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의 가을이 깊어갑니다. 천성산의 가을은 화려한 단풍보다 억새와 미역취, 쑥부쟁이, 구절초, 꽃향유, 용담 같은 가을꽃으로 도드라집니다. 어느덧 익숙해진 가을꽃들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은 반가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꼭 2년 전 제게는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도전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이름을 찾고 수십 번 수백 번 만나다보니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익힘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이 조금씩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이 저 자신을 성장시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산 공부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10_1미역취

< 미역취>


10_1구절초

<구절초>


10_1꽃향유

<꽃향유>


10_1용담

< 용담>



격물


주자는 <예기>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독립시켜 <논어>, <맹자>와 더불어 4서를 확립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의 제일 중요한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격물(格物) 공부입니다. 격물의 목적은 치지(致知)에 있습니다.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 공부는 이렇습니다. 모든 사물(事物)에 본말과 시종이 있는데, 그것을 치밀하게 규명해 이해하는 것이 격물 공부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지식을 섭렵하고 새로운 앎을 위한 궁리가 겸해져야 합니다. 격물의 대상은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입니다.


하지만 격물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선조들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격물 공부한다고 사물을 뚫어지게 들여 보다가 안질에 걸리기도 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어질병에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격물 공부를 작파하고 책을 달달 외워 관념론적 독선주의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나마 격물 공부에 충실했던 이들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산에서 3년을 보내며 격물 공부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처음으로 남부지방에 살면서 산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봄이 되어 싹이 트는 하나하나가 신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초여름이 되자 여기저기 낯선 식물과 곤충들이 마구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풀, 나무, 곤충, 고사리, 버섯, 지의류, 새 등 수도 없었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생명 앞에 절망을 느꼈습니다. 멍텅구리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다 알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관심을 끄는 것 하나씩 알아가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앎도 많아지고 깊어졌습니다. 여전히 제 앎이 해변의 모래알 정도도 안 되리라는 것도 확실합니다. 한편으로는 앎이 깊어질수록 대상에서 관계로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거미처럼 제 앎도 제 한계 안에서 관계의 그물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거미이든 땅거미든 늑대거미든 무당거미든 상관없습니다. 저 또한 세상 안에서 일과 사물과 가능한 관계의 실을 이으며 잠시 흔들리다 갈 뿐입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격물의 목표인 치지(致知)란 방향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자기 방향을 응시한 부단한 노력이 곧 삶이자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격물 방법


제 격물(공부) 방법은 이렇습니다. 일단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이 있을수록 만남의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저는 자연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무당벌레나 사마귀와 마주쳐도 유심히 보며 주변을 살펴보고 상황을 읽어 봅니다. 평소 보던 것과 좀 다른 것이나 처음 보는 것, 혹은 갑자기 생긴 궁금증 같은 것은 공부의 좋은 단서가 됩니다. 올해는 제가 있는 초소 처마에 털보말벌이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털보말벌의 습성과 생리를 관찰하고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초소 안에 서너 종류의 거미들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먹이를 잡지 못하는 놈이 불쌍해 밟혀 죽은 개미를 먹이로 주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거미를 관찰하고 습성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신기한 사실을 목격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하면서 생긴 초원과 숲의 변화를 배웠지만, 작년에는 여름 내내 비가 자주 와 구름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좋고 나쁜 게 없습니다. 모든 경험과 만남이 공부의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연에만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산에서 마주치는 산악자전거, 산악오토바이, 야영, 공단, 송전탑, 관료제 그리고 다양한 사회문제도 관심이 생기면 공부의 대상이 됩니다. 어떤 것은 공부만 하고, 어떤 것은 글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직접 해결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주변과 지역의 사물과 사건에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몇 년 사이 스피노자와 베르그송, 가타리를 중심으로 생태철학의 탐구를 하면서, 역사공부도 겸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천성산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된 지역의 역사와 산림의 역사 등 그야말로 잡다한 것들의 짬뽕입니다.


어찌 보면 두서없고 체계가 없어 공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입니다. 이게 제 공부방법입니다. 제게 공부는 직소퍼즐을 맞추는 놀이이고, 브리꼴라주를 만드는 작업이다.


천성산의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직소퍼즐 조각 맞추는 놀이입니다. 모두를 알 수는 없습니다. 조각조각 단편을 경험하고 알 뿐입니다. 그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그렇게 3년을 보내니 직소퍼즐처럼 군데군데 모양이 채워지면서 윤곽이 잡히는 게 생깁니다. 그러다보니 또한 저만의 이해와 표현방식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방식을 거미의 방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제 경험과 지식, 추측이 이리저리 만나고 섞여 화학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하나의 유기적인 형상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식의 과정이 바로 브리꼴라주입니다. 제 머릿속은 이러한 직소퍼즐 조각과 브리꼴라주의 잡동사니들이 섞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열정도 끈기도 없는 사람입니다. 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워야 합니다. 하지만 게으름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게으름이 저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유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러고 사는 것도 돈은 없지만 여유가 많아서입니다. 여유가 없었다면 저 같은 성격의 사람은 절대로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여유를 갖기 위해서 저는 몇 가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안정된 생활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편 격물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을 사랑하고,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지 말고 시간과 친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맛, 적적한 맛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저의 방식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진리는 없습니다. 각자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것이 자연에게서 배운 저의 지혜입니다. 한 나무에서 갈라진 수백 수천의 가지도 저마다 제 끝에서는 첨단입니다.


