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길다 보니 밤과 낮이 바뀌기도 하고 세수를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활이 엉클어져 나도 모르게 무력감이 밀려든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꽉 짜인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미리 워밍업이라도 해 두어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해 교무실에 들어서니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준비를 하시는지 밀린 업무를 하시는지 다들 무엇인가 열심히들 하고 계신다. 명절 덕담을 주고받으며 잡담을 하다가 왠지 낯설게 보이는 내 자리에 앉아 이 책 저 책을 집어 건성으로 넘기다가 ‘이 시간에도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절임에도 수능을 대비해 책만 보고 있을 고3 녀석들 모습을 구경이나 한번 해보려고 3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천천히 복도를 지나가면서 1반부터 10반까지 교실을 훑어보는데 학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학생이 한 명도 없는 빈 교실이 두 개, 한 명만 홀로 앉아 공부하는 교실이 세 개, 네 명이 앉아있는 교실이 한 개, 10여 명 내외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이 네 개였다. 아무리 강제성이 없는 휴일 자율학습이라 할지라도 수능을 40여 일 앞둔 고3 교실 풍경치고는 좀 뜻밖이다. 3학년 학년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3 담임선생님 세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고3 담임이 된 죄로 황금연휴 와중에도 번갈아 자리를 지키시는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니, 10반 담임 김 선생님이 커피 한 잔을 타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연휴 동안 학년 전체에서 서른 명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에 나온 날이 한 번도 없었단다. 한여름이 지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중순 이후 우리 학교 학생 중 공부를 제일 적게 하는 학생들은 고3 학생들이다. 아마도 이는 우리나라 대다수 인문계 고등학교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짐작한다.


대학입학 전형은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수시전형은 수학능력시험의 반영비율이 없거나 적은 대신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율이 높고, 정시전형은 수학능력시험의 반영비율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입시정책은 수시전형의 비율을 꾸준히 늘려가는 추세다. 현재 대학교 1학년들의 수시전형 비율은 전체 입학생의 69.9%였는데, 올해 고3 학생들의 수시전형 비율은 73.7%이고, 올해 고2 학생들의 내년도 입시 수시전형 비율은 76.2%로 확정되어 있다.
대학입학 전형에서 수시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진 결과 수시전형 원서 접수가 마감된 9월 중순 이후 많은 학생은 마치 자신이 이미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행동한다. 결석은 잦아지고, 틈만 나면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려 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몰래 펴놓고 읽는 녀석들도 일부 보인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선생님들의 양해를 얻어 수업과 무관하게 혼자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면접을 준비한다면서 웹서핑을 하는 녀석들이 등장한다. 아직은 누가 수시에 합격하고 누가 수시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결과적으로 73.7%의 학생들이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들의 행동을 마냥 제지하기도 어렵다.


현대사회가 아직 소품종 대량생산의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산업사회인지,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다품종 소량생산 중심의 탈산업사회에 접어들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한명 한명의 발달 상황을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를 토대로 선발하는 수시전형은 탈산업사회에 걸맞은 인재 선발방식이고, 하나의 잣대를 전체 학생들에게 일괄 적용하는 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전형은 산업사회에 걸맞은 인재 선발방식과 닮았다.


우리 사회가 빠르건 늦건 탈산업사회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에 수시전형 제도가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제도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하는 과정에 나타난 여러 허점을 아직 보완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동안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많이 줄여왔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목고 프리미엄이 공공연하고 부모들의 경제력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교육 의존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학교는 학교대로 무너지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시전형의 객관적인 잣대를 마련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소위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좌우되지 않고 학생 본인들 노력의 대가가 정당하게 주어지는 사회가 민주사회다.


조성철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