁을 스쳐간 수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특별한 날들의 특별한 기억들과 함께 엉켜서, 마치 오래 된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들처럼 순서 없이 죽 펼쳐진다. 기억은 세월을 먹고 자라기도 하나보다. 오랠수록 더 생생한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나는 내 마지막 학교가 될 효정고등학교 아이들이 참 예쁘다. 이렇듯 살갑게 따르는 아이들은 또 처음인 듯하다. 어쩌면 이것도 저 지구의 빛 장난처럼 또 하나의 착시 현상일까? 늦은 오후 기우는 햇살 아래서는 모든 게 의미심장한 빛을 띠는 법이라니…….


태화루에 오르면서 방향을 바꾸어 강을 내려다보면 그 짙은 푸른빛이 가시고 대신 잔잔한 옥빛이 드러난다. 옛날 황포돛대라도 떠가던 시절이었다면 응당 이 자리는 한 잔 술을 기울일 만한 자리였으리라. 그래서 태화루가 선 것이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엔 저 강처럼 도도하게 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젊은 치기에는 저 영겁 세월의 의연함이 도도함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저 강처럼 의연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저 한 세월 바람결 따라 몸을 누이고 살다 가는 저 강변의 잡목들만큼만 너그럽고 겸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 갈수록 모든 것이 서투르기만 한 늙은이에게 사십 여년 세월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접고 살갑게 다가드는 젊은 벗들이 그저 고맙기만 한데, 내가 그 앞에서 무엇을 고집하고 또 무엇을 꾸미랴.


서상호 효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