아름다운 앎


산에서 만나는 꽃과 곤충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며 새삼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아름답다’는 말의 뜻을 다시 발견합니다. 선생은 ‘아름답다’를 ‘알만하다’로 풀이하셨습니다. 어떤 사물을 이해하면 곧 알게 되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름답다는 말은 이렇게 대상의 총체성에 대한 이해와 긍정을 전제한 말입니다. 


물론 안다는 말이 곧 이해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안다는 것이 단순 기억일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안다’는 말을 떠올려 보세요. 앎이 심도에 의해 두 종류로 나뉨을 발견하게 됩니다. 깊이 아는 것과 옅게 아는 것. 언젠가 한번 본 사람이기 때문에 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오래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잘 안다는 의미에서 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앎에도 깊이와 강도의 차가 있다고 말해야겠지요. 경험에 의해 기억이 많이 축적되면 옅게 아는 것이 깊게 아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와 대상의 긍정적 관계가 설정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경험하고 긍정적인 관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도덕적 행위로 연결 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풀잎 위에 앉은 나방의 애벌레를 발견합니다. 저는 대상을 직관적으로 또 총체적으로 인식합니다. 만약 제가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면, 그 안에 저는 이미 어떤 알아봄이 있습니다. 어쩌면 플라톤 식의 상기일 수도 있겠군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기억이 그것을 알아보게 하고 아름답다고 말하게 합니다. 애벌레의 종류는 몰라도 그것이 가진 무늬와 색채, 모양에 대해 저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름을 몰라도 앎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나서 저는 애벌레를 더 자세히 뜯어볼지 모릅니다. 그것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말하기 위해서 새로운 체험과 이해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에는 이렇게 앎의 깊이와 강도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의한 감동이 뿌듯함으로 차오를 때 저는 착해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모르면 아름답지 않은 걸까요? 추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흔히 모르는 것들에 대해 즉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추하다 나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해충에 대한 편견만큼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아직 심합니다. 사람이 싸우고 전쟁하는 것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파괴하는 것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추와 악에 대한 인지는 앎이 아니라 몰이해 곧 모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신영복 선생은 ‘아름답다’의 반대말을 ‘모름답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름을 앎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대상을 배제하는 추와 악은 얼마나 무서운 무지입니까? 추악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지요.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미지가 추악이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지렁이, 송충이, 쥐, 뱀 등을 떠올려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징그러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쁘거나 귀엽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앎의 정도차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왜냐면 미추는 인간의 기준일 뿐 자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인지하고 대상에 호감을 갖는 것은 아름다움과 앎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앎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 위해서인지 모릅니다. 만약 제가 어떤 대상을 참으로 안다면 저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만약 제가 세상을 참으로 안다면 저는 세상을 좀 더 사랑하겠지요.
신영복 선생의 ‘아름답다/모름답다’ 사유는 추와 악의 배제논리를 치유하고 세상을 보다 깊게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격물의 공부가 세상을 알아나가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면 추하고 악한 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겪어나가야 할 일이겠지요.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이 노래했듯, 끝내 삶과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앎의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심지어 지옥에서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내면이 이미 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세상과 깊이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편지는 2년 동안 정기적으로 산에서 만나 함께 산 공부를 해준 물금고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추석이 되니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 지운 남희 연서 그리고 현호, 물금고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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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고 친구들>



산에서 여러분을 만나 웃고 떠들다 내려오니 문득 적막이 고이는 것 같습니다. 새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늙으면 잔소리가 많아진다는데 혹 제 잔소리가 지나치지 않았는지. 살아가며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이야기들이 쌓여 그렇다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말은 조심해야겠지요. 잔소리 많은 꼰대는 저도 질색이니까요. 꼰대도 관심 받고 싶어하기는 응석받이 어린이와 같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누구나 관심 받고 싶고 누구나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열심히 들어준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동물이나 식물은 어떨까요? 자연은? 농부가 관심을 갖고 돌보면 식물도 더 잘 자라고, 집의 고양이나 개도 마찬가지겠지요. 여러분이 다녀간 천성산도 분명 그럴 겁니다.


