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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언어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스페인어에 관심을 가진 이를 만나고, 가르치는 시간에 제일 즐겁다. >


 

그에게 스페인어는 뭐라도 하나 남과 다른 것을 만들려는, 몸을 던진 체험의 결과였다. 신도 믿지 않은 이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까지 가 스페인어로 선교 활동을 하게 된 사연은 무척이나 드라마틱하다.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관련한 일을 하지만 뒤늦게 자신에게 언어능력이 있음을 깨우치고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더 높은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자.


1. 지금 갖고 있는 직업은 무엇인가?


대학을 컴퓨터 공학과를 나왔다. 지금은 컴퓨터 서버 관리를 하며 IT(정보통신기술), 전산 쪽을 맡고 있다. 공단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전산시스템을 유지관리하는 일을 보고 있다.


온도나 습도나 다 갖춰진 공간에서 주로 있고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도 나간다. 관리하는 컴퓨터가 많기 때문에 원격으로 수리하기도 하고, 여러 군데 현장으로 나가봐야 한다. 일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기는 했지만 계속 앉아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다니는 게 좋았다.  


2. 남미 쪽에 봉사를 갔다 왔다는데 어떤 계기로 남미로 가게 되었나?


학교를 다닐 때 특별히 내세울 것이라든지 잘 하는 게 없었다. 성격도 숫기가 없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졸업할 때 되니까 사람들에게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더라. 


성적도 중위권 정도밖에 안되고 스펙도 딸리고 고민을 하다가 해외봉사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고 영어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될 것 같고, 드문 언어 스페인어를 해보자. 세상 반대편이 들어가 전혀 다른 언어를 배우자. 원래는 콜롬비아를 택했는데 선택한 이유가 단지 커피를 좋아해서 결정했다. 최종적으로는 아르헨티나로 결정이 났는데 스페인어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고 그때 그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결정한 내용이었다. 축구 선수 ‘메시의 나라’가 유일한 정보였다. 현지에 가서 전혀 다른 것을 겪어 보고 싶었다.


3. 아르헨티나 생활은 잘 적응이 되던가?


단순히 봉사활동이라는 것으로 신청을 했는데 종교단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단순히 도와주면 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갔다. 봉사영역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아카데미’라고 자신이 잘하는 부분을 가지고 현지인에게 알려주는 활동도 있었고, 그 다음에 전도활동도 있었다. 신을 믿진 않지만 일을 맡고 보니 선교활동, 설교 내용도 주의 깊게 듣게 되었고 도전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현지인들이 스페인어를 쓰니까 스페인어로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설교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스페인어도 배워야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전도할 생각도 못했고 같이 나가게 되면 겁먹어 가지고 같이 간 단원들과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말 답이 안 나왔다. 하지만 내가 한 약속이 있었다. 뭔가 하나는 얻어서 가자, 뭔가 하나는 배워서 가자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를 배우면 하루 종일 써먹고 문장을 하나 배우면 그 문장을 일주일 내내 써먹고 하면서 스스로 배웠다. 따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수업도 없었고 동료한테도 배우는 것도 아니고, 현지인과 만나 교회에서 활동을 했는데 사람들과 만나고 인사도 하면서 새로운 단어도 배우고, 하루 종일 그 단어를 쓰고, 현지에 형제들도 있으니 그들과 만나고 어울리면서 대화중에 새로운 단어, 문장도 알게 되고, 잘 모르면 그 분들이 가르쳐주고 노트로 적게 하고 또 써먹게 되고 하니 조금씩 터득이 되었다. 현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한 3개월 정도 걸렸다. 왜냐하면 정말 우리나라 문화하고는 다른 게 많았다.   

 
첫 인사법도 달라서 당혹스러웠고 나름 애를 먹었다.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볼키스를 하는데 왼쪽 볼 오른쪽 볼을 부딪치며 한다. 포옹을 하면서 등을 두드리거나 힙합식으로 손바닥을 부딪치거나 이중악수라고 해서 두 번 손을 잡는데 처음엔 아주 부담스러웠다. 미혼이고 숫기가 부족한 나로서는 적응하는 데 더 힘들더라. 현지 친구를 만들기 힘들고 혼자 있게 되고 주변에 같이 온 한국 단원들과만 어울리게 되고 스페인어 실력이 늘기는커녕 계속 멈춰있게 되더라.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쾌활한 성격의 친구가 뒤에 합류를 했는데 오히려 적응을 잘 하더라. 틀리든 말든 스페인어를 계속 도전했는데 그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저 친구한테 정말 배울 것이 많구나.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또 하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큰 항아리 통에 ‘마떼’라는 나무 잎사귀를 갈아 넣고 물이나 환타, 사이다를 넣어 마시는 것인데, 항아리에 빨대를 꼽아서 빨아 먹고 그 항아리를 옆 사람에게 줘서 먹는 일이었다. 물이 다 없어지면 또 채워서 옆의 사람에게 넘겨주고, 빨대를 같이 쓰는 것이니 못 마시겠더라. 나중에 우리나라 찌개나 된장국을 같이 두고 먹는 것과 비슷하구나 생각하니 적응이 되었다. 그들 문화에 익숙해지니, 처음에는 목표가 없었는데 스페인어를 잘해서 그 사람들 마음이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더라.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와 빈부격차도 심하고, 기차를 타게 되면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자연스럽게 많이 피운다. 거기서는 마리화나가 합법이다. 기차를 타기만 하면 마리화나 냄새가 역겹게 나서 피워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 문화도 많이 개방되어 있어서 교회 신도도 결혼을 두 번 이상 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더라. 결혼은 빨리 하는데 이혼을 해서 책임지지 않는 아이들이 넘친다거나 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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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가 가진 운율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카사블랑카’'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


