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고
무언가 ‘지우러’ 떠나는 청년들


서울이 아닌 지역이 청년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사는 사람보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된, 제주에 왔다. ‘우리, 울산이’의 줄임말인 주거청년 우울이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번에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도반이 취재 길잡이로 함께했다. <편집자 주>


언제인지는 모르나 한때 불경한 궁금증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 배에서 아이들이 빠져나오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 의심에 크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도록 하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째날


돌이켜보니 그랬다. 이 몸이 제주로 오고 싶던 날들은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을 때였거나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무언가 하나쯤은 정리돼서 돌아온 날이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이번 취재에는 주변으로부터 몇 가지 제안을 뿌리치고 마음을 다잡으러 온 도반이 동행했다. 작곡을 하는 일이 그의 꿈이었다.


“토끼 섬에는 문주란이 자란대.”


“아 그래? 근데 왜 토끼 섬이야?”


“음... 그건 드론 띄워놓고 보면 정말 토끼처럼 생겼을라나?”


우리의 수중에는 섬도 토끼도 특산물 문주란도 하다못해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3만원짜리 장난감 드론도 없었다.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데로 왔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외지 차량을 보고 마을 사람을 잔뜩 실은 포터 한 대가 오그라질 듯 경적을 눌러댄다. 주인 없는 저택 앞.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곳은 알고 보니 아라리오갤러리의 수장고다. 노을마저 구름에 가려 스산한 호숫가의 해질녘이었다.


차가 성산을 도착했다. 일부러 교외에 머물러서인지는 모르나 제주의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다. 상인들의 말은 보통 밤 9시쯤에 문을 닫고 늦게까지 여는 식당도 10시쯤에는 셔터를 내린다고 했다.


현지 부동산에 따르면 아까 지나온 하도 근교의 3.3제곱미터당 지가는 150만원 남짓이다. 대로변에서 80미터 정도 떨어진 맹지의 땅값마저 백만원을 호가했다.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찼다. 제주에서만 팔 것 같은 제주에일 한 모금에 150만원짜리 한숨이 섞여든다.


‘제주의 낭만에 젖어 제주의 실상을 놓치지 마라.’


누군가의 충고가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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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입구에서 본 성산 일대. ⓒ이채훈 기자


#둘째날


“너는 왜 사람을 지긋지긋하게 만드니?”


헤어짐의 이유가 무능이나 찌질 그 자체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로부터 몇 걸음이나 저만치 앞서 나갔을까. 혹시 내가 발 딛고 선 땅이 헬스용 런닝머신은 아닐까. 어느덧 직장인 3년차임에도 마땅히 기거할 공간 없는 삶은 과연 떳떳한가. 이건 남 탓인가 아니면 내 탓인가. 밀가루만큼이나 바람에 바스러지는 모래알이 남도의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제주에서의 하루만큼은 육지의 일을 잊기 위해 해안도로를 찾은 청년들이 저마다 인생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분주하다. 방파제 위에서 어른들이 저무는 세월에 한 줄 미련의 끈을 드리울 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선 위로 제주의 소식을 띄운다.


성산 일출봉에서 뜬 해가 애월 너머로 달음박질하는 시간에 일행은 밤을 준비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평대를 지나 하도 포구로 넘어가는 길 위에 차를 세우고 한동안 머물렀다.


옛집을 개조한 듯 건물보다 마당이 훨씬 넓은 카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원목바닥으로 뒤덮은 앞마당에는 침대인지 소파인지 모를 빨간 뭉치가 정갈히 놓여 길손들의 쉼터가 됐다. 생김새가 꼭 곰 인형 같다. 적어도 이 울타리 안에서는 시간을 잊을 수 있다.


이곳 카페를 거점으로 옹기종기 모인 젊은 주인들의 가게는 상인회까지는 아니지만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있어 때마다 문화공연 등 공동체 행사를 연다. 마당이 넓은 탓에 작다고 하긴 뭣한 카페에 마치 가정식 백반을 팔 것 같이 생긴 카페 식당, 몇몇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등이 모였다. 내국인 여행자들과 외국인 관광객의 분리가 확실한 제주다.


