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가는길에 고헌산 정상이 보이는 조망바위

<서봉가는길에 고헌산 정상이 보이는 조망바위>


영남알프스는 가을이 제철이다. 많은 사람이 주말이면 줄을 서서 산행을 한다. 간월산장 초입의 주차장에는 차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나온다. 은빛, 금빛으로 살랑이는 억새와 알록달록한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아득바득 사람들이 몰린다.


그렇게 붐비는 산군 중에 제철에도 비교적 한산한 산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고헌산이다. 고헌산은 울주군 상북면과 두서면에 있는 산으로 경주 산내면과도 접하고 있다. 영남알프스를 종주하는 사람들 혹은 낙동정맥을 걷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산이다. 백운산과 고헌산 사이의 소호령에 활공장이 있어 하늘을 날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오기도 한다.


골이 깊어 그늘진 길 대통골 초입

<골이 깊어 그늘진 길 대통골 초입>


고헌산의 한자이름은 두 개이다. 높이 바치는 산(高獻山), 혹은 높은 봉우리의 산(高巘山)으로 불린다. 고헌산은 언양의 진산으로 가물 때마다 용샘이 있는 고헌산 정상으로 찾아와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高獻山이라고 불리는 듯하다.

단풍과 낙엽이 그득한 대통골

<단풍과 낙엽이 그득한 대통골>


언양의 옛 이름은 헌양(巘陽)으로 고헌산의 남쪽을 의미하는 지명이다. 획수도 많고 발음하기 어려워 조선 태종 때 언양(彥陽)으로 바뀌었다. 高巘山이 정확한 한자 이름이지 않을까하고 추측해본다.


명색이 높은 봉우리인 고헌산(1034m)은 주변의 가지산(1240m), 신불산(1159m), 간월산(1083m)에 비해서도 높지 않을 뿐더러,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10개의 산군 중에서도 높이로 겨루자면 9등으로 꼴찌를 겨우 면한다. 수치상으로 비교하면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산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직접 산을 걸어본 이라면 다들 그 이름에 대해 수긍할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오르든 만만찮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제법 높은 외항(와항)재나 소호령에서 올라도 도상거리는 고작 2km지만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고헌산의 북사면인 소호리 대곡에서 시작해 고헌동봉으로 붙는 도장골도 만만찮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능선을 따라 걸어 오르는 그 길은 봄에 철쭉이 아주 아름답지만, 역시 쉬이 올려 보내주지 않는 길이다.


오래된 숯가마터 2

<오래된 숯가마터>


남사면인 상북면에서 시작해 정상으로 올라오는 곰지골과 대통골은 말도 못하게 험하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나마 소호령으로 오르는 길이 가장 수월하여 그곳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가장 많다.

하늘이 푸르고 맑은 가을 날, 험하기로 소문난 대통골로 올라가 곰이 많이 나왔다는 곰지골로 하산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산우인 아마추어 클라이머 이주연(41)씨와 함께 산행을 함께하였다. 차를 신기마을 고헌산등산로 입구에 주차하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출발했다. 걱정했던 비 소식은 사라졌고 날씨는 화창하였다. 상큼한 기분으로 산행을 시작한 데 반해 초입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전원주택단지가 생기면서 제방공사를 한 탓이다.


갈수기라 건천이 된 대통골로 물길 따라 접어들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소북이 쌓인 그 길은 알록달록한 고운 잎사귀가 가을땡볕을 받아 반짝이며 살랑거렸다. 초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합판에 검은 천을 둘러싼 움막이 나왔다. 그 움막의 빨랫줄에 걸린 소쿠리 안에 홍시가 소담히 담겨 있었고, 앞에 놓인 등산화와 슬리퍼로 보아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움막을 지나 낙엽과 단풍이 그득한 길을 신나게 걸었다. 골이 깊고 험준하나 도보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이어졌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가을 경치를 만끽했다.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었으나 저녁 비 소식이 생각나 걸음을 재촉했다. 도상거리로 2/3가량 올라오니 직립보행으로 걸을 수 없는 길들이 나왔다. 계곡은 편마암으로 되어있어 손으로 잡으면 돌들이 쑥쑥 빠졌다. 도무지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엔 위험했다. 계곡을 우회하자니 낙엽이 쌓인 데다 경사가 심해 그 또한 만만찮았다. 해발고도로 보니 서봉까지 300m를 더 올라야했다. 짙은 구름이 흐르는 속도가 심상찮아 속으로 걱정이 되었으나 함께하는 일행의 불안을 심화시키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다.


물길을 따라 걷기는 위험하다고 판단돼 흰 리본이 달린 길을 따라 걸어가 능선을 찾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과거 숯을 굽던 숯가마터가 보였다. 오래된 흔적이나마 험로에서 사람의 흔적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연이어 숯가마터를 두 개 더 만났다. 묵은 길이 아주 좁고 낙엽이 수북이 쌓여 여차하면 한없이 미끄러질 것처럼 보였다. 직립보행이 불가해 사족보행을 간간히 택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자연스럽게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경사가 가팔라지는 이끼폭포지점

<경사가 가팔라지는 이끼폭포지점>


산우와 나는 웃음이 났다. 기가 차기도 했고 해학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흡사 우리가 멧돼지가 된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족보행과 직립보행을 병행하며 두 시간을 힘차게 올라 서봉 근처의 길에 접했다.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었던지 모른다. 늦은 점심을 먹고 고헌산 서봉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계획은 용샘을 들렀다 곰지골로 하산할 요량이었으나 가장 짧은 길인 외항재로 향했다. 하산 후 우리는 아주 크게 손뼉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는 그 길엔 얼씬도 하지 말자며 다짐하였다. 산우의 말을 빌리면 대통골은 대성통곡을 하게 만드는 곳이라 하였다.


고헌산서봉의 해발고도는 1035m로 정상(1034m)보다 더 높다

<고헌산서봉의 해발고도는 1035m로 정상(1034m)보다 더 높다>


혹 사진에 담긴 절경으로 대통골을 찾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원규 시인님의 시구를 빌어 과감히 전합니다.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가지 마시라...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