4. 구체적인 봉사활동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들려준다면?


활동 중 60% 정도는 종교에 관련한 활동을 하고, 나머지 40%는 현지 청소년을 위한 공익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교회에 연결되지 않은 애들도 정상적이지 않은 애들, 보통 마약에 중독되었다든가 학교를 안 다닌다거나 하는 그런 친구들이었는데 우리와 함께 하면서 변해가더라.


내가 친했던 화장도 되게 진하고 옛날 일진 비슷한 옷을 입은 애들이 있었는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스페인어를 열심히 해야겠구나’하고 마음먹었다. 내가 전도를 했던 한 40대 중반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있었는데, 마약도 하고 사람을 죽여서 감옥도 갔다 오고, 범죄경력이 많은 사람이어서 무서웠다. 스페인어로 더듬거리며 전도를 했는데 마음을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변하더라. 

 
아르헨티나는 가톨릭이 90% 이상 차지하고 있어서 비록 개신교 일원으로 갔지만 종교활동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는 것도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당시 들어간 교회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이 150명 정도 되었다. 규모는 컸는데 정말 신기한 게 교회에 나오기 위해 세 시간 내지 여섯 시간 걸리는 곳에서 나오는 사람도 많아서 놀랐다. 시골이나 골짜기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1박 2일을 교회에서 보내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5. 교육 방식은 어떤 것이었나?


물론 전도를 한다고 설교만 하는 것 가지고는 힘들다.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년을 위한 이벤트를 여는데 종교적인 것은 다 빼버리고 문화 댄스라고 남미, 호주, 일본 각 나라의 춤을 보여 주는 것이 있고, ‘마음의 세계’라고 마음을 여는 법,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 등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심리상담 비슷한 것이다. ‘아카데미아’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영어, 일본어, 댄스, 태권도, 한국음식 등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주 기초적 수준의 일본어를 맡게 되었다. 군대시절 취사담당이 없어서 요리를 돌아가면서 했는데, 그 경험을 살려서 한국음식 아카데미를 진행했었다. 이 봉사단체가 좋았던 이유가 한국이라면 전문적인 조건을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안동 탈춤축제에 두 번 나가고, 에버랜드에도 춤으로 나갔는데 원래 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춤을 배웠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자주 하다 보니 능력이 되더라. 그 쪽은 춤 문화가 자연스러운 곳이고 탱고 문화가 발달해 있다. 거리에서 낮에도 식당에 가면 탱고 공연을 볼 수 있고, 거리에서 버스킹도 많이 하는데 어느 노신사분의 멜로디언에 맞춰 댄서 두 명이 탱고 춤을 추는 게 인상적이었다. 또한 ‘무르가’라는 아르헨티나 전통 춤이 있는데 술에 만취가 되어 비틀거리며 춤추는 것인데 특이했다.


6. 아르헨티나 봉사활동 중에서 제일 인상에 남은 경험은 어떤 것인가? 


무전 전도를 한 적이 있는데 완전 오지로 들어갔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차를 태워주는데 어느 지점부터는 모든 것을 종교적으로 볼 때 신에게 맡긴다고 해야 하나, 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하는 식이다. 나랑 현지인 한 명, 교포 한 명, 총 세 명이 같이 갔다.


맹수, 전염 풍토병보다도 숙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세 명이 같이 가니 소통에는 문제는 없어서 주로 ‘히치하이킹’을 통해 이동했다. 혹시라도 물질적인 도움을 받은 것은 ‘레미콘’이라 불리는 쓰러져 가는 차를 개조해서 모는, 요금이 싼 불법택시를 타는 정도였다. 설교를 하면 주민이 재워준다고 했는데도 그 교포 분이 ‘우리는 신만 믿어보자. 어려움을 겪어 보자’ 하면서 나오는 바람에 남의 집에서 자 본 적인 한 번도 없었다. 그분의 신앙심으로 대부분 버스정류장에서 잤다. 이 분은 아르헨티나에 오래 사신 50대 분이었는데 그 당시는 성령이 충만하신지 2주 동안을 집에서 자 본 적 없이 모두 노숙으로 해결했다. 그 정류장에서 잘 때도 동시에 자면 위험하니 두 명이 자는 동안에 한 명은 불침번을 서고 했다.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 전도를 해서 마음에 들면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먹을 것도 직접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고 나서 먹을 것을 주면 먹고 어두워지면 그냥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잤다. 침낭은 있었으니까. 돌아올 때는 차비도 없는데 주거지 없이 떠도는 분들을 위한 버스 운영 제도가 있는데 증명을 해서 타고 돌아온 것이 얻은 가장 큰 도움이었다.