셔터소리 한숨소리


반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른 몇몇 지역에서는 젊은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는 사람만 가던 거리에 타운하우스니 오피스텔이니 푸른 바다의 절경에 어울리지 않는 부동산의 큰손들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다. 어느 카페에서는 그중 한 곳의 설계를 맡은 건축사들이 예기치 못한 설계상의 오류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많게는 수십억 원이 걸린 문제일 터.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든 유명세를 탄 일부 가게를 빼고는 생각만큼 손님이 오지 않아 울상이다. 그런 가게들 중 한 곳에서 안주인이 무언가 심각한 내용으로 통화를 한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는 건물은 산토리니나 어느 이국적인 곳을 흉내 낸 것 같다. 들인 품이나 내부 장식이 만만치 않다. 아무리 주말에 많이 팔아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면 더욱 그렇다. 여긴 되든 안 되든 필시 가족 장사여야 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주에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외지인이 아니면 청년들도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시급도 만족스럽진 않다. 성산에 불현듯 나타나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는 복합휴양공간을 찾았다. 주머니가 허전하지 않은 가격에 서울에서나 즐길 법한 아기자기한 맛과 멋을 선사한다고 해서 외지에서도 많이 찾는 듯했다.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점원들이 저마다 귀신같은 분장을 하고 나타났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녁이라 그런지 교외라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이 모이지 않았다.


“저 치는 건반 치는 솜씨나 스타일이 꼭 교회오빠 같다 야.”


인천에서 온 인디뮤지션이 아직 뜨지 못한 싱어송라이터의 비애를 말하는 통에 같이 온 도반의 눈가가 흔들린다. 가게 점원이 추천한 칵테일을 직접 들고 테이블로 온다. 그이는 날이 날이라 일부러 저렇게 꾀죄죄하게 나왔을 텐데, 우리는 구태여 그렇게 꾸민 것도 아닌데 벌써 불콰하게 취한 사람 같다. 자격지심에 볼이 발갛다.


‘너도 정해진 비행기 시간이 되면 이곳을 떠나겠지. 나 역시도 오랜 시간 여기서 일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진 말고 술이나 마셔.’


점원의 속삭임은 환청이다. 제주가 기분전환의 땅은 될 수 있어도 기회의 땅이 될 수는 없을 거 같다.


#셋째날


“흔들리는 그 바람 소리가 / 내 맘을 흔들고 스쳐 지나간다 //
아플 만큼 아파도, 난 얼마나 더 아파야 /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하이 노래 ‘스쳐간다’ 가사 일부.


도반이 마지막으로 꼭 1100고지를 가고 싶다고 했다. 낙엽에 흩날릴 고민이 많아보였다. 성읍민속마을에서 전기차 급속충전을 서둘러 마쳤다. 서울은 만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제주도 만원이다. 현재도 차고 넘치는 발길 속에서 제주의 해안도로 곳곳은 하수처리시설용량 증설 공사로 파헤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세먼지와 매연이라도 줄여야겠기에 삼다도에서 전기자동차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평일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한량들 밖에 없겠지?”


습지의 추억을 남기고 빌린 전기차를 반납했다. 고향친구 아니면 대학동기처럼 보이는 장정 같은 청년 셋, 출장 업무를 막 끝내고 공항으로 가려는 초로의 직장인과 같이 공항 행 버스에 동행했다. 주말을 맞아 주요 관광지로 파도같이 밀려오는 관광버스들을 마주친다. 중국인 관광객이 빠져나간 자리는 중국이 아닌 다른 외국인들이, 떠나기 좋은 때에 알맞게 온 수학여행객들이 채우고도 남았다. 중국인 관광객의 수요도 얼마 전 바닥을 쳤다고 한다.


김포 행 비행기의 매진을 알린 지역 케이블 방송의 아침 뉴스는 정확했다. 제주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과 동문시장을 무심히 지나쳐 제주항여객터미널에 당도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제주는 원래 전라도 제주 부였다. 공항을 통해 제주를 떠난 교복 입은 아이들과 제주항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는 이 트레이닝복 입은 선머슴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OO이는 아까 비행기 탔으니까 지금쯤 도착했겠지?”


몇 년 전에 수학여행 때도 집안사정에 따라 누구는 비행기를 타고 누구는 여객선을 탄다는 얘길 들었는데 딱 그 경우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목포 내항으로 가는 이 배는 산타루치노라는 이름의 크루즈선이다. 육중한 몸집과 둔탁한 금속성이 적나라한 겉모습과는 다른 여객선의 도드라진 내부에 누군가의 영화적 상상력이 자극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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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이채훈 기자


스위트룸과 로얄스위트룸이 있는 5층에는 오가는 사람도 몇 없다. 스스로도 그 방안에 들어간다면 나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줄을 늦게 선 죄로 얻게 된 아래 층 가족실에는 그 흔한 창문도 없었다. 바깥세상 소식은 낡은 브라운관 화면으로 송출되는 24번 뉴스가 전부였다. 역시 창살 아래 있을 어느 전직 대통령과 가신들의 변명이 자막과 함께 표출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갑판 위로 나왔다.


