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자연

< 지리산 천왕봉이 가까워졌을 때 만난 구상나무 고사목. 제석봉 근처에는 인간에 의해 훼손된 화사목(火死木)들이 넘쳐난다. ⓒ이동고 >  



지리산을 처음으로 오른 것이 3년 전이다. 학생 때 단체로 가는 길에, 준비도 없이 멋모르고 따라 나섰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 지리산은 인연 맺을 산이 아니었다는 후회와 한 번 오른 것으로 만족하고 그 후 인연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 힘든 시기는 언제나 찾아들고 무르 익어가는 중년을 달리는 육체와 정신은 지리산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3년 전 40대 말에 ‘지리산을 혼자 오르겠다’ 결심했지만 불안감만큼 배낭은 무거웠고, 그 무게만큼 무릎이 고생했다. 그러나 천황봉을 올랐을 때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이야’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수시로 변하는 안개와 구름이 만드는 신비로운 풍광과 1900미터 고산식물이 펼치는 꽃의 향연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이 오가도 길 주변에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라’하면서 죽을힘을 다해 오른, 중년 남자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위로받기도 했던 것이었다.


요번 한가위 연휴에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되는 것이 계기였을까? 주말에 전국 산을 훑고 다니는 형님이 ‘지리산이나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마치 뒷산 가듯 나섰다.


법계사를 지나고 지금까지 올라오며 본 식생과는 확연히 다른 구상나무 고사목이 즐비한 고산식물이 자라는 풍광으로 바뀔 때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지리산 등반역사상 배낭이 가장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천황봉에서 장터목을 가는 중간에 지리산에서 천황봉 다음으로 높은 제석봉(1806m)이 있다. 제석봉을 지나는 길목 곳곳에 고사목들이 많았다. 고사목이 주는 그 적적함과 고졸함을 사진으로 담았다. 한국전쟁 아니면 지구온난화 피해일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 국제신문 이진규 씨 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천황봉 아래 제석봉과 장터목 능선은 지금 보는 것과는 달리 50년 전에는 울창한 구상나무 숲이었다는 것이다. 


“이 제석봉에 숱하게 죽어 있는 구상나무의 본질은 세월의 무상함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이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던 구상나무 숲이 이렇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 권력을 등에 업은 토호와 도벌꾼들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 장관 자리를 하던 이의 조카가 삼촌을 등에 업고 도벌을 주도했다. 이들은 장터목 아래 제재소를 차려두고 이 일대의 나무를 무차별로 베어내 산 아래로 실어 날랐다. 그러던 중 1959년 8월 한국산악회 학생산악훈련단에 참가한 사진가 김근원 선생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사진을 찍어 이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도벌꾼들은 조사단이 온다고 하자 도벌의 흔적을 없앤다며 산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제석봉이다. 고로 이곳은 고사목(枯死木) 지대가 아니라 소사목(燒死木)지대이자 나무들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국제신문, ‘지리산, 구상나무와 케이블카’ 이진규


현재 지리산은 국립공원을 지역경제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지자체와 토호세력이 손잡고, 개발을 압박하고 있다. 울산 영남알프스처럼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이 문화재청을 상대로 한 설악산 오색 삭도(케이블카) 행정심판에서 승소해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되자 그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경남도가 추진하는 산청군 중산리~장터목~함양군 추성리 구간 케이블카는 2012년부터 공익성과 환경성 등이 미흡하다며 환경부가 세 차례나 반려했다. 지난해 11월에 세 번째 반려가 이루어졌는데도 조만간 노선을 변경해 네 번째 도전에 나설 모양이다. 전남 구례군과 남원시도 따로 케이블카를 추진 중이다. 참으로 질긴 욕망으로 똘똘 뭉친 세력들이다.


요번 지리산을 올라본 모습은 사람이 쉴 만한 곳곳에 쓰레기가 넘친다는 사실이었다. 3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지자체가 50여 년 전 제석봉 구상나무숲처럼 지리산을 망가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하려고 한다. 앞으로 지리산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지난 주 억새장관을 보러 배내봉 쪽에서 간월산을 올라간 자락 곳곳에도 쓰레기 천지였다. 지금까지는 케이블카 찬성여론이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우리 몸과 마음과 정신을 자연의 순수성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면 산행문화 자체가 타락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산을 수많은 생명의 서식처이자 삶의 공간으로 여기지 못하는 지자체는 간월재 억새축제에 산이 떠나갈 정도의 고성방가 음악회를 열었고 그 분위기에 덩달아 들뜬 등산객들을 보았다.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든다. 인간 자체가 쓰레기 같은 좀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산으로부터 인간의 오만과 겸손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 무섭다.


이동고 자연생태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