돌아와 생각하니 여러분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모두 성실이라는 보물을 가졌습니다. 매달 주말 아침 산에 가기 위해 7시에는 일어나 서둘러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가 만나온 지 햇수로 2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시험이나 날씨 문제로 거른 달도 있었지만 우리는 매달 산에서 만났습니다. 모두가 이익을 따지는 시대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여러분은 호기심만으로 산을 찾았습니다. 은근하고 따스한 여러분의 우정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열정에 발 벗고 나서주신 이홍우 선생님도 감사합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운전하랴 간식 장만하랴 이래저래 힘이 드셨을 겁니다. 여러분에 대한 선생님의 뜨거운 응원에서 교사의 참마음을 배웁니다. 여러분끼리는 물론 선생님도 평생 잊지 못한 우정으로 연결되리라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제자들이 있으니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모두가 천성산의 보물입니다.


이제 겨울을 지내면 고3인 여러분도 학교를 졸업하겠지요. 갈림길에서 저마다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주세요. 여러분의 경험들을. 뜨거운 여름 아침도 먹지 않고 오르던 산길, 바람 불고 흐린 날의 산길, 뱀이며 버섯, 멧새며 네발나비, 멋쟁이나비 그리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떠오르지 않던 나무 이름 풀 이름들. 그래요. 사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궁금할 때 찾아보면 되니까요. 그냥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흐린 날이나 맑은 날이나 때로는 비오는 날에도 산을 찾았던 여러분의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며 보고 느꼈던 수많은 것들의 경험이 중요해요. 천성산이 그렇게 여러분 가슴 속에 들어갔을 겁니다. 개구쟁이처럼 장난치고 농담하면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관심의 끈과 믿음을 내내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실로 짠 보이지 않는 관계, 믿음이라는 끈!


정말 저는 산에서 오래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산이 궁금해 산을 꾸준히 찾아오는 사람을. 그랬더니 여러분과 이홍우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을 때 우리는 남남의 사이를 좁혀 서로 관계가 깊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거미줄이 연약한 실을 뽑아 아름다운 그물을 만들듯. 여러분은 여러분 사이에 그리고 산과 여러분 사이를 이어간 성실한 거미 한 마리가 보이나요? 관심으로 짜인 그물이. 사랑의 추억은 살아가는 힘이 된답니다. 오늘의 추억이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발효할지 궁금합니다.


어느새 낯선 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이름을 대는 여러분을 봅니다. 여러분은 지의류를 긁고 채집하고, 매미를 줍고, 빨간 열매들을 채집통에 넣었습니다. 오늘은 억새의 새품을 불어 홀씨를 날리기도 했지요. 어디 화단에 심으려는 듯 기름새와 억새의 씨앗을 받기도 했고요. 찔레의 빨간 열매를 맛보았을 땐 어땠나요? 빨갛고 달큰한 그 맛을 기억하나요? 참빗살나무와 비목의 반짝이는 빨간 열매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시간이 갈수록 편하고 여유로워진 현호의 밝은 웃음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정상 데크길이 산악오토바이로 파손된 모습을 보고 우리는 충격을 받았지요. 연주는 억새를 흔들며 ‘산악자전거들이 정상 운행을 하지 말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장난으로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연주가 말했지요. 국제신문에서 제가 인터뷰한 산악자전거 기사를 보았는데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댓글로 나쁜 내용을 많이 달아 안타까웠다고. 얘기를 듣고서야 억새를 흔들며 기도를 했던 연주의 참 마음을 알았습니다. 고맙고 또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여럿입니다. 여러분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만난 것만도 행복한 일입니다.


10_3참빗살나무열매

<참빗살나무 열매>


10_3비목열매

< 비목 열매>


이제 산을 내려가 여러분은 다시 시험공부를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경험을 통해 배우고 산을 바라보았던 다양한 방법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잊어도 돼요. 여러분은 이미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관심이 있을 때 만져보고 냄새 맡고 찾아보면 됩니다. 그렇게 관심이 가는 것을 찾고 꾸준히 만나가면 됩니다. 그래요. 조급한 마음과 두려움만 버리면 됩니다. 뭐든 하나하나 천천히 이루어질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가을이 올 겁니다. 지금처럼. 그리고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붉어진 풀과 나무를 보세요. 봄과 가을이 완전히 다르지요? 긴가민가했던 것도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 확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달라집니다. 그제야 우리는 알아보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나무고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여러분이 내려간 산에 낮달이 떴습니다. 이제 며칠 뒤면 추석입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마세요. 그 마음이 있으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공부가 지속될 것입니다. 행복도 그 안에서 발견될 겁니다. 우리를 기쁘게 한 고마리꽃과 여뀌와 달맞이와 용담처럼 여러분은 행복을 발견할 겁니다. 산을 찾는 여러분을 보고 저는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첨단에서 꽃 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을 찾아와 산에게 눈과 귀와 마음을 빌려줬던 여러분에게 산을 대신해서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사랑합니다. 


심규한 화엄늪 환경감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