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관한 상상력과 미래의 기획이 풍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매혹적인 도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계속 참패함에도 그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참패한다

이러한 ‘작은 인간의 목소리, 외롭지만 끈질긴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도시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힘이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1904~1910)의 첫 문장을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여기서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썼다. 그에게 도시는 삶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쓸려가고, 개발주의자에 의해 도시공간은 개발과 투기의 장으로 전락해왔다. 약자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도시를 어떻게 바꿀까에 대한 주체는 형성되지 못하고 구체적 희망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울산이란 도시는 지금은 생태도시라고 주장되고 있지만 한때 공해도시, 공업도시의 낙인이 선명했다. 그간 노동이란 담론에 매몰된 진보진영은 오히려 수렁 속으로 곤두박질해 왔다. 소외된 노동이 사회적 관계의 소외로 전화되는 도시라는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파악해야 해야 소외된 노동과 사회적 관계의 소외를 해결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도시로의 쏠림 현상이고 그 모순이 주거, 교육, 소비의 양극화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도시는 문명의 공간이자 그 문명으로 인해 몰락한 세계이며, 성공의 공간이자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욕망의 세계이며, 기득권자들의 공간이면서 그 기득권에 도전하는 저항의 공간이었다. 도시의 화려함과 풍성함의 이면에는 자본의 탐욕과 비인간성이 내재하고 있다. 이를 드러내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세계와 공간에 내재한 모순 이면의 변혁 가능성을 파악해야 한다. 자본의 촉수가 생산 영역에서 소비 영역으로 뻗은 일상세계로서의 도시공간은 본격적인 상품으로 변모하고 마침내 도시의 삶은 환영과 같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삶이 되었다.


도시는 공적 재화와 서비스, 물품의 ‘집합적 소비’를 위한 장소이고 자본주의적 재생산과 위기관리를 위한 공간이다. 한편 도시는 잉여자본이 저장되는 건조 환경이다. 건조 환경을 둘러싼 모순과 대립의 지점이 바로 도시를 바꿀 수 있는 실천의 무대다. 많은 이들이 “위에서” 세계를 바꾸려고 하는 동안 “아래로부터” 도시를 재건하는 실천은 미미했다.


상상력과 실천으로, 도시를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공간, ‘매혹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도시의 모순을 해결할 ‘주체와 희망’이 필요하다. “고통과 아름다움의 한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도시는 모순과 실천의 장이다. 도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구축되는 장이면서 동시에 불평등과 온갖 모순이 심화되면서 해결되는 장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생산양식은 도시 모순의 극복을 통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의 도시 담론은 대개 연구기관, 교육기관, 정부기구 등에서 생성돼 통용되는 유형을 취하고 있고, 이념적으로는 중산층과 시장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러한 도시담론 상황은 우리의 도시 인식 세계를 황폐화하고 또한 한쪽으로 기울게 함으로써 도시모순은 물론 도시 자체가 갖는 다양성과 풍부함을 올곧게 해석할 수 없게 한다. 도시에 관한 상상력과 미래의 기획이 풍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매혹적인 도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매혹스러움’은 이상과 희망에 따라 도시를 바꾸는 실천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다. 강요당한 뒤틀린 발전을 좇는 시장 모델에 맞서 인간의 자유로운 발전, 곧 “자아가 통제할 수 있는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19세기 페테르부르크의 경험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제에 의해 ’위로부터의 현대화‘가 진전되었으나 구세계의 신분 질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현대화로 인해 파생된 ‘작은 인간’은 공고한 구질서에 의하면 여전히 현실에서 하찮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한다. 지하생활자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가 지하에서 나와 고위 관료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는 장면에서 그는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며 구질서와 투쟁한다. ‘작은 인간’은 점점 더 대담해지며 타협할 줄 모르는 희생자가 된다. 계속 참패함에도 그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참패한다. 이러한 ‘작은 인간의 목소리, 외롭지만 끈질긴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도시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연민 울산대학교 산업경영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