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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 구절초는 말려서 차로 만듭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시나브로 나무와 풀들의 이파리에서 물기가 가시면서 꺼칠해지고 있습니다. 바람이라도 일면 솨 하던 파도소리 대신 버석대는 금속성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나기가 어렵고 힘들었던 나무들은 일찌감치 잎을 지우면서 겨울잠을 스스로 재촉하기도 합니다. 밭에서 자라는 쌈 채소들은 크기를 키우기보다는 외투라도 걸치듯이 두툼히 몸집을 부풀리면서 제 색깔을 더욱 짙게 하고 있습니다. 고추나 오크라, 가지 등 고향이 열대인 작물들은 이미 가버린 여름의 뒤태를 쫓아 허망한 발돋움을 합니다. 잔가지와 잎을 깨알같이 틔워내며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장하기보다는 처연한 모습입니다.


유난히 길었던 추석연휴여서인지 어느 해보다 낯선 이들이 마을을 다녀갔습니다. 우리부부의 밭이 산 중턱이나 다름없는 곳에 자리한 탓에 추석 전 벌초 때부터 그랬습니다. 예취기나 낫을 든 이들이 일하는 우리부부 곁을 지나며 힐금힐금 쳐다보며 지나칩니다. “벌초 왔나 봐요.” 한마디 거들면 그제야 계면쩍은 표정으로 누구 집 자손이라면서 응대를 합니다.


16-3

<버섯흉년임에도 피어난 굽더덕이(흰굴뚝버섯) >


 몇 년 거른 벌초라며 까닭 없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부부는 뜬금없이 우리 마을의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양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 대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며 추어줄라치면 괜한 자부심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집안 내력과 토지연혁을 들먹이며 너희가 일구는 땅이 사실은 자기네 친척 누가 누구로부터 사서 몇 년 부치던 곳인데 살(토심)이 얕은 바위투성이 밭이라 좋지 않다는 둥의 참견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무례하고 가소로운 자들이지만, 기실 우리부부를 얕잡으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차라리 멀어지고 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책하는 것이겠죠.


우리부부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긴 도시생활 탓에 오래 머물렀던, 그리운 장소만 있을 뿐 인정이 풍기는 사람들의 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래된 기억의 흔적들이 사람들의 숨결에 남아 있어 그리움이 기댈 만한 고향은 없습니다. 설사 그런 곳이 있다손 며칠 농사를 걷어치우고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찌 보면 고향이라는 말의 고갱이에는 농촌이 자리 잡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날 수 없는 곳, 붙박이로 머물 수밖에 없는 자리, 생계의 업을 잠시라도 놓을 수 없는 실존의 현장 말입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그리고 글로벌 개방경제로 인해 근거지가 아니라 이탈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농촌입니다.


16-1

<우리부부는 연휴 중에 비닐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지낸 사람들이 그런 농촌의 한 귀퉁이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으로 볼 때에야 몇 방울의 물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들이 도시를 버리고 농촌에 새 터전을 구려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귀농인으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이들과 귀농인들이 마주치는 장면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척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방문객의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어색하고, 어린 시절 함께 하지 않았던 이들이 곳곳에 자리 잡아 주인행세 하는 상황이 부자연스럽습니다.


귀농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현지인이었던 사람들을 방문자로 만나는 것이 더욱 낯설고, 불편한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디든 귀농인들은 쉽사리 자리 잡거나 마을과 동화되기 어렵습니다. 자고이래로 소규모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은 어느 나라든 일반적입니다. 단순히 기득권이나 텃세로 치부할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주민과 현지인의 격심한 문화차이에 대한 반발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농촌사회는 외지인에 대한 이물감이 유별납니다. 농촌사회의 독특한 폐쇄지향의 정서와 포괄적 소유의식은 대단히 완고하여 틈입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친하게 그리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마을의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기존 마을주민들은 새로 이주한 이들에 대해 포괄적인 시혜를 베푼다는 허위의식을 가지기 십상이며, 이를 근거로 마을에 봉사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는 그들의 성정과는 관련이 없으며 차라리 마을의 보수적 결속의 기제라는 설명이 더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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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맞이 마을대청소에 나선 어르신들>


농촌 마을 사회는 완고함을 넘어 배타적이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마을 태생인 사람이 객지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이십여 년을 농사를 지어왔는데도 붙박이로 농사를 지어온 이들은 급을 다르게 매깁니다. 농사에 관한 일종의 순혈주의를 표방하는 것이죠. 이는 자존심과도 연결되는 것이어서 작은 이해관계를 놓고도 쉽게 분쟁으로 비화합니다. 마을 전체로 볼 때 이주민 취급 받는 이의 주장이 훨씬 합리적인데도 마을은 토박이의 이익을 추종합니다. 토박이 한두 사람의 불합리한 이득에 마을 전체가 봉사하는 경우마저 생겨납니다. 물론 이러한 퇴행은 농촌이 처한 사회경제적 형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심리적 박탈감이 차별과 이해관계의 왜곡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오래 전입니다만 우리부부는 한 농민의 황당한 주장에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 밭 경계 내에 있는 감나무인데 우리 밭과 이웃한 밭에 속한 나무라면서 자신이 그 밭  주인으로부터 감나무 관리를 위탁 받았다는 것입니다. 감나무 한 그루를 놓고 경계측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부부 태도가 마뜩치 않았던지 하루는 이장과 동석한 자리에서 귀농과정에서 받은 지원과 혜택을 모조리 게워내야 한다고, 조치를 취하라고 이장에게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뭘 지원받았는지 아십니까?”라는 제 말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몇 분에게 그의 태도가 과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태도가 옳고 그릇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부부는 이 마을에서 명을 다할 때까지 농민이 아니라 귀농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부부는 마을 분들과 대체로 잘 지내는 편입니다. 농사꾼인 제가 농민 편에서 생각하면 안쓰러울 때도 많고, 동병상련도 느낍니다. 별 수 없이 소박한 그들의 잔정에 가슴이 푸근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진지한 소통은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귀농을 계획하거나 갓 귀농한 이들에게 권합니다. 마을에서 함께 살며 계속 외지인으로 남든가 손님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외지인 된다는 것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력히 주창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독특함을 인정받는 길입니다. 손님이 된다는 것은 열외에 있으면서 그들과의 총체적 이해관계 밖에 머무는 길입니다. 물론 개별적인 인간관계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외지인과 손님이라는 역할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한다면 그것에 알맞은 인간관계의 틀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귀농인은 귀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부부는 귀향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이근우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