남미의 고질적인 문제가 슈퍼든 어디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고, 줄이 길어도 점원이 화장실을 가면 기다려야 하고 여권 갱신과 같은 서류 접수 등은 반나절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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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보면 그가 가진 스페인어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



7. 스페인이 아주 정열적인 나라라라고 알고 있다. 투우나 파두도 대단하더라. 성량이나 기교 같은 것을 보면 야생적인 문화나 열정이 보이더라. 언어에도 그런 열정이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


스페인어 발음 자체가 노래하듯이 한다. 불어를 아름다운 언어라고 하는데 스페인어는 불어의 경상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어를 마치 노래하듯이 발음하는 것이 많다.


모든 언어의 어원이 라틴어에서 파생되고 같은 계열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이니 사실 스페인어만 잘하면 그 친척뻘 되는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된다. 언어가 열정적이라고 그런 성격을 가진 분이 오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 자체가 평범하고 높낮이가 별로 없어서 우리나라 톤으로 이야기 하니까 처음에 발음 교정을 하는데 애를 먹는다.


8.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와서 공부 모임은 어떻게 만들었고 주로 모이는 분들은?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언어가 되는 정도는 기초 정도였고 과거형, 미래형으로까지 안 되었다.
내가 가진 책도 기초적인 책이었기 때문에 잘 하지는 못했다.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귀국하고 난 다음에 문법적으로 파고들어 준비했다. 오자마자 한 달 만에 취직이 되어서 처음에는 바빠서 준비를 못 하다가 한 3개월 정도 공부를 하니까 체계가 잡히더라. 더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스페인어 과외에 관한 정보는 많은데 스터디 모임에 대한 정보는 없더라. ‘그래. 직접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네이버 카페 스터디 모집이 있어서 그 곳에 스터디 모임 공지 글을 올렸다. 두 달 뒤에 40대 아저씨가 와서 2012년 6월에 둘이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문법적으로 강하고 저는 회화 쪽으로 강하니 서로 가르쳐주는 식으로 진행했다. 한 달 뒤에 여자 공무원 분이 한 분 들어오셨고 점차 한두 분씩 늘어났다. 처음에는 기술이 부족하니 스페인어 읽고 해석하는 식으로 내내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울산이 영어 빼고는, 외국어 불모지이니 스페인어를 배울 기회가 없고, 스페인어를 배워 그곳으로 여행을 가보겠다는 분들, 시험 치려는 분들, 이민을 가려고 하는 분들, 단순 취미로 배우려는 분들이 모였다. 단순 취미로 접근하는 분들은 오래가지 못하더라.


일본어 아카데미를 하면서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알고 있는 스페인어를 잊어먹지 않기 위해서 했다. 스페인어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비전공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특히 스터디 모임이 가진 힘을 보이고 싶었다. 참여하는 사람들 직업도 천차만별이다. 간호사 소장인 경우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약사, 간호사도 있고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공통된 가치 하나로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으시고 높이 봐주시고 닮고 싶어 하시더라. 요번 기수는 주부가 많이 들어왔다. 젊은 측에는 고등학생, 대학생도 있었지만 주로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들어온다.


같이 여행계획도 짜고 꿈은 가졌는데, 한국 직장인이 시간 내기도 힘들고 생각만 했다. 같이 간 것이 겨우 1박2일 앰티였는데 열두 명까지 갔었다. 지금이 6기인데 2기 같은 경우에 학습 열정이 높아서 초보 단계에서 금세 올라오더라. 중급 단계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고 현지 시트콤 중에서 대사가 쉽게 나오는 것을 같이 보면서 해석하고 연기도 해보는 식으로 했다. 기수별 모임마다 분위기나 특성이 다 달랐다.


9. 기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도약을 꿈꾸는 다음 형태가 있는가?


처음에는 모임만 있다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학원이라기보다는 좀 더 작은 자율적인 공부방 공간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내 일로 하고 싶다. 컴퓨터공학과는 점수에 맞춰 갔기 때문에, 내가 언어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해외에 갔다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온라인이 대중화가 된 만큼, 조만간 동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나만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다. 남미에 진출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일단 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고, 앞으로 활동에 열정과 뜻을 같이 하는 분이 있으면 좋겠다. 계속 같이 하면서 그런 사람을 찾을 것이라 본다.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울산은 교육의 불모지, 문화의 불모지고 일과 물질적 소비만 있는 도시 같다. 정보도 없고 배우는 기관도 없고 스페인어학원이 전에 있긴 했지만 다 사라졌다. 울산에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 많고 토착민이 별로 없다. 나처럼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대중화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수요가 많아져 학원도 생기고, 수강생이 많아지면 더욱 공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인터뷰어 이동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