담배연기를 내뿜는 아이도 우도 땅콩막걸리를 들고 온 학생도 이따금 이를 책망하는 선생님도 모두모두 반갑다. 난간에 발을 걸터앉은 녀석의 깊고 흐린 눈동자도 바다는 잔잔한 물결 속으로 보듬는다. 추자도를 비롯해 도서 이곳저곳을 망원렌즈에 담는 취미가 있는 어르신들이 갑판 위에 더러 있다.


제주항을 떠난지 세 시간 반이 지났다. 누군가는 고함을 치고 여러 무리들이 웅성웅성 댄다. 패싸움이라도 난줄 알았다. 그게 아니다. 아이들이 혈기방장 잡기놀이를 시작한다. 흡사 런닝맨 프로그램이나 무한도전의 전성기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추격전이라도 일어난 법하다.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이도 이날만큼은 멀리서 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고교생들의 뜻 없는 뜀박질이 멈춘 것은 승무팀장의 안내방송 때문이다.


“00고, xx고 학생 여러분들은 모두 객실로 들어가 여행 짐을 챙겨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학생 분들은 인원점검이 끝나고 일반인 승객들이 모두 내린 다음에 배에서 내립니다.”


그렇게 모두가 멈춰선 갑판 위로 퉁기는 이슬 같은 저녁 비, 해 저문 뒤 적당히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처음 본 육지의 풍경은 다름 아닌 목포신항 위로 바닥을 드러낸 세월호 선체였다. 갑판 난간에 몸을 기댄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매스컴들이 구원파 때리기에 한창일 때 일각에서 ‘제2의 세월호’라 불렀던 그 갑판 위에서 응시한 세월호 선체의 구멍은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아이의 눈동자 같다. 눈물마저 기화돼 뻘흙만 눈곱 같이 낀 그 눈을 바라보며 호곡한다.


“그래 우리 청년아, 다시는 이 땅에서 태어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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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본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채훈 기자


제주도의 디딤돌주택, 서울에는 탐라영재관
제주도개발공사가 운영주체 맡아


제주도에서는 서울, 인천, 경기지역으로 유학하는 대학생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제주도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 따르면 도 차원에서 탐라영재관이라는 학사와 셰어하우스 형태의 소규모 학사인 탐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두 학사는 특이하게도 운영주체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다. 이 공기업은 먹는샘물 삼다수, 감귤가공업, 제주맥주 브랜드 등을 성공시킨 바 있다. 이 회사는 제주도의 위탁을 받아 공익사업의 형태로 학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그 역사가 오래된 탐라영재관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대규모 기숙사다. 이는 수도권 지역에 유학중인 학생들을 위해 서울에 기숙사시설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지난 1980년대 말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도민 숙원사업이었다.


이후 서울제주회관의 형태로 1998년 공사가 시작된 후 재원 조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사업유보 대상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 포기로 입게 될 재정손실은 물론 서울에 기숙사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도 예산 확보에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국비지원이 확정돼 1999년 2월 문화관광부로부터 40억 원을 지원받는다. 또 복권 판매수익금 25억 원이 투입돼 당초 3개 층 126명 수용규모였던 영재관은 6개 층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기숙시설로 증축돼 2001년 1월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기숙사비는 학기당 60~90만원을 받는다.


올해 처음 입주자 15명을 받은 탐라하우스는 주변에 대학교가 밀집한 동대문구 권역과 동작구 권역에 각각 하나씩 시범적으로 설립됐다. 2인실은 월 20만원, 1인실은 월 30만원의 기숙사비를 받는다. 소규모 지방학사의 경우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며 전기세, 가스, 수도세는 입주학생이 부담한다. 사감이 별도 상주하지 않는 대신 운영 대행업체에서 수시로 체크한다.


제주 지역의 행복주택 사업도 제주도개발공사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청년을 염두에 둔 제주 행복주택은 명칭 공모를 통해 디딤돌주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디딤돌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사업이다. 제주 아라 지역에 최초로 공사를 완료하고 2018년 2월에 39세대가 입주하게 된다. 올해 10월 말경에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아라 디딤돌주택의 경우 임대보증금은 공급대상에 따라 약 3000만~5000만원, 월임대료는 약 12만~20만원으로 잡았다.


이외에도 제주도개발공사는 삼도일동 26세대, 함덕 50세대, 한림 16세대의 디딤돌주택을 2018년 상반기를 준공 및 입주를 목표로 짓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대규모 디딤돌주택 공급사업을 통해 2000~7000세대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개발공사 측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의 생활 스타일을 반영해 맞춤형 가구와 무인택배시스템을 설치했다.”며 “임대주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젊은 층이 선호하는 스터디룸, 공용세탁실,